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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오후의 기록

엘리자베스 호수 산책

날이 너무 좋은 일요일 오후.

아이들 밥 차려 먹이고 이불 빨래하고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이다 보니 해가 떨어져 간다.

화창한 하루가 너무 아까워 하던 일을 놓고 멀지 않은 엘리자베스 호수에 나갔다.

한 바퀴 걸으면 딱 2마일 거리  

7시쯤 도착한 호수 공원 주차장엔 차들이 가득이다.

이어폰을 한쪽 귀에 꽂고 좋아하는 노래를 스트리밍 앱에서 찾아 플레이 버튼을 누르고 걷기 시작했다.


한쪽 귀에서는 음악 소리가, 다른 쪽 귀에서는 세상 갖가지 언어들로 얘기하는 사람들의 소리가 들린다.

영어로 중국어로, 아랍어로 또 인도어로,

각자의 언어로 얘기하는 사람들 사이를 빠른 걸음으로 걷는다.

저 말들을 다 알아들을 수 있으면 참 재미있겠다는 엉뚱한 생각도 해보며 한국 아줌마들 특유의 파워풀한 워킹으로 사람들 사이를 지나 걸었다.


어느새 사람들이 줄어들고 붉게 빛나던 하늘에 어두움이 깔린다.

한쪽 귀에서는 포르테 디 콰뜨로의 음악이, 다른 쪽 귀에서는 갖가지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듣는다.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새들은 호수로 모인다.

밤새 자기들을 공격할 수도 있는 동물들을 피해 물 위에서 밤을 맞을 준비를 시끄럽게 한다.

오늘 하루 있었던 일들을 서로 얘기하고 있는 걸까.

저 소리들도 다 알아들을수 있으면 참 재미 있겠다 싶다.

어둑한 호수 위로 물결에 빛나던 햇빛 대신 새소리가 가득이다.


하늘에 별들이 하나 둘 빛을 내기 시작한다.

서늘하게 식은 바람이 불어 빠른 걸음에 오른 열을 식혀준다.

멀리 노을이 남긴 아쉬움이  얇은 불꽃 띠가 되어 나뭇가지 사이에 잠시 머물다 사그라든다.

새들도 조용해진다.

어둠으로 완전히 덮여 지나가는 사람들이 실루엣처럼 보일 때쯤 출발했던 주차장에 돌아오게 된다.

그 많던 차들이 다 가버려 주차장이 휑하다  

차 손잡이를 잡은 채 발목도 돌려보고 이렇게 저렇게 스트레칭을 해준다.

나이 든 내 몸에 대한 나름의 배려이다.


가로등이 켜진 길을 지나 집으로 돌아온다.

짧은 시간이지만 긴 여행을  다녀온 듯 동네 길이 반갑다.

다시 돌아온 집에는 개어야 할 빨래와 이 시간에 라면을 끓여 달라 보채는 작은 아이가 있다.

“네가 끓여 먹어야지  시끼야” 하면서도 엄마는  라면 물이 담긴 냄비를 가스레인지 위에 올린다.


짧게 다녀온 호숫가 여행이 순간 꿈인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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