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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적령기 유감

by 온현


우리는 결혼적령기라는 말을 자주 써 왔다. 아마 동양권, 한국에서 더 잘 통하는 개념일 것이다.


대학시절 원로 여교수님 한 분은 몇십 년 만에 우연히 만난 대학동창과 결혼하셨다. 은사님은 초혼, 사부님은 사별 후 재혼이셨다. 당시 60대 중반이셨던 두 분은 성대한 결혼식과 신혼여행을 계획하셔서 제자들에게 화제가 되었다. 평소 엄격한 스승, 깐깐한 분으로 소문났던 교수님의 수줍은 모습에 제자들의 장난기가 발동했다. 근엄한 교수님께 신혼선물로 아주 화사한 커플 잠옷을 사 드렸다. 의외로 무척 좋아하셨다는 후문이 들려왔다. 두 분은 행복하게 해로하셨다고 들었다.


나의 경우도 당시에는 이른 결혼이 아니었다. 일하고 공부하다 당시에는 노처녀 소리를 듣는 나이에 결혼했다. 남편이 동갑내기 교회 처녀와 결혼하겠다고 말씀드리자 시어머님은 대뜸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그 처녀가 나이가 들어 시집갈 데가 없으니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너를 붙잡은 거 아니냐?"


남편이 5년간 며느리감을 짝사랑했다는 소리에 노여우셨던 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내가 결혼하기 전 두 살 위의 오빠도 노처녀 동생 때문에 자신에게 시집 올 사람이 없다고 나를 들볶았다. 그때는 그만큼 결혼적령기를 넘기는 것이 큰 일로 여겨졌다. 결혼의 시기와 여부조차 본인의 선택이 아닌, 사회가 정한 범주에 맞추어야 했다. 대개 이십 대 중반 정도까지로 여겨진 적령기를 넘기면 무슨 문제가 있는 것처럼 염려의 눈초리가 날아오던 갇힌 결혼관의 시대였다. 그러니 오빠의 지청구는 동생을 향한 애정 어린 걱정이기도 했다.


서른이 되어 결혼하는 동생에게 잔소리했던 오빠는 정작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어 40대 중반에야 기혼이 되었다. 지나고 보니 나 때문에 늦어진 것만은 아니었던 듯하다.


보수적인 집안에서 자란 우리 5남매는 다들 순서가 바뀌어 동생이 먼저 결혼하는 역혼을 했다. 늦도록 결혼 안 한 큰딸 때문에 둘째 딸을 가장 먼저 결혼시킨 친정어머니는 오빠가 결혼하기 전까지 내 결혼으로 위안을 삼으셨다. 늦게 본 사윗감이 마음에 드신 모양이었다. 사람들이 노처녀 딸(나)의 안부를 물으면


"나이가 무슨 상관입니까? 우리 딸은 늦게 갔어도 시집만 잘 갔어요."


하셨단다. 물론 어머니의 기준은 사람됨이었기에 가능한 대답이었다.


그렇게 본의 아니게 우리 집은 결혼 적령기와 순서에 대한 통념을 뒤집은 집안이 되었다. 지금은 결혼을 꼭 해야 할 필요도 없고 언제든 정말 좋은 사람이 있을 때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85세의 어머니이시다.


사회적 통념에서 결혼적령기의 개념은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 부모를 닮아 우리 집 아들들도 결혼이 늦어질 눈치라 이런 변화가 더욱 기껍게 느껴진다. 지구상에는 수십 억의 인구가 산다. 그 많은 결혼에 하나의 기준으로 통일된 '적령기'가 과연 의미 있을까?


결혼은 언제 하느냐보다 누구와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었다. 이미 한국사회도 획일화된 결혼적령기의 기준이 적잖이 흐려졌다. 각자의 고유한 시기를 존중하는 사회가 되어가는 추세는 나이 찬 자녀들을 둔 부모의 입장에서도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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