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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네스장 May 14. 2021

반쯤 이룬 로망

출장와서 로망 타령

호텔에서 일하지만, 호텔에서 하룻밤을 혼자 온전히 보내는 로망을 품고 있다.

자 휴식을 취하고, 책도 보고, 글도 쓰고... 아무것도 안 해도 그냥 혼자만의 공간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은 갈망이 있다.

결혼을 하기 전에는, 아이가 생기기 전에는, 시어머니와 함께 살기 전에는 이런 갈망은 없었던 것 같다.

어쩌다 혼자만의 시간이 생기면 막상 잘 즐기지도 못했으면서, 작정하고 호텔까지 가서 호사를 누리겠다는 로망은 이루어지기 쉽지 않아 보였다.




제주로 출장을 갔다. 호텔 직원이지만 신축 호텔 프로젝트건으로 지방 출장을 가면 출장비 예산에 맞추어 주변 숙소에 투숙을 하게 되는데, 제주는 기존 체인 호텔이 있기에 객실을 배정받을 수 있었다.


업무를 끝내고 방에 들어오니, 적막한 호텔방에 나 혼자였다. 혼자만의 공간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날씨도 너무 좋았고, 가족들과 함께 왔어도 좋았겠지만, 사실 혼자여서 더 더 좋았다고 하면 가족들은 섭섭하려나?


뭐부터 하면 좋을지 생각하다, 욕조에 물을 받았다.

따뜻한 물에 한참을 들어앉아 있자니, 그동안의 피로가 다 풀리는 느낌이었다. 목욕 후 호텔 가운을 걸치고 거울 앞에 앉으니 호텔 조명 아래 얼굴이 뽀얗게 비쳤다. 남편과의 영상통화에서... 얼굴이 좋아 보인다며, 그렇게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고 있는 것을 숨길 수가 없었다.

 

적막 같은 방에서 오늘 하루를 돌아보고, 내일의 계획을 세워보며... 나른해짐을 즐겼다. 나에게 주는 보상 같은, 선물 같은 시간 보낼 수 있음에 감사했다.


블로그 글을 쓸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그저 그렇게 스스로 토닥여주고, 칭찬해주는 그런 시간을 보내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매일 여러 가지 인증과 미션들을 수행하고, 여러 가지 배움을 통해 성장하려고 노력한 나를 칭찬하고, 오늘 하루만큼은 위로하고 쓰다듬어주고 쉬어도 괜찮다고, 잘하고 있다고 해주려 했다.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나는 알고 있으니까.


잔잔한 음악이 나와도 좋겠지만, 그냥 멀리 밖에서 들리는 잡음과 방의 적막함이 나쁘지 않았고, 귀가 먹먹 해지는 느낌처럼 몽롱한 기분도 좋았다. 대로 침대로 들어가 누워 스르르 잠들어도 좋을 것 같다.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데 왜 꼭 호텔 방이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가장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는, 집에서는 즐기기 힘든 큰 욕조와, 바스락거리고 푹신한 침구류, 낮은 조도의 조명 등등... 호텔이라는 곳은 나를 최상으로 대접해 줄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지 않나 싶다.


이번 달에는 그동안 진행해왔던 리노베이션 호텔의 드라이 런(호텔 정식 오픈전 테스트 운영기간)이 있다. 공사 먼지를 마시며 자야 해서 웬만한 드라이 런에는 참여하지 않았는데, 이번엔 신청을 했다. 또 한 번의 혼자만의 시간을 만들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먼지 좀 마시지 뭐 ~'하며, 아이를 가진 동료들은 한결같은 마음으로, 같은 날로 신청을 하고 우리들의 일탈?을 기다리게 되었다.


언젠가는 일과 상관없이 그냥 온전히 내시간을 가질수 있는 날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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