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환학생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갔을 때, 나는 처음으로 디지털 노마드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이야 디지털 노마드의 개념이 엄청 보편화되었다지만, 그때만 해도 스페인에는 디지털 노마드 비자가 없었다. 내가 디지털 노마드가 되고 싶었던 이유는 단순한데 이곳저곳 원하는 나라에 살면서 특별히 돈이나 일자리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완전한 프리랜서보다는 특정 회사에 소속이 되어 있으면서 사무실에서 근무하지 않는 형태를 디지털 노마드라고 부르는 것 같았다. 진짜 최고 아니야?
그러나 디지털 노마드가 되려면 즉, 일자리에 구애받지 않고 해외를 마음껏 돌아다니면서 살려면 능력이 있어야 했다. 회사는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직원 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재택근무(편의상 재택근무라고 부르겠다)를 하는 직원에게 더 많은 것을 바라기 마련이니 말이다.
운이 좋게도 나는 스페인에 다녀온 후로 나쁘지 않게 스페인어를 할 줄 알게 되었기에 영한서 세 가지 언어의 번역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복학을 하고 동시에 일을 하기 시작했다. 단발성 작업이라도 프리랜서로 들어오는 일은 모두 맡았다. 프리랜서라고 하면 흔히 직장인에 비해, 하고 싶은 일만 하면 되는 자유로운 근무 형태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렇진 않았다. 내가 몇 번 거절을 하면 그 클라이언트는 이후로 나에게 다시 일을 의뢰하지 않기 때문에 할 수 있는 한 모든 일을 해내야 했다.
아무리 언어를 할 줄 안다지만 일을 해본 사람은 알 거다.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 심지어 내 전공은 스페인어도 영어도 아닌 이공계열이기 때문에 전공 공부를 하고 언어 공부를 하면서 일을 하는 것은 생각보다 더 힘에 부쳤다. (시차로 인해) 해외 클라이언트로부터 새벽에도 견적 문의가 들어오면 자다 깨서 답변을 해주다 보니 어느새 나도 모르게 강박과 불안이 생겼다.
정신 차려 보니 도저히 안 되겠다는 위기의식을 느낀 내가 나 자신을 학교 상담 센터에 앉혀놨다. 학교도 더 이상 미룰 수 없고 그러면서 하루라도 빨리 스페인에 돌아가기 위해 경력을 쌓고 공부도 하다 보니 뇌가 터지기 직전이었던 거다. 그걸 다른 사람들은 '갓생'이라고 부르더라. 인간이 무슨 수로 신처럼 살겠는가. 안에서는 썩을 대로 썩어가고 있던 거지.
어느 순간부터 학기 중에 단순히 학교 공부만 하는 것은 뭔가 뒤처진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 자신을 계속 착취하며 이 지경까지 왔던 것이다. 상담을 몇 개월 동안 지속하면서 점차 마음의 안정을 되찾았다.
사람은 모두 자신만의 속도가 있다. 나는 나의 적정 속도를 모르는 상태로 미친 듯이 엑셀만 밟았다. 그러다 결국 고장이 나버렸고, 이젠 나의 적정 속도를 조금은 찾은 것 같다. 아니, 그보다는 최대 속도일 때, 그만 속도를 줄어야 할 때의 느낌을 알게 되었다고 하는 게 더 맞을 것 같다. 그렇게 1년이 지난 어느 날, 막학기를 남겨 두고 나는 (스페인어 관련) 창업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