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기준
아주 오래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나이'라는 제목의 단편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유명작가의 단편집에 끼어 있던 짧은 글의 내용은 이러했다.
"한 남자가 소설가가 되고 싶어 착실하게 명성과 부를 쌓아가던 일을 그만두고 작은 집필실을 마련했다. 그는 일생의 목표인 최고의 작품을 위한 준비에 매달렸다. 자료를 모으고 생각하고 기획을 하고 고민하는 새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다. 무려 삼십 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후, 그는 드디어 소설을 쓸 준비를 완벽히 마쳤다. 그러나 바로 그다음 순간, 삼십 년간 방치되어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그의 몸이 반항을 일으켜 그는 죽고 말았다."
꽤 인상적으로 읽은 단편이었다. 정확한 작가가 기억나지 않아 챗GPT에게도 물어보았지만 찾지 못해 아쉽다. 아마 영미소설 중 하나로 기억날 뿐이다.
작가의 이름을 잊었어도 이 단편 속 주인공의 삶은 오랜 시간 화두가 되었다. 소설의 남자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꽤나 완벽주의자라 많은 일에서 준비만 하다 실행을 못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작가는 그가 꿈꾸는 일에만 몰두하느라 가장 귀중한 생명과 시간을 잃어버린 사람이 된 것을 풍자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조금 다르게 바라본다면 어떨까?
소설의 주인공, 그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죽었으니 불행했다고 평가해야만 할까? 행복의 기준이 결과나 성취도와는 별개라면, 무언가를 추구해 가는 과정 자체에 비중을 둔다면, 그는 실제로 행복하지 않았을까?
20대 중반에 한 출판사의 신인작가 공모에 당선되어 단독시집을 낼 기회가 있었다. 막상 되고 나니 계속해서 좋은 시를 쓰는 시인'이 될 자신이 없었다. 나는 비겁하게 도망쳐 숨었다. 그동안 읽어온 수많은 빛나는 문장들에 비해 내 글은 너무 평범해보였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좋은 글을 쓸 재능이 있는 사람이 책을 내야 한다는 완벽주의자, 이상주의자가 나였다. 나의 글을 발전시킬 기회를 스스로 놓았던 셈이다. 지나고 나서 크게 후회했던 일이다. 그랬던 내가 돌고 돌아 뒤늦게 다시 기약 없는 글을 쓰고 있다.
이런 나라도, 위의 관점에서라면 그동안 지내온 나의 삶 그대로 괜찮은 것 아니었을까?
바라보는 기준에 따라 글의 해석은 다양할 것이다. 어쩌면 소설 속 그는 진정 원하는 일을 기대하며 걸어가는 중이어서 그 삼십 년이 행복했을 것 같다. 꿈꾸는 내내 그의 영혼은 희망으로 반짝이고 있었을 테니 말이다.
한 발 내디뎌 보지도 못한 꿈보다는, 성취와 상관없이 준비하고 노력해 보는 자체만으로 충분히 행복할지도 모른다. 요즘 내가 글을 쓰며 행복한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