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봄날 하루의 일기.
스타벅스에 커피 사러 간다는 큰 아들이 엄마 커피도 사다 줄까 묻길래 “엄마는 충분히 마셨어. 더 마시면 오늘 못 잘 것 같아” 했더니 “못 자는 게 어디 있어?? 잘 수 있다고 생각하면 자는 거지. 그렇게 약하게 마음을 먹으면 되겠어??” 한다.
말하는 아들놈 얼굴에 장난기가 가득이다.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 맞나 보다.
내가 아들이 뭘 못하겠다 할 때마다 나름 용기를 준다고 해줬던 말을 오늘 아들놈이 내게 ‘반사’ 해준다.
엄마 놀려 먹는 스물두 살 아들놈 얼굴에 개구진 애기 때 표정이 그대로 있다.
팬데믹 초반부터 엄마가 머리를 깎아 주고 있는 작은 아들이 아침부터 덥수룩한 머리를 내민다.
날씨 화창한 마당에서 작은 전기 바리깡으로 머리를 깎아주면서 머리 깎는 게 아직도 익숙지 않은 엄마가 오늘도 살짝 뒤통수에 구멍을 내놓고는 아무 일도 없는 척 다 깎았다며 목이며 옷에 붙은 머리카락을 털어주는데 큰 아들이 작은 아들에게 묻는다.
“너 당분간 어디 나갈 데 없지??”
작은 아이가 이번엔 어디를 구멍 냈냐며 제 뒤통수를 만져본다.
아주 작은 구멍이라고 며칠 머리 자라면 금방 없어진다고 괜찮다 달래 달래 아이 등을 털어주면서 큰 놈을 보며 눈을 흘겼다
에헤헤 웃고는 사라지는 큰 아들.
우리 집 장꾸.
예쁜 두 아들놈들과 함께 하는 봄날.
아침 햇살에 몇 년 전에 비단 조각들로 바느질 해 만들어 두었던 비단 물고기가 빛난다.
스팅의 ‘Englishman in Newyork’을 흥얼거리며 만들었던 빨간 물고기.
언어와 사고가 다른 이들의 땅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면서 순간순간 같은 이방인 안에서도 또 다른 ‘외계인’으로 살고 있던 나를 닮은 빨간 비단 물고기.
오늘 이 물고기는 그만 게으름 부리고 열심히 바느질을 좀 하며 살라고 내게 말을 하는 것 같다.
달걀판에 씨앗을 심어둔 하얀 데이지 새싹이 돋아난다.
잘 자라면 마당 한쪽에 옮겨 심어 하얀 데이지 밭을 만들어 봐야지 하는 마음을 불태워 씨앗을 심어뒀는데 두 주 만에 뽀록 뽀록 새싹이 돋는다.
이것을 보니 다른 달걀판에 상추 씨앗을 좀 심어 볼까 하는 욕심도 생긴다.
이러다가 농장 주인이라도 될 듯싶다.
만물이 소생하는 무르익는 봄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