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하루 이야기.
간단하게 만들어 달라 부탁받은 가리개는 결코 간단하지 못한 성격 때문에 작업이 더디기만 합니다.
올해 안에 완성하기로 마음을 먹으니 감침질이 좀 더 곱게 되는 걸 보면 급한 마음 다스리는 게 내 제일 큰 숙제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아들들하고 점심 데이트를 했어요.
작은 아이가 먹고 싶어 하는 음식 리스트 중 하나이기도 하고 우리 식구들 다 좋아하는 쌀국수.
어떤 분이 캘리에 십 년을 살다 한국엘 갔는데 캘리에서 제일 그리운 게 쌀국수라며 브런치 글에 댓글을 다셨는데 남의 일이 아니겠구나 싶어요.
미국에 살면서 가장 많이 하게 되는 외식 메뉴가 베트남 쌀국수입니다.
추운 날 생각 나는 대표 음식 이기도 하고 은근슬쩍 국물에 들어있는 MSG에 중독이 돼 있는 것 같기도 해서 한동안 안 먹으면 살짝 금단 증상을 느끼게 되는듯한 음식이지요.
큰 아들이 맛있는 집이라고 데려다줬는데 숙주가 다 떨어졌다며 오더를 받더라고요.
아들이 고른 집이라 툴툴 거리지도 못하고 숙주 빠진 쌀국수를 맛있다 맛있다 하며 먹고 왔어요.
엄마 입맛 닮았다 하면 기분 나빠하는 큰 아이랑 사이좋게 나눠 먹은 스프링 롤. (작은 아들은 안 드세요. )
내 입맛 닮은 게 맞는데 격하게 거부하는 큰 아들에게 속으로 하는 말.
“넌 똑 나 닮았어. 시꺄”.
나 닮은 장난꾸러기가 자기 닮은 미소를 소스 위에 만들어 줍니다.
잠깐잠깐이지만 참 예쁜 아이예요.
저번 주에 팝콘 메이커에 볶아둔 커피가 맛이 들었어요.
옆집 새 이웃이 가져다준 초콜릿 한통은 커피와 함께 먹어대느라 바닥이 보입니다.
이게 다 내 살이 될 것인데 어찌 이리도 맛이 있을까요.
동네에 붉게 가을이 물들었어요.
집 앞에 떨어진 낙엽도 붉습니다.
코스트코에서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
사거리에서 신호 대기 중에 거울 속 붉은 석양을 봤어요.
너무 아름다워 정지 신호 중에 얼른 사진부터 찍었습니다.
작은 거울 속에 담긴 아름다운 세상을 카메라에 다시 담았습니다.
Daylight savings가 끝나고는 해가 더 빨리 져버리니 밤이 무지 긴 느낌입니다.
긴 밤에 다시 꺼내 보고 싶은 예쁜 석양을 등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정신머리를 냉장고에 넣고 다니는 것 같아요.
오후 늦게 간 코스트코에 사람이 너무 많아 어머 어머 웬일로 이렇게 사람이 많데 하며 장을 보고 나왔는데 내일이 땡스기빙이라네요.
땡스 기빙 데이에 아이들에게 갈비찜을 해줘야지 했는데 갈비는 사오지도 못했어요.
냉장고 안 음식들로 미국 명절을 지내야겠습니다.
이층에서 들리는 두 아이의 웃음소리가 엄마를 참 행복하게 합니다.
다섯 살 차이 두 아이가 만나면 수준이 하향 평준화가 돼서 심하게 철이 없는 상태들로 변하지만 그래도 좋습니다.
엄마 옆이니 더 철이 없어지는 거겠지요.
며칠 안 남은 작은 아이 방학.
하루하루 소중하고 감사하게 보내려고 합니다.
순간순간 튀어나오는 욕을 삼키며 고운 엄마가 되어 보고자 노력 중이랍니다.
다들 가족들과 편안하고 행복한 땡스기빙 보내세요.
Happy Thanksgiv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