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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글.

보고 싶은 김 복순 여사님.

작은 아이 튜터 드롭하고 기다리는 동안 갑자기, 불현듯 울 친할머니 김복순 여사가 떠올랐다.
돌아가신 지 20년도 넘은 우리 할머니.
어릴 적엔 늘 따듯하시고 상냥하신 외할머니에 비해 꼿꼿하시고 꼬장꼬장하신 친할머니가 많이 무서웠었다.
돌아가시기 얼마 전까지도 기름 발라 쪽지셨던 머리에 한복을 입으신, 늘 반듯하시고 늘 정갈하셨던 할머니.
큰아버지댁에 사시던 할머니는 나이 마흔이 넘어 낳은 늦둥이 아들 울 아버지가 엄마 보고 싶다 하면 득달같이 달려오셨었다.
중학교에 들어간 이후 가끔씩 할머니 오시면 하던 맥주 심부름. "가가 맥주 세병만 사온나."
그렇게 사온 맥주 세병. 한 병은 울 아빠 엄마가 사이좋게 나눠 드시고, 아빠가 천둥산 박달재를 몇 번 울고 넘는 사이에 엄마 먼저 잠드시고, 아버지도 술 반 병에 취해 잠드시고 나면 두병을(지금 기억하면) 와인 마시듯 우아하게 드신 할머니... 내 열여섯 살 때 일이다.. 내 열두 살 때 일이다... 하시며 당신 지나간 얘기를 옛날 얘기 들려주시듯 내게 말씀해주셨었다.
깜깜한 방에 할머니랑 둘이 누워 할머니 옛 얘기 듣다가 잠들던 그 순간이 좋아서 할머니 오시면 하게 되는 맥주 심부름이 싫지 않았었다.
두 분 큰엄마들 시집살이를 호되게 시키셨던 할머니는 늦둥이 아들이 데리고 온 우리 엄마를 무지 아끼셔서 처음엔 큰엄마 두 분이 무지 질투하셨었다고 나중에 둘째 큰엄마한테 들었었다.
큰 아버지 댁에서는 결코 손가락 하나 꼼짝하지 않으시던 할머니는 우리 집에 오시면 한복을 벗어 곱게 놓고 몸빼 바지로 갈아입으시곤 살림 잘 못하는 막내며느리 욕을 하시며 부엌 찬장부터 옷 서랍 하나하나 다 정리해주셨었다.
노래하시듯 "미쳔년이다. 사람이 이래 살 수는 없는데 암만해도 미쳔년인갑다" 하고 울 엄마 욕을 하시며 집 청소에 바닥 걸레질까지 싹 마치셨던 할머니.  "어머니~~ 욕하시면서 하실람 하시지 마셔~~~"하고 대응하시던 울 엄마. 그럼 할머니는 엄마를 한번 흘겨보시고는 다시 욕을 노래하듯 하시며 바닥을 훔치셨었다.
내가 며느리가 되고 보니 우리 엄마랑 우리 할머니는 참 친한 고부 사이였구나 싶다.
어느 며느리가 시 어머님이 자기 집을 다 뒤집고 손대는 걸 좋아했겠는가.
어느 시어머니가 친딸 집을 챙기듯 그렇게 며느집을 정리해줄 수 있겠는가...

몇 시간 만에 우리 집을 남의 집처럼 반질반질 만들어놓으신 할머니는 당신 막내아들이 어리광 부리듯 대구탕이 먹고 싶다... 스끼야끼가  먹고 싶다 말씀하시면 옛날 광고에 나왔던 것처럼 "끼리 주까??" 하시며 부엌으로 가셨었다.
키가 작고 아담했던 할머니가 쇠수저로 고기를 볶으시며 내시던 그 달그락 소리는 아직도 내 귀에 어제 들었던 소리처럼 남아있다.
커다란 냄비로 한솥 가득 대구탕이라 불리는 대구식 육개장을 끓여놓으시고 얇은 쇠고기로 일본식 스키야키를  만들어 저녁을 차려주시곤 예외 없이 맥주 심부름을 시키셨었다.

그렇게 하룻밤 우리 집서 주무시곤 다음날 아침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곱게 한복 갈아입고 단정하게 쪽지 신 머리에 은비녀를 꽂으시고 큰아버지 차를 타고 가시면서 한마디 하신다.
"너그 큰 어매한텐 암말도 마라”

그렇게 큰집에 가시면 할머닌 당신 속옷 빨래 말곤 아무것도 안 하셨었다.
나중에 큰 엄마가 아시곤 좀 서운해하셨던 기억이.

돌아가시기 얼마 전 치매에 걸리셔 음식도 잘 못 드시고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셨다.
깔끔한 분이셨기에 그 기간이 길진 않았지만 할머니께 가서 빼 짝 마른 손을 잡고 "손이 이게 뭔겨. 와 이리 말랐노? "했더니 날보고 "아이고. 와 이제 왔노. 와 이제 왔노.."하고 반가워 하셨다.
어른들이 신기하다고 승희는 알아보시나 보다 하시는데 할머니가 "아이고. 승희야. 니는 왜 안오노"하고 혼잣말을 하셨다.
내가 난 줄은 모르지만 그래도 내가 참 반가우셨었나 보다.
그리곤 며칠 뒤 할머니는 영면하셨다.
그리고 북한강이 내려다보에는 멋진 공원에 할아버지랑 나란히 누우셨다.

어릴 적 호랑이 할머니는 자라면서 내게 친구가 돼주셨다.
따듯한 햇살이 내리쬐는 아침... 그 햇살에 할머니가 보였나 보다.
그리고 오늘 우리 할머니도 그 햇살 위에서 내가 보고 싶으셨나 보다.


4년 전 오늘  페북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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