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단점을 대하는 자세
학창 시절 존경하는 교수님이 계셨다. 유학시절 만난 부군과 국제결혼을 하신 분이었다. 두 분의 사랑 이야기는 학생들에게 유명했다.
대학원생일 때 그 교수님 댁에 놀러 갔다. 자연히 교수님과 부군의 이야기가 화제가 되었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해 주신 치약에 얽힌 이야기가 지금도 기억난다. 교수님 말씀으로는 남편을 열렬히 사랑해 결혼했음에도, 치약을 가운데부터 함부로 짜서 쓰는 사부님의 습관이 거슬려 번번이 다툼이 되었단다. 끝부터 예쁘게 짜서 쓰는 교수님에 비해 사부님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몇 번 다툰 후 각자의 방식을 존중해서 치약을 따로 쓰는 것으로 해결하셨다며 웃으셨다. 정말 교수님 댁 화장실에는 각기 다른 모양으로 사용 중인 치약 두 개가 있었다. 잉꼬부부로 유명한 두 분이셔서 당시에는 저런 작은 일로 싸움이 될까 의아했던 기억이 난다.
막상 내가 결혼해 보니 치약을 짜는 방식의 차이는 충분히 싸울 만한 일이었다! 그만큼 결혼생활에서는 서로의 큰 다름이 아닌. 일상의 작은 틈을 참기 힘든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 주변에서 부부 사이가 좋은 편인 사람들을 보면 사소한 다툼을 그냥 넘기지 않는 것 같다. 그런 부부는 큰 줄기에서 문제가 생기기보다는 작은 갈등이 쌓여 큰 문제가 되는 것을 알고 있는 듯하다. 갈등을 최소화하려면 상대방의 모습을 그러려니 하고 인정하는 자세를 배워야 평화로워지는 것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의 성향이나 습관을 삐죽한 모서리를 깎듯 깎아내고 다듬으려는 시도에서 다툼이 생긴다. 일상의 흔한 장면에서 서로의 모서리와 부딪치는 일이 흔하다. 우리 부부만 봐도 그렇다.
나는 5남매의 맏딸인지라 손이 크다. 친정은 늘 군식구가 있는 집이어서 때마다 9,10인분을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것도 모자란 듯한 양보다는 여분의 밥이 있어야 안심이었다. 대식구 가정에서 자란 데다 결혼 전에도 교회의 식사당번을 하면 최소 40인분 정도였다. 자연히 많은 양의 음식을 만드는 게 더 익숙했다. 결혼 후에도 시댁 대소사를 우리 집에서 다 치르다 보니 뭐든 넉넉해야 했다.
사실 결혼 후 처음으로 두 사람분 밥을 해 보았다. 무엇을 해도 소꿉장난처럼 양이 적어 보여 한동안 찌개든 국이든 한솥을 끓였다. 냄비도 프라이팬도 큰 것만 주로 썼다.
신혼이었으니 남편사랑이 넘쳐 음식이 넉넉한 줄 알았던지 남편은 주는 대로 다 먹었다. 그리고 그는 두 달 만에 8kg이 쪘고, 지방간을 얻었다. 다행히 나도 조금씩 양을 가늠하게 되었으나, 깊이 각인된 "넉넉한 양 만들기"는 바뀌지 않았다.
지금도 음식을 하면 늘 계획보다 많아진다.
밥 2인분을 하면 셋이 먹고도 1.5인분이 남고, 40인분을 생각하며 찌개를 만들면 70인분이 된다. 냉동실에는 늘 육해공 식재료가 다 들어가 있어야 마음이 편하다. 우리 집은 냉장고만 털어도 요리가 여럿 나오는 집이다.
평소 밥이 남는 것을 질색하는 남편은 종종 스트레스를 받는다. 나는 딱 맞게 만드는 게 어렵고 남편은 한 끼 먹고 끝나야 좋다. 참 안 맞는 성향이다. 그러나 우리는 몇 번의 토론과 다툼 끝에, 가능하면 밥은 남편이 안치고, 혹시 내가 밥을 하게 되면 애매하게 남는 음식을 차라리 버리기로 했다. 드디어 밥솥을 보며 부글거리지 않게 되었다.
결혼생활 30년이 넘었지만, 우리는 서로의 모서리를 깎아내는 것이 아니라 다치지 않도록 감싸는 방법을 아직 배워가는 중이다.
무엇보다, 어떤 일이든 결론이 나기까지 서로에게 공격적인 대응은 하지 않아야 한다. 킹스맨의 유명한 대사도 있지 않은가.
"Manner makes man."
서로의 차이와 단점을 감싸는 법을 배우는 일에도 예의는 상당한 몫을 차지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