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두 프로젝트의 보고가 연달아 있었고, 결과는 시작점으로 다시 돌아가는 상황이 되었다.
보고 당시 분위기는 좋았고, 질책을 받은 것도 아니었지만, 보고 후에 무언가 모를 찜찜함이 계속되고, 머리속에는 애매했던 피드백들이 계속 맴돌아 떨쳐 낼 수 없었다.
혼자 결정해서 진행한 것도 아니였고, 그동안 여러차례 보고를 통해 방향성이 잡혔었고,
많은 사람이, 그리고 수차례 검토해서 결정된 범위를 기준으로 진행된 일이었는데,
또 다시 시작점으로 돌아간 이 일로 머리속은 혼란에 빠졌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을까?
나는 그 일에 최선을 다 했었나?
나는 어디까지 생객했어야 했을까?
그 프로젝트에 최선을 다했다고 자신있게 말하지 못하는 나를 발견했다. 다른 이슈들을 함께 보고해야 했던 상황에서 중요도를 구분하지 않았다. 디자인을 보고해야 하는 건에 더 집중해서 더 좋은 결과물을 보여줬더라면 어땠을까? 이튿날 보고한 또 다른 프로젝트건은 급하게 잡힌 보고 일정에 맞추어 내용도 공유받지 못하고 보고에 참석했다. 함께 진행했던 담당자가 내용을 더 디벨롭하고 취합하는 과정에서 함께 협의되지 않았던 내용이 보고자료에 담겨 있었고, 그부분은 내가 보기에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부분때문이라고 지적 받지는 않았지만 결과적으로는 설계범위를 확장해서 진행하자는 지침에 따라 원점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들키지는 않았지만 나는 안다. 팀내 역량을 최대로 끌어올리지 못한 결과물이 그닥 좋아보이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을...
내가 잘못한 것이 없다고 핑계를 찾고 부정하고 싶었지만, 디자인 이슈가 큰 두 프로젝트에 더 집중하고 더 준비된 결과물을 도출하지 못했다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 이렇게 글로 쓰기 전에는 사실 이런저런 상황을 핑계삼아 이런저런 상황을 탓했다. 하지만 그동안 내가 해오던 업무에서 크게 애쓰지 않는 선까지만 노력했던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어졌다.
내 업무 바운더리 내에서만 생각했던 것도 아쉽다. 프로젝트의 진행 범위는 정해졌었고, 그 틀에 맞추어 업무를 진행했다. 왜 이렇게 해야하는지... 그 틀에 대해서 불만이 있었음에도, 불만을 뒤에서 가쉽거리로만 여기고 발전적인 아이디어를 도출할 생각은 하지 못했었는데, 결국 그 틀을 깨고 생각하는 연습을 해야한다는 결론에 닿았다. 주어진 틀에서 억지로 무언가 만들어내느라 애쓰는 것 보다 중요한 것이, 큰 그림을 그려보는 것이다. 첫단추를 잘 끼워야 하는데, 그 첫단추인 공간 브랜딩이 부재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디자인 컨셉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브랜드의 가이드 라인이 명확하지 않다면, 그 뒤를 따르는 디자인 프로세스는 갈 길을 잃고 주먹구구식이 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그저 예쁜 공간을 만들면 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하는 생각에 닿았다.
핑계를 데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예산에 맞추어 그때그때 각각의 공간들을 디자인해야하는 산발적인 프로젝트들은 분명 한가지 뿌리를 바탕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임을 인지하고, 내 업무 바운더리에 있는 이슈가 아니더라도 생각해보고 출발점을 먼저 명확히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었다.
내가 이 이슈에 대해서 이렇게 고민하고 있어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회사일을 이렇게 까지 싸매고 고민할 일인가? 바보 같은 짓인가? 시간이 아까운 것인가? 하는 별별 생각도 다 든다.
어떻게 보면 어짜피 원점으로 돌아가서 설계사를 뽑을 것이고, 뽑힌 설계사에게 고민을 맡기고 디자인 도출을 의뢰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민을 하고 싶었다. 내가 하는 일에 깊이를 더하고 더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 공간의 본질은 소비자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있습니다. 이 공간에 들어온 사람이 '무엇을 느꼈으면 좋겠는가?가 메시지이고, 콘셉트이며, 브랜딩인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비자의 입장에서 내가 만들고자 하는 공간을 객관화하는 과정이 가장 먼저 필요합니다. 그리고 소비자에게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공간에 담는 것입니다.
아무리 유명한 인테리어 업체라도 가게를 운영할 사람이 명확한 콘셉트나 가이드를 주지 않으면 효과적으로 원하는 공간 콘셉트를 표현할 수 없습니다.
이제 매장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공존하는 '옴니 채널'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매장은 단순한 상품판매 공간을 넘어섰습니다. 공간의 규모와 상관없이 문화가 더해진 마케팅으로 소비자에게 차별화된 이미지를 각인시키고, 소비자가 진화하듯이 공간의 역할도 진화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공간을 구성하는 것들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공간을 기획한다는 것은 '맞다,', '틀리다'의 문제가 아닌 '좀 더 나은 것'을 찾는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