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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 하루 살아가기

작년 팬데믹 초반에 써둔 글.

벌써 일년이 훨씬 더 지났다  

작년에 써둔 글을 다시 보니 새롭기도 하고 또 그때의 절박함이 떠오르기도 한다.

일년, 내가 참 고생이 많았구나 싶다.


연초에 한국에서 조카가 베프를 데리고 여행을 왔었다  

아이들이 도착하고 며칠 안돼서 우한발 바이러스 뉴스가 나오더니 곧 한국이 시끌거리기 시작했다  

한 달여의 여행을 마치고 조카가 돌아갈 때쯤 한국의 바이러스 문제가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한국에 돌아가면 건강 잘 챙기라는 말로 아이들을 보낼 때까지 바이러스는 바다 건너 일이었다  

그때가 2월 초였다  

물론 이미 미국에 감염자가 많지만 검사 키트가 없어 밝혀지지 않고 있다는 소문은 무성했으나 그래도 당장 내 앞에서  벌어질 일은 아니었다  



삼월이 넘어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기에 일단 아마존에 마스크를 주문해두고 아이들에게 손 잘 씻으라는 잔소리 하나를 더 하고 있었다  

한국식 갈빗집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아들이 손님들이 줄어들고 있다는 얘기를 했었다  

학교에 다니는 애들이 혹시나 학교 안에서 전염이 될까 걱정하고 있던 시점에 Shelter-in-place라는 오더가 내렸다.

특별한 일 아니면 집에서 나오지 말라 했다.

아이들 학교도 문을 닫았다  

권고 사항이 아닌 법령이었다.

이미 근처 마트들에서는 생필품과 식료품이 바닥이 나고 있었다.

급히 장을 보러 나가 사 올 수 있는 만큼의 물건들을 차에 실었다  

3월 16일의 일이었다.


그 뒤로 한 달 하고 열흘이 지났다  

미국에서 백만 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전염됐고 오만 명 넘는 사망자가 나왔다  

사십일 동안 두 번 장을 보러 나가는 일 말고 외출은 거의 없었다.

너무나도 많이 들려오는 정보들.

그중 진실은 얼마나 될지 모르겠지만 그로 인해 매일매일 움츠러든다  

야외에서는 바이러스가 더 넓게  퍼진다는 뉴스에 가까운 공원으로 나가 산책하는 것조차 두렵다.

내가 묻혀올 바이러스에 아이들이 감염이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현관을 여는 것도 망설여진다.

집돌이 작은 아이 조차 이제는 학교에 가고 싶어 진다 노래를 부르고 액티브한 큰 아들은 갇혀 있는 답답함을 가끔씩 나가는 드라이브로 풀고 있다.

나 역시 다니던 도자기 스튜디오에도 못 가고 성당에 가 미사도 드릴수 없어 너무 답답하다  

끝을 알 수 없는 혼란에 하루 하루가 참 두렵다  


도자기 스튜디오로, 바느질 모임으로, 성당으로 그리고 친구 모임으로 늘 바빴던 나.

산더미 같은 숙제에 눌려 방에 처박혀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작은 아이.

학교 다니랴 파트타임으로 일하랴 취미인 축구 연습에 친구들과 함께 하느라 집에 있는 시간이 별로 없던 큰 아이.


단출한 세 식구도 함께 모여 식사 한번 하는 게 참 어려웠는데 외출 제한으로 인해 처음으로 세 식구가 오랫동안 붙어있는다.

아이들이 늦게 일어나 하루 두 끼를 먹기는 하지만 함께 식사하며 얘기하고 웃고, 스물네 시간 같은 공간을 나눈다.


아이들이 답답해함을 알기에 나는 잔소리를 줄였고 아이들은 나를 배려해준다.

낮에 방문을 닫고 있으면 엄마가 단절감이 생긴다 하니 최대한 방문을 열어둬 주는 아이들.

아이들의 얘기를 들어주려 노력하는 나.


얼마나 더 오래 이렇게 지내야 할지 모르지만 내년에 작은 아이가 대학을 가면 그 뒤로는 이렇게 오랫동안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없을듯하다.

그래서 지치고 지루한 시간들이지만 열심히 기쁘게 지내려고 노력한다.

순간순간 멈춘 듯 하지만 빠르게 흘러가는 하루하루.

어찌 보면 선물 같은 소중한 시간들.

감사히 받아들이며 살아가야겠다.


담 밖의 세상은 무섭다.

내가 살고 있는 카운티 안에서도 사망자는 늘어간다.

이제야 마스크 착용이 의무가 되었으나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마스크 없이 다닌다.

지금 미국에서 마스크와 클로락스 와이퍼, 손 세정제를 구하는 건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렵기 때문이다.

다행히 초반에 주문해둔 마스크가 배달됐고 한국에서 오는 분 편에 남편이 마스크를 보내줬다.


거의 두 주마다 한 번씩 마스크와 라텍스 장갑으로 중무장을 하고 흡사 전쟁터에 나가는 듯한 비장함으로 장을 보러 간다.

나는 지금 혼란으로 가득 찬 전쟁터에서 살고 있다.

우리 집 담장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 총알들이 날아다니는 것 같다.

이 전쟁터에서 초원의 암사자처럼 내 아이들을 지키며 하루하루 살아간다.



담장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화창한 캘리포니아의  파란 하늘과 불타는 석양, 평화로움 그 자체다.

조용한 세상 안에 사람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이 요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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