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다시 제자리

작은 아이의 봄방학에 맞춰 한국에서 날아온 남편.

몇 달 만에 가족이 모두 모여 잠시 집이 북적거리고 따뜻해졌었다.


닷새 만에 보스턴으로 돌아간 작은 아이.

얼어버린 활주로 때문에 연착된 비행기로 열두 시간 만에 집에 왔던 아이는 다시 막내 애기로 돌아가 침대와 한 몸이 된 채 밀린 어리광을 짧게 부리고는 제 자리로 다시 돌아갔다.  

단 며칠이라도 꼬릿 꼬릿 한 아들의 냄새를 킁킁 맡으며 보고 싶었던 갈증을 풀 수 있어 너무나도 행복했던 엄마.


기러기 생활 6년 차.

다섯 번의 생일을 혼자 보낸 아내를 위해 올해 생일은 꼭 같이 하겠다고 작년 생일날 약속했던 남편은 그 약속을 지키러 아들보다 일주일을 더 집에 있다가 생일 미역국을 끓여 주고는 한국으로 돌아갔다.


한국 시간에 맞춰 집에서 일을 해야 하기에 여행도 한번 못 가긴 했지만 눈 마주치고 손잡고 얘기 나눌 수 있어 또 너무나도 행복했던 시간들.

미뤄뒀던 아내의 징징 거림을 조용히 받아주는 든든한 남편.


코로나로 인해 긴 시간 이산가족이 됐던 우리.

그동안 잘 견뎌줘 고맙다는 남편의 한마디에 어깨에 올려져 있던 엄마라는 짐의 무게가 많이 가벼워졌다.

가족들과 헤어져 혼자 지내는 이 사람도 많이 힘들었을 텐데 조용히 내 어깨를 보듬어 주는 남편이 참 고마웠다.


아내의 생일을 챙겨주고 그날 저녁 비행기로 다시 한국으로 돌아간 남편.

밤 사이 우리는 다시 태평양을 사이에 둔 기러기 가족이 되어있었다.


오랜 시간 떨어져 있다 보니 함께 할 수 있는 짧은 시간들이 얼마나 소중하게 느껴지는지.

주방 창가로 옮겨둔 앉은뱅이 탁자에서 바라본 캘리포니아의 봄 하늘.

 아이는 데이트하러 나가고 텅빈 집에서 혼자 올려다보는 하늘.

가족들이 제자리로 돌아가 내 가슴은 시린데 봄날은 속절없이 좋기만 하다.


동쪽 멀리 작은 아이와 서쪽 바다 건너 남편과 아직은 내 옆에 있는  큰 아이가 항상 하느님의 보호 아래 있게 해 달라 오늘도 기도해본다.



작가의 이전글 불면의 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