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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탕에 가고 싶어요.

바람이 몸 안을 돌아다니는 날.

친정 식구들은 ‘목욕’에 진심인 편이다.


어디 새로 온천이나 괜찮은 목욕탕이 문을 열었다는 얘기를 들으면 몇 시간을 달려가 몇 시간을 목욕하고 다시 몇 시간 걸려 돌아온다.


신혼 초에 남편이 처음 친정식구들과 목욕탕을 가던 날.

포천에 괜찮은 목욕탕이 새로 문을 열었다는 뉴스에 막히는 길을 뚫고 세 시간 걸려 도착해 여탕 남탕으로 갈라지며 아버지께서 물으셨다. “몇 시간??”

엄마가 대답하셨다. “승희랑 왔으니까 세 시간.. 아니다, 이 서방이 힘들어할 것 같으니까 두 시간 반?”


엄마와 나는 결국 세 시간 만에 여탕에서 나왔고 남편은 나중에 그날 정말 이해할 수가 없었다고 털어놨다.

무슨 목욕을 그렇게 멀리 가서 그렇게 오래 하고 오냐며 자기는 그날 너무 지쳤었단다.   

내가 말했다. “목욕만 한건 아니지. 이동 갈비도 먹었잖아 “..

우리 식구들은 좋은 목욕탕에 가서 오래 놀다가 그 근처 맛있는 음식점을 찾아 밥을 먹고 돌아오는 게 일요일 루틴이었다.


반대로 부산 시댁에서 시어머님과 함께 처음으로 간 동네 목욕탕.

부산은 동그랗고 커다란 때수건이 달려있는 등 미는 기계가 목욕탕 안에 있어 너무 신기했다.

이제 좀 탕에 들어가 볼까 하는데 시어머님께서 등을 밀어달라고 하셨다.

내 등도 밀어 주신 다기에 나는 ‘방금 목욕을 시작했으므로’ 괜찮다 말씀드렸다.

이제 좀 물에 들어가 몸을 불려야지 하는데 어머님께서 당신은 다 씻으셨으니 먼저 나가신다고 “너는 천천히 씻고 나와라”하셨다.

마음이 급해져서 씻는 둥 마는 둥 하고 얼른  따라 나갔다.

나도 남편에게 말했다.

“어머닌 한 시간도 안 걸리셔. 너무 빨리 목욕을 마치셔. 난 물만 묻히고 나왔어.”

그랬더니 남편이 대답했다.

“내랑 아부지는 더 금방 끝낸다”


참 다른 두 사람이 만나 이렇게 살아간다.


바람 부는 엘리자베스 호숫가를 동네 언니랑 같이 걸었다.

오랜만에 유유자적 물 위를 떠 다니며 싱크로나이즈를 추는듯한 펠리컨 가족을 만났다.  

걷는 동안 시간이 지날수록 바람이 세지고 차가워져서 세 바퀴를 걷고 집에 오니 찬 바람이 몸 안을 돌아다니는 것 같다.

“아. 이럴 때 뜨거운 물에 몸을 푹 담그면 참 좋을 텐데... 온탕과 냉탕을 번갈아 들어갔다 나오고 건사우나 습사우나에도 왔다 갔다 하며 앉아 있다가 세신 해주시는 분 앞에 딱 누우면 너무 좋겠다” 하고 오래된 보일러에서 나오는 미지근한 물로 샤워를 하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단전을 치는 뜨끈함이 너무 그리웠다.



목욕탕도 좋아하고 찜질방도 좋아하는 나.

아이들 어릴 때는 애들 재워두고 동네 찜질방에서 친한 친구와 늦은 시간 만나 새벽녘까지 수다 떨며 땀을 빼주는 게 육아 스트레스를 푸는 제일 큰 방법이었다.

와이프가 애들이랑 종일 부딪치다 짜증이 하늘을 찌를 때쯤이면  눈치를 보던 남편이 자기가 아이들을 봐줄 테니 난영이랑 찜질방에 다녀오라 보내주기도 했다.

찜질방에서 땀을 빼며 한참을 수다 떨다가 목욕탕으로 옮겨 뜨거운 물에 들어가 남은 이야기들을 풀어냈었다.


뜨거운 찜질방에서 푹 “지지면” 딱 좋을 컨디션.


몇 번 한국에 갔을 때는 길어봐야 한 달, 짧게는 두 주 정도 있다가 돌아와야 하니 목욕탕 갈 짬이 나지 않았다.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한국에 가도 ‘목욕탕’ 에는 못 가보겠지만 아이들 학교 보내고 내년쯤 한국에 가면 그때는 목욕탕도 찜질방도 마음껏 가볼 수 있지 않을까..  

돌로 만든 이글루처럼 생긴 한증막에 앉아 뚝 뚝 떨어지는 땀을 수건으로 닦아내며 “아 좋다. 아 시원해~” 할 수 있지 않을까.

난영이랑 수건을 머리에 두르고 앉아 남편 흉 아이들 흉을 마음껏 볼 수 있지 않을까.

또 뜨거운 탕에 머리만 내밀고 앉아 목욕탕 안에 울리는 여자들의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물 위에서 평화롭게 떠다니는 펠리컨들을 보고 목욕탕을 떠올리는 나.

오늘 밤엔 전기담요라도 뜨끈히 켜고 자야 할까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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