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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

내게 귀 기울이기

by 온현

일상 속에는 다양한 신호와 규칙이 배치되어 있다. 수학교육을 전공한 남편은 규칙에 관심이 많다. 풀잎 하나에도 수학적 규칙이 있다고 말한다. 반면 사람의 심리사회적 문제에 민감한 전공인 내게는 다른 현상들이 먼저 보인다. 우리 몸과 마음이 보내오는 신호가 그것이다.


언젠가부터 심한 감기나 몸살이 오려고 할 때면 여지없이 어깨와 팔뚝부터 쑤시고 아파왔다. 마치 무거운 모래주머니가 양어깨와 팔에 매달려 있는 기분이다.


상처는 어디에나 흔적을 남긴다.


우리 몸은 신비해서 본스캔 검사를 해 보면 오래전에 다친 흔적도 그대로 남아있다고 한다. 우리의 뼈가 힘들었던 사건을 그대로 기록하는 것이다.


언젠가 한의학 교수님에게 "질병이 올 때 몸의 약한 부분, 전에 아팠던 부분이 먼저 통증이나 반응을 일으킨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오래 앓다 보니 그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니어서 어느새 몸의 반응으로 내 몸을 돌보고 쉬어야 할 타이밍을 가늠하게 되었다. '왜 이리 늘 아프지?' 우울해하는 대신 스스로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신호로 받아들이면 덜 억울하다.


갑작스러운 편두통이나 눈의 압통, 심장의 두근거림, 안면홍조와 위통은 체력이 임계치에 다가간다는 신호이다. 이 때는 무조건 쉬어야지 순간 방심하면 한밤중에 응급실 손님이 된다.


친정어머니께서 며칠 왔다 가셨다. 계시는 내내 잠을 못 잤더니 다시 신호가 오나 보다. 자고 나면 가슴이 답답하고 브레인포그 현상이 있다. 온몸에 젖은 솜뭉치가 채워진 기분. 갈수록 신호도 다양해지고 있어서 잘 읽어야 한다.


신호가 왔으니 심해지기 전에 나를 돌보아야 할 시간, 나의 심신을 두루 살펴야 하는 시간이다.


연약한 부분을 방치했다가 큰코다치는 것은 마음의 상처도 마찬가지여서, 그날의 마음을 잘 돌보아야 몸도 편안해지는 탓이다.


마음이 힘든 날에는 그 여파가 신체증상으로 가지 않도록 잘 다독이고, 몸이 힘든 날에는 기분이 함께 가라앉지 못하도록 신경 쓰는 것.


심신에 두루 의탁해 살아가는 인간의 의무인 듯싶다.


오늘은 몸이 먼저 신호를 보내고 있으니, 마음까지 아파 가라앉지 않도록 먹으면 행복해지는 단맛 나는 음식을 먹고 약을 먹어야겠다.



나의 소울푸드인 잣죽이나 부드러운 사과치즈 샌드위치, 연한 차 한 잔이 있으면 금상첨화이다.


기분 좋게 배가 부르면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한여름에도 예쁘게 피고 있는 꽃에게 기특하다 인사도 해 보기로 한다.

나도 어느덧 '스스로를 사랑하며 지키는 책임을 다하는 하루'를 추구하는 야심 찬 인간이 되었으므로.

오랜 지병이 주는 경험에는 작은 지혜도 따르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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