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 아홉. 잘 가시게
걷는 사람과 머무는 사람
「어디까지 걸어봤니」
800km.
"솔직히 좀 부러운 마음이 있어."
"전 못 할 것 같습니다."
세 아저씨로 구성된 스페인 노동단(?)의 진솔한
대화를 들으며 무심결에 내 속마음이 터져 나왔다.
"나도."
아름답다. 부럽다. 못 하겠다.
... 그리고 감동적이다.
지난달부터 주변에서 심심찮게 들려왔던
스페인하숙 이야기다.
800km 순례길을 걷는 사람들이
잠시 쉬어가는 숙소 알베르게(Albergue).
알베르게를 운영하며 순례길을 걷는 사람들과
만나고, 먹고, 이야기하고, 떠나보내는 이야기.
스카이캐슬도, 극한직업도 안 본 내가 스페인하숙을
챙겨보는 이유는 걷는 사람을 맞이하고 떠나보내는,
머무는 사람의 마음까지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첫 숙박객으로 등장한 청년 순례자의 표정과 분위기에서
풋풋한 마음과 각오와 약간의 슬픔을 느낄 수 있었다.
청년을 반갑게 맞이하고, 다시 떠나보내는
세 아저씨들의 모습에 나 자신이 투영되어
먹먹해진 가슴을 안고 한참을 서성였다.
"잘 가시게."
모든 것이 담긴 짧은 인사 한 마디로
잠시 만났던 사람들이 다시 뒤돌아 걷는다.
잘 가길. 잘 가시길. 나도. 당신도.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한 남자아이를
한없이 응원하고 싶어 지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