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 여든둘. 떠나보내는

떠나보내는, 떠나는

by 선량한해달


매년 이맘때면 '올해는 할로윈 분위기를 내봐야지.'라며

작은 다짐을 하곤 하지만, 작은 소품 하나를 마련하는

일이 이렇게 어려울 수가 없다.


'일 년에 한 번 때문에 물건을 사야 할까?'

'우린 할로윈을 즐기는 나라가 아니지 않나?'

'애초에 할로윈이 뭐지? 왜 굳이?'


내 머릿속 작은 선들이 모여 부수기 어려운

굳건한 장벽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매년 '올해만큼은!'이라며 다짐하는 이유는

계절감을 소중히 여기고자 하는 마음과

자유, 풍요를 갈구하는 욕망이 있어서일까.


별 것 아닌 것으로 며칠을 고민하다 내린 결론은

'그래, 그림으로 그리면 되지, 뭐.'였다.


펜을 들고 호박을 그리는 손이 즐겁다.

'호박은 생각보다 울퉁불퉁하고 꼭지가 튼실했었구나.'


할로윈이라는 거창한 이벤트보다

낙엽, 떠나보냄의 의미가 더 친근한 나의

가을 막바지 그림에 '호박'이 등장하는 파격이 일어나다.


2020년 10월 말은 이렇게 내 나름대로의 가을에

할로윈을 접목시켜 마무리 짓는 것으로 결정했다.


항상 이맘때쯤이면 떠나보냄과 떠남의 의미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곤 하는데,


올해는 불쑥 등장한 호박에 고민이 익살스레 녹아든다.

고민에 둘러싸여 살기엔 너무나 아름다운 가을이다.

가을이었다.


아름답게, 보다 가볍게.

떠나보내고 떠나는.

그런 가을이었길 바라본다.


<2019년 가을: 씨앗 일흔일곱-Hey, bye >


<2020년 가을: 씨앗 여든둘- 떠나보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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