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의 키워드

특별한 장례식

by 온현

사람들이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두 가지 통과의례가 있다. 바로 결혼식과 장례식이다. 이 둘의 공통점이 있다면 무엇일까?


"사람이 많이 모인다.

주최 측은 손님에게 식사를 대접한다.

손님들은 축의금이나 부의금으로 마음을 전한다." 등이 아닐지.


그중에도 놓치면 안 되는 한 가지, 주인공을 최대한 돋보이게 하는 일이다.


결혼식의 신부와 신랑은 그 자리에 서는 순간 누구보다 빛나는 주인공이다. 아름답지 않은 결혼식은 없다.


장례식도 마찬가지이다. 고인이 어떤 삶을 살았든, 추모사 속 고인은 누군가에게 존중받았던 삶으로 기억된다. 설사 평생 가족을 힘들게 한 이일지라도, 그의 삶을 닫는 추모식장에서는 좋은 기억만 나누어진다. 누군가의 마지막은 가능하면 존중받아 마땅하다는 사회적 합의 때문이다.


그래서 장례식에 온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인을 향해 예의를 갖추고 가족들과 슬픔을 나누고 돌아간다. 나도 가능하면 내가 아는 분의 장례식은 꼭 가려고 하는 편이다.


어제는 교회 후배 친정아버님께서 갑자기 소천하셔서 장례식에 다녀왔다. 돌아가신 아버님과는 평소 여러 번 뵙고 식사도 하고 나들이도 함께 했던 사이다.


발인예배를 마치고 가족대표로 나온 친구가 추모사 겸 인사를 했다.


친구는 아버님의 키워드가 성실ㆍ책임감이라는 말로 시작했다. 평생 누구보다 성실하고 책임감 강한 가장이셨다는 것. 6남매를 잘 기르셨고, 손주가 14명에 손부ㆍ손서까지 있는 다복한 집안의 어른이셨다.


여기까지는 내가 알던 아버님의 모습이었다. 워낙 열심히 살아오신 삶이셨다. 자연히 공감하며 듣고 있는데, 추모사의 후반부가 이어졌다.


장례식 기간 동안 자손들이 다 모여 아버님에 대한 추억을 나누었는데, 공통된 자부심이 있었단다. 하나같이 아버님에게 가장 사랑받았던 존재가 자신이라고 여겼다. 그리 여길 만한 각자의 특별한 추억이 있었다. 놀라운 일이다.


자녀가 많을수록 누군가는 상대적으로 소외되기 쉬운데, 그 많은 자손에게 고루 사랑을 주신 고인의 품은 얼마나 넓은 것일까.


친구의 추모사를 들으며, 더욱 공감한 이유가 있었다. 우리 5남매도 각자 '엄마는 나만을 특별히 챙겨줬다'라고 믿는다. 대식구 식탁 위에 각자 좋아하는 반찬이 한 가지씩은 꼭 올라오던 것이라든지, 아프거나 힘들 때 따로 챙겨주신 순간들.


어쩌면 그 기억 하나로 험한 세상을 이겨낼 동력을 얻으며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사랑 많으신 아버님은 몇 년 전부터 인지장애가 시작되신 어머님도 살뜰히 챙기셨다. 이제 혼자 지내실 어머님이 걱정되어 장례식장을 나오기 전, 어머님을 한참 안아 드렸다. 평소 말수도 적고 무뚝뚝하셨던 어머니. 뜻밖에 나를 바로 알아보셨다. "이렇게 와서 챙겨줘서 고맙다"며 마주 안아오시는 손길이 따뜻했다.


위로하러 간 나를 오히려 다독여주신 어머님. 작고 마른 손에는 힘이 있었다. 충분히 사랑받은 사람들에게서만 볼 수 있는 단단함이었다.


손님들을 대하는 다른 가족들 얼굴에도 고인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비슷한 결의 당당함이 있었다.


한 사람의 사랑이 남은 이들을 단단히 묶어 준, 특별한 장례식장이었다.


성실, 책임감, 특별한 사랑.


이 세 가지 키워드로 기억될 고인의 삶을 감사히 오래 추억할 것 같다. 굳이 추억할 거리를 찾지 않아도 많은 것을 남기신 분의 장례식이었다.


살아있는 한, 우리도 각자의 키워드를 찾아가는 여정을 걸어야 하리라.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편의 손을 꼭 잡았다. 함께 할 소중한 시간이 아직 남아 있어 새삼 감사했다.


지난봄 친정어머니와 친구의 부모님이 함께 식사하시던 장면이 떠올랐다. 아버님은 먼저 떠나셨지만, 남은 어머님은 오래 건강하시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더 늦기 전에 나의 엄마와도 새로운 시간을 쌓아가야겠다. 남은 날동안 서로의 사랑을 충분히 나누어 입고 언젠가 다가올 이별을 잘 맞이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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