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이 중요해

안길백차

by 온현

남편과 나는 평소 매일 차를 마신다. 나름 차를 마신 기간이 길다 보니 각종 차가 구비된 우리 집이다. 전공 중 하나가 차(tea)에 관한 것이라 평소 찻자리도 최소한의 격식은 갖추려 애쓰는 편이다.


좋은 물, 찻잎의 양, 온도, 차를 우리는 시간, 다기의 종류나 재질 등이 그것이다. 더 깊이 들어가면 온습도, 계절, 직전 식사와의 조화, 마시는 사람의 컨디션 등도 고려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때로는 자유로이, 그저 편하게 마시고 싶을 때도 있는 법.


얼마 전, 특급 안길백차를 마셨다. 잎이 흰 편이라 백차라고 이름이 붙었지만 실은 녹차이다. 중국녹차는 원래 잎과 찻물의 색(탕색)을 보기 위해 유리잔에 우리는 것이 정석이다.


그러나, 이 날따라 컨디션 난조여서 만사 귀찮았다. 손에 잡히는 대로 꺼낸 시음차가 안길백차였고, 꺼내놓았던 개완에 대충 넣었다.


110ml 개완에 찻잎 5g을 넣고. 백산수, 90-95도 사이. 찻잎이 넉넉하니 짧게 우려냈다. 원래는 150ml 물에 유리잔을 써야 했을 차였다.



어라, 그런데 아주 맛있다!


감칠맛, 부드러움, 은은한 향. 숙우 바닥에는 작고 짧고 가느다란 비늘 같은 호(찻잎의 솜털)가 가득히 가라앉아 반짝거리는, 맛있는 차였다. 테아닌(차에 있는 아미노산)이 많은 품종이라 감칠맛이 그만이었다.


맞다. 장인은 도구를 탓하지 않는다고 했다.


사실 좋은 차도 그렇다. 태생이 좋은 차는 어찌 우려도 거의 맛을 잘 낸다. 토양이 좋은 곳에서 자란 좋은 찻잎을 골라 정성 들여 만든 차는, 물이나 다기, 우리는 사람의 솜씨를 덜 타는 편이다. 어떻게 우려도 좋은 맛을 낼 기본이 이미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자세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잘 자란 사람, 잘 살아온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만의 기준을 잃지 않는 듯하다.


나는 어떤 향과 맛을 만들어내는 사람일까. 격식 갖춰 나를 내보이지 않아도, 민낯으로도 한결같은 사람이라 말할 수 있을까.


이 날의 안길백차는 그런 기본기 탄탄한 삶을 사는 사람이고 싶어지는 차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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