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떡쿠키는 왜 이리 맛있나.
은행 앱으로 일을 보다 했던 실수를 아침에 큰 아이가 은행에 전화를 해서 해결해 줬다.
멀대 같이 큰 키에 아빠보다 훨씬 큰 덩치의 큰 아이.
한없이 맑게 웃는 스물두 살 큰 아들이 내겐 아직도 아기 같은데 의젓하게 이런저런 일들을 해 나가는 것을 보면 참 신기하고 기특하다.
늘 곁에 두고 보고 싶은 욕심을 꾹꾹 누르며 육식 아들에게 아침 식사로 돈가스를 해줬더니 아이가 한없이 너그러워져서 엄마가 좋아하는 찰떡 쿠키를 소중하게 여기는 간식 서랍에서 에서 꺼내 두 개나 준다.
자기도 아껴 놓고 먹는 거라며.
이제 곧 곁을 떠날 내 예쁜 아이들.
세상에 나갈 준비를 하며 날개를 펴는 아이들과 둥지에서 내 날개로 아이들을 꼬옥 감싸고 있고 싶은 미련 맞은 엄마.
늘 그렇듯 엄마만 잘하면 되는 우리 집.
이제는 다 커서 되려 엄마를 키우고 있는 두 아들들이다
그동안은 이 아이들을 잘 키워내고 잘 지켜줘야 한다는 책임감에 늘 마음이 조급하고 불안했는데 아이들이 진짜 다 컸다. 여전히 짧게 짧게 예쁘고 길게 미쁜 시끼들...
요즘 보고 있는 드라마 “나빌레라”
철 없이 나이가 들고 있음에도 나이 드는 걸 깨닫지 못하고 살고 있다가 이 드라마를 보며 “노년”이라는 걸 생각하게 된다.
어릴 때는 나이 오십 살이라 하면 우와~~ 할 만큼 많은 나이인 듯 싶었고 그 나이쯤 되면 뭔가 엄청난 사람이 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막상 ‘그 나이’가 되고 보니 나이 오십도 별건 아니다 싶다.
지천명은 남의 얘기인 듯하고.
내 마음도 모르는데 하늘의 명은 어찌 알까
스무 살이었던 때도 서른이었던 때도 그리고 오십 인 지금도 내 안의 나는 여전히 철이 없고 ‘30년 전’과 별로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은데 어깨와 뻣뻣한 목과 두꺼워진 몸이 내 나이를 말해준다.
손가락이 아파 파스를 둘둘 감고 있는 이 아침에도 내 안에 있는 나는 아직 스무 살 어린애 같은데...
일흔이 된 나는 어떨까.
그때는 무엇을 하고 일을까.
들어가는 나이에 적응은 잘하고 있으려나.
변해가는 세상에 타협은 좀 하고 살아가려나.
그때쯤엔 철이 좀 들어 있으려나.
아직도 스무 살 정신 연령을 갖고 있는 오십 살 몸뚱이의 나는 이제 내 안의 나 보다도 더 큰 아이들과 산다.
훌쩍 커 버려서 이제는 오히려 엄마 아빠 걱정을 해 주는 예쁜 아이들.
아이들이 이렇게 장성하는 동안에도 내 안에 있는 나는 당최 자랄 줄을 모른다.
이래 저래 나만 잘하면 다 괜찮은 우리 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