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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을 통과하는 자세

삶이 힘든 순간

by 온현

살아오는 동안, 해결하기 힘든 문제와 씨름하다 지칠 때면 가도 가도 끝없는 터널을 지나는 기분일 때가 있었다. 끝이 어디인지 모르고 가는 걸음은 갈피를 잡기 어려웠다. 방향타 없이 낯선 길을 가는 매일이었다. 삶이라는 여행길에서 만나는 어려움은 다양한 형태이지만 결말을 알 수 없을 때 더 고통스럽게 다가온다. 더는 버티기 힘들다 싶은 나날에 종착지가 없을까 두려워지는 것이다.


언제인가부터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이런 상상을 했다.

난 지금 무척 어둡고, 아주 길고 긴 축축한 터널을 지나는 중이라고.

"모든 터널에는 끝이 있다.

그러니 아무리 길어 보여도 터널은 언젠가 끝나고 밖이 보이는 순간이 올 것이다.

터널 밖에서 만날 풍경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끝이 있을 것이라 믿기에 버틸 수 있다"

라고.


이 말을 되새김질하는 것만으로도 포기하지 않을 만큼은 힘이 났다.

나의 터널 밖이 비바람이 불지 햇살이 쨍할지 나가보기 전에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앞이 안 보이고 천정도 막힌 터널보다야 낫지 않을까, 상상을 하며 내내 버텼다. 끝이 있다고 생각하니 어떻게든 버텨졌다.


그리고 어느 날, 드디어 터널을 다 통과하고 보니 나만 터널을 지나온 게 아니었다.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다들 자신만이 힘든 터널을 지나고 있다고 생각하며, 옆을 돌아보지 못한 채 그 어둠 속을 외로이 헤쳐 나오고 있었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터널을 통과하며 씨름하는 중이었던 것이다.


그렇다.

모든 터널에는 반드시 끝이 있었다.


욱아의 터널, 질병의 터널, 불화와 갈등의 터널, 경제적인 어려움, 직장의 어려움, 불안한 진로, 소통부재와 부조리의 터널...


그게 무엇이든 간에, 외롭고 길었던 터널을 통과하는 그 고단한 여정 내내 보이지 않는 기도의 힘이 한 사람 한 사람을 밀어주고 있었음을, 지나고 나서야 아는 우리들이었다.


통과해 본 사람만이 아는 터널의 비밀.


한 번 터널을 성공적으로 지나 본 사람들은 더 이상 이 길이 외로운 경주가 아님을 믿는다. 그들은 전보다 단단한 걸음으로 앞을 향할 수 있게 된다. 새로운 터널을 만나더라도 조금씩은 수월하게 걷는다. 그러다 끝내 길을 비추며 반짝이는 작은 유도등을 발견해 내는 것이다.


오늘도 터널은 조용히 입을 다문 채, 이제 막 터널을 걷기 시작한 이들의 힘든 걸음을 묵묵히 지켜보고만 있다. 어려워 보여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걸어가면 누구나 터널을 통과해 내고야 말 것을, 터널 끝 환한 풍경의 감사함을 알게 될 것을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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