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독서광의 혼잣말
글을 읽을 때 사람들은 어떤 부분에 매력을 느끼는 것일까?
젊은 시절 이어령 교수의 글을 읽을 때면 때때로 정교한 문맥보다 문체에 먼저 압도당하는 기분이었다. 그의 글은 이목구비가 완벽한 서구적 미인을 떠올리게 했다. 비교적 최근에 딸(이민아 작가)을 여의고 쓴 『딸에게 보내는 굿 나잇 키스』를 읽고 나서야 그동안 화려한 문체에 가려졌던 작가의 진심을 놓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설국』의 저자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문체는 환상적이고 유려하면서도 매혹적이다. 개인적으로, 스토리를 압도하는 문체의 힘이 느껴지는 묘한 매력의 소설로 기억되는 작품이었다. 한 때 사색적이고 철학적인 헤르만 헤세의 문체에도 빠져 허우적댔다. 그의 글은 때때로 난해하기도 하고 친절하지 않았지만 계속해서 읽게 되는 매력이 있다.
흔히 톨스토이 하면 소설이 먼저 떠오른다. 그러나 내가 가장 영향받은 작품은 『행복론』이다. 심오한 내용을 다룬 아름답고 정갈한 문체에 작가의 깊은 종교적 사유가 스며 있어 읽을수록 마음에 와서 박혔다.
박경리 작가의 『토지』는 우리말의 토속적 아름다움을 알리고 싶어 하는 작가의 노력과 집념이 글의 격을 높였다고 느꼈다. 생생한 방언과 풍부한 어휘가 담겨 더 촘촘해진 문체는 장편을 끝까지 읽도록 이끌어가는 장치이고 힘이었다.
평생 활자중독 소리를 들으며 이 외에도 상당한 작가의 책과 사랑에 빠져보았다. 가리지 않고 읽었으니 다양한 장르의 책을 섭렵한 독자인 셈이다. 이 책 저 책 읽다 보면 화려하고 기교가 뛰어난 글보다 질박하고 담백한 문체의 글이 더 오래 남는다. 많은 경우, 독자를 감동시키는 것은 글의 유려함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작가의 진심이 와닿는 순간이 아닐까 생각한다. 읽는 이들이 편안히 몰입하도록 돕는 꾸밈없는 문장, 그러나 의외의 묵직한 울림이 담겨 있는 글줄이 더 깊게 박힐 때가 많다. 내게는 펄 벅, 미우라 아야꼬의 글이 그러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뛰어난 문체 그 자체가 매력인 작품들도 많다. 탁월한 문체와 진심을 동시에 담은 작품을 만날 때의 감동은 더 강력하다. 작가에 따라서는 그 특유의 문체를 이해하고 난 후에야 비로소 그의 이야기가 제대로 들려오기도 했다. 그래서 외국 작가의 글은 번역본끼리 비교해 읽기도 하고, 원작을 찾아보게 된다.
문체에는 작가의 사유와 삶, 시대적 배경이 개성 있게 녹아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문체가 언어로 표현된 예술, 문학 작품을 이해하는 하나의 주요 통로라는 점은 많은 독자들이 동의할 것이다. 새로운 글을 접할 때면 그 작가의 문체를 느껴보기 위해 천천히 읽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대개 두세 권의 책을 읽고 나면 작가 특유의 문체가 잘 느껴지고, 이후 그 작가의 작품은 좀 더 친근하고 이해하기 쉬워진다.
물론 문체가 모든 것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문체에 매료되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편협한 나만의 성향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작가의 작품들을 접하고 작가마다 다른 문체를 느껴보는 일은 나의 독서생활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한 가지는 명확하다. 글을 읽으며 문체를 느끼는 순간 작품의 결이 좀 더 쉽게, 깊이 있게 다가올 것이다. 단, 잘 쓰인 글에 한해 적용될 기준일 수도 있긴 하지만.
부족한 나의 문체는 어떠한지, 정체성이 있기는 한지, 누구의 마음과 닿았을지 알 수 없으니 당분간 나는 즐거운 독자의 역할이 더 행복할 듯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