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시피대로가 아니면 어때
잘하지는 못하지만 요리를 좋아한다.
결혼 삼십 년이 넘어가니 명절요리, 한식 집밥 등 그런대로 자신 있는 요리도 생겼지만, 세상에는 왜 그리 음식재료도 많고 요리 종류도 많은지 새록새록 모르는 것투성이다.
새로운 요리를 만날 때의 감정은 마치 도서관 서가의 책들을 볼 때와 비슷하다. 나는 심각한 활자중독자다. 도서관에 가면 세상의 많은 양서 중 극히 일부일 이 안의 책도 다 못 읽었구나 싶어 도전의식이 생긴다. 새로운 책을 만날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런 내게 낯선 책 앞에서 전투의욕을 불태우듯 새로운 호기심과 개척정신을 불러일으키는 또 다른 존재가 요리라고나 할까.
요리는 지루하지 않다.
같은 재료로도 항상 새롭고, 창의적이고, 만드는 이의 의지대로 자유로이 변형시킬 수 있기에 요리하는 사람 안의 진취적인 사고를 이끌어낸다. 그래서 매력적이다.
새로운 음식을 먹어보는 일도 하나의 배움이고 즐거움이다. 나를 제외한 우리 가족은 입맛이 매우 보수적이다. 늘 먹던 종류의 음식만 즐겨서 여행을 가면 음식 때문에 고생하는데, 나는 다양한 먹거리 때문에 여행이 더 즐거운 사람이다. 새로운 음식을 먹고 집에 와서 나만의 맛으로 재현해보기도 한다.
먹고 만드는 두 가지를 다 즐기니 신문, 잡지 혹은 어디서든 요리 레시피가 눈에 띄면 일단 읽게 된다. 다른 사람들은 같은 재료로 어떻게 하는지, 무슨 노하우가 있는지, 혹은 그저 음식 재료와 그림(혹은 사진)을 구경하는 재미에 홀리기도 한다.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보기 전에 인터넷이며 책을 통해 요리법을 열 가지 이상 뒤져볼 때도 있다. 그러고 나서 만들 때에는? 내게 익숙한 방식을 응용해도 된다. 내 요리는 내 것이니까.
도전적인 요리를 사랑한다. 요리하기를 즐기는 마음에 약간의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 아이디어를 내면 같은 일이라도 더 즐겁다. 내가 만든 요리 한 접시로 먹는 이에게 즐거움과 사랑과 관심을 한 번에 전할 수 있으니 얼마나 효율적인가.
아마도 이것이 아직 요리에 싫증을 내지 않을 수 있었던 비결이지 싶다. 가끔, 아주 가끔은 새로운 시도가 실패하기도 하지만 그럼 또 어떤가. 요리의 기쁨은 늘 내 안에 살아있는 것을.
실험의 한 예. 언젠가 배추김치에 매실액과 설탕 대신 여러 과일을 갈아 넣어보았는데, 사과, 파인애플은 성공이었으나 유자는 특유의 향이 강했고, 바나나를 넣은 김치는 배추줄기가 노래졌었다. 노란 김치줄기가 보기에 꽤 낯설었다. 노랗게 착색된 김치는 고춧가루 듬뿍 넣은 김치찌개로도 먹고, 카레가루까지 첨가해 볶음밥으로 만들어 먹어치웠다. 맛은 좋았다.
때로는 결핍에서도 새로운 요리가 탄생한다. 냉장고 안 재료가 모자라는데 특정 음식이 먹고 싶다면? 대체할 재료나 과정을 생각해 내면 된다. 우리 집의 애호박김밥은 그렇게 탄생한 메뉴였다. 시금치나 오이 대신 채 썬 애호박을 살짝 볶아 넣은 김밥은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생활 속에서 끊임없이 소재를 찾고 상상해 가며 만드는 요리는 하나의 작은 작품이 된다. 완성된 이미지를 상상하며 요리를 하다 보면 제법 근사한 창작자가 되는 기분이어서 오늘도 나는 즐거이 새로운 요리의 세계를 탐색한다. 레시피대로가 아니면 어때! 요리는 자유로운 나를 만나게 해 주는 세계라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