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바보 엄마의 긴 밤
이렇게 자그마했던 꼬맹이가 오늘 스무 살 생일을 맞았다.
엄마 껌딱지라 한 번도 떨어져 본 적 없는 작은 아들.
작년까지는 생일이면 제일 좋아하는 미역국에 보쌈으로 상을 차려 줬는데 이번엔 너무 멀리 있어 페이스타임으로만 얼굴을 봤다.
친구들이랑 밥을 먹었다며 보내준 사진.
이제는 엄마 없이도 혼자 잘 지내는구나 하는 기특한 마음이 가득이면서도 이 밤, 독립을 못한 엄마는 아들 보고 싶은 마음에 집안을 서성거린다.
아이 방에도 가 앉아있다가 거실 소파에 멍하니 기대 있다가 마음 둘 데가 없어 창문을 열고 밤공기를 마셔본다.
품을 떠난 아이는 홀로 잘 서고 있는데 떠나보낸 어미는 품었던 자리가 너무 커 가슴이 빵 뚫린 것처럼 허전해서 몸 둘 곳을 모르겠다.
주책맞게 찔찔 울어대며 청승을 떤다.
이럴 때 술이라도 마셔보면 좋으련만 알코올은 한 방울도 마시지 못하는 체질이니 술 대신 차를 우린다.
이래서 술들을 마시는구나 하면서.
어릴 때는 요놈들이 얼른 자라야 내가 편해질 텐데 했는데 막상 큰 아이와 작은 아이가 저렇게 커버리니 이제와서는 좀 천천히 자라줘도 됐을 것을 하는 마음이 생긴다.
편안함에 배부른 엄마가 하는 부질없는 푸념이겠지만 아이들 어릴 때가 많이 그리워진다.
열 살짜리 저 아이는 좋아하는 블루베리 무스 케이크와 과자 몇 봉지를 들고 세상에서 가징 행복하다 했었는데 이제 스무 살짜리를 행복하게 해 주는 건 너무 어렵다.
과자 값과 비교도 안 되는 애플 워치 같은 게 아이를 행복하게 해 준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아이들의 행복을 위한 비용도 자란다.
가시고기처럼 몸을 기꺼이 내어주며 부모는 작아지고 부모가 작아지는 만큼 아이들은 커진다.
멀리 보스턴에 있는 아이가 페이스 타임을 하며 애기 때처럼 반달눈을 하고 웃어줄 때 엄마는 무장 해제가 되어 버린다.
그래서 하고 싶은 잔소리도 삼키고 환한 미소를 지어 답을 해준다.
아이의 미소가 내게 힘이 되어주듯 내 웃음이 아이에게 따뜻한 안정이 되기를 비라면서.
생일이라고 친구들이 한국 음식을 사줬단다.
한국 식당이 맛없기로 유명한 보스턴이지만 오늘만큼은 아이가 맛있게 잘 먹었기를.
생일이라고 아이에게 한국 음식을 사준 기특한 친구들에게 우리 아이도 좋은 친구가 되어주기를.
멀리 있는 엄마의 마음속 기원.
오늘 미사 중에 아이를 위한 기도를 바쳤다.
내 기도 안에서 아이가 행복하기를.
내 기도 안에서 아이가 평안하기를.
내 기도 안에서 아이가 건강하기를.
내 사랑 안에서 아이가 굳건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