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도 미니멀리즘
몇 년 전 지금의 집으로 이사 온 후 어쩌다 가까운 곳에 사장님과 인사를 튼 찻집과 커피집이 생겼다. 지인들이 오면 기분 좋게 함께 갈 수 있는 곳들이다. 자주 가지는 않지만 아지트가 생긴 것 같아 좋다.
최근 후배와 커피를 마시러 커피집에 갔을 때 사장님이 작은 무쇠 탕관을 주셔서 얼결에 얻어왔다. 선물 받은 것인데 커피집에선 필요 없으니 잘 쓸 사람이 가져가라며 거저 주셨다.
그 답례로 앤티크 잔이라도 몇 개 갖다 드리려고 적당한 찻잔을 고르느라 다기장을 열었다.
많이 나누고 선물하고 줄였는데도 아직 커피잔 겸 홍차잔이 200조가 넘는다. 찻잔은 예전에 수업 자료로 쓰려고 모은 앤티크, 빈티지들이 대부분이다.
사람 일은 알 수 없는 것이다. 차 수업을 하지 않기로 마음먹으면서 열심히 모은 소장품들이 집에서 지니기에는 너무 많은 양이 되었다. 아깝지만 더 잘 쓰일 곳에 나누고 선물도 하고, 필요한 친구들에게 벼룩도 했다. 부지런히 비웠지만 미니멀라이프는 아직 멀었다. 과연 이생에 가능은 할까?
어쩌면 아직 넘치게 갖고 있는 차도구들은 버리지 못한 욕심의 잔재일지도 모르겠다.
올해 들어 계속 차수업 의뢰가 들어왔다. 차수업은 하지 않기로 원칙을 정했지만 종종 문의를 받는다. 공부만 계속하고 수업을 하지 않으니 주변에서 궁금해하기도 한다. 때로는 일일이 설명하기 힘들어서 그냥 "한량이 체질이에요" 하고 만다.
이번에 수업을 부탁한 이는 거절하기 힘든 가까운 관계이다. 벌써 조심스레 서너 번 부탁받은 참이다. 자신의 일에 필요하니 시간, 체력이 허락하는 만큼 기초과정이라도 가르쳐 달라는 호소였다.
어찌 거절하나, 몇 번 찻자리라도 만들어야 할까 하고 고민하고 있었다. 남편이 자초지종을 듣고는, 체력을 생각해서 좋아하는 글쓰기에 에너지를 집중하라며 바로 선을 그어준다.
남편은 종종 결정장애인 나를 대신해 기준을 세운다. 이번처럼 과도한 에너지 낭비를 경고하는 악역을 자처한다. 부탁을 잘 거절하지 못하는 내게 단호한 남편이 있다는 건 참 감사한 일이다.
하고 싶다고 다 해낼 체력이 아니니 덜어낼 것은 덜어내야 하리라. 삶의 계획에도 미니멀리즘이 필요한 시간이다.
오늘은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다기장을 뒤집은 김에 일부라도 물로 세척해 말려두어야겠다.
차도구들을 씻는 동안 내 안의 불필요한 욕심도 살살 씻겨나간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