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신입이 웬 말이냐고요!"
대뜸 내지르는 정대리의 앙칼진 목소리에 송과장도 놀란 모양이다. 잘 구르지도 않는 황변한 눈동자를 굴린다. 송과장은 오랜만에 마주해 어색해져 버린 강처장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을 한다. '저 양반이 저렇게 생겼었나. 이발을 한 건가. 피부가 탄 건가. 운동을 했나. 시계가 또 바뀌었네.' 살찐 굽은 등에 파묻힌 목을 뻐끔 드러내고 허공을 응시한다. 분홍 소시지 같은 두 팔을 모아 기도하듯 코 앞으로 가져간다. 송과장은 무언가 말을 하기 전에 항상 그런 자세가 되곤 한다.
"처장님. ...5년 차는 와야 합니다."
송과장의 짧은 한 마디에 그래도 과장 구실은 한다고 생각했는지 애써 깊은 콧숨을 내쉬며 진정하는 정대리다. 말만 공기업이지 사원 천 명이 안 되는 작은 사회다. 그마저도 대부분은 현장 인원으로 사무실은 백 명 남짓. 강처장, 송과장, 정대리, 박주임, 신입 둘. 들고 나는 신입 자리를 제외하면 사실상 송과장과 정대리, 박주임 셋이서 모든 일을 해왔다. 올해부터는 공시가 강화돼 공시 관련 분장을 두고 전략처와 사공처가 한창 싸우고 있는 중이다. 송과장은 앞날이 까마득하다.
"송과장 잘하잖아, 왜 그래. 신입들 한 번 키워봐. 똘발하드만. 한 놈은 서울대 나왔고, 한 놈은... 오묘하다. 서울대는 아니고, 승대라카든가? 스른...다슷인데 분위기가 묘오하단 말이지. 쨌든 둘 다 일 잘하게 생기써. 증대리도 송과장 잘 만나서 두 명분 하고 있고. 신입도 기조실 일 할 수 있어. 애매한 경력직? 그거 버릇 들어서 못 쓴대이. 뺏속부터 기조실 사람으로 키워봐라. 내 세종 가야 돼요. 내도 사무관들이랑 미치겠다. 햐아, 씨."
"......"
"......"
서둘러 회의실을 빠져나가는 강처장과 여전히 같은 자세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는 송과장을 번갈아보며 정대리는 받아들여야만 하는 자신의 기막힌 운명에 대해 생각한다. 강처장의 어색한 표준어가 여전히 귓가에 맴돈다. 생각해보면 박주임 때도 그랬다. 사심위를 업무 분장으로 갖고 있었던 박주임은 국회 일을 겸했었다. 국정감사를 앞두고 새벽 3시부터 걸려오는 국회의원실 전화에 치를 떨던 그는 다섯 개의 심의 전 사업들을 내팽개치고 학교로 돌아갔다. 박주임이 전략처로 발령받은 지 세 달 만의 일이었다. 신입들이 도망친 자리를 메우러 온 열의에 가득 찬 박주임의 모습은 정대리의 머릿속에 남아 시간이 흐를수록 더 큰 배신감으로 다가오고 있다.
정대리는 떠난 박주임의 업무를 고스란히 흡수했다. 이미 사업 면허와 내부 업무 보고를 분장으로 갖고 있으니 사심위만큼은 송과장이 맡아주리라 믿고 있었다. 하지만 송과장은 박주임의 업무들을 정대리에게 일임했다.
정대리가 스스로를 전략의 미친개로 칭하고 주위를 경계하기 시작했던 시점이 박주임이 떠나고 사심위까지 맡게 된 그즈음이었다. 정대리는 그 후 거의 한 달째 제대로 된 수면을 취하지 못하고 있다. 거기에 매주 어김없이 끼어드는 회의 자료 작성은 정기적으로 정대리의 불편한 심기를 건드린다.
"이번엔 경력직이고. 응? 과장급으로 한 명 받을 거고. 응? 공고 내준다니까 조금만 버텨보고."
정대리는 송과장의 그 말을 믿은 과거의 자신을 원망하고 있다. 기왕 미친개 된 거 크게 한 번 물어뜯었어야 했다. 한류 스타마냥 한 달에 한 번 나타나서는 자기 할 말만 던지고 사라지는 강처장 앞에서 눈만 꿈뻑이고 있는 저 인간을 믿는 게 아니었다. 정대리는 이제 거친 숨을 거두고 살 궁리를 시작해야 한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가, 어디서부터 버려야 하는가, 우선은 사업 심의 규정을 다시 봐야 한다. 용서가 안 된다. 박민혁이 그 개새*. 그리고 신임 사장 업무보고 초안을 수요일까지 마치고 과장 토스, 잠깐, 그게 되려나? 하 씨, 국회의원실 일은... .
"... 키워봐라."
"네?"
현실을 깨우는 송과장의 탁음이다.
"키워보라고, 응 ? 서울대랑, 오묘한 애."
"... ."
.
.
.
.
.
.
정대리는 확 죽어버릴까 생각했다.
2019년 10월 25일 금요일 구름 뒤 비
<전략처 정대리> 이것들이 단체로 미쳤나
이제 정말, 네버, 다시는 나 이외의 다른 인간은 믿지 않기로 한다. 언젠가 복수하고 말 거다. 이래 봬도 터뜨리면 한둘 정도는 바로 보낼 수 있는 사람이다. 감사실 앞을 지날 때마다 손이, 입이 근질근질하다는 걸 저들은 알까. 여우 같은 아저씨들, 기다려라. 언젠가 반드시 피눈물 흘리리라. 아무것도 안 할 거다. 이제 나도 모른다. 안 한다.
<전략처 송과장> 나는 필요한 사람인가
마누라가 우울증이란다. 내가 어쩌다 이렇게... 젊고 건강하고 아름다웠던 영미는 왜 그렇게... 나를 만나서? 내 탓인 건가? 모든 게 내 탓인가... 그렇게 착했던 정대리도 화가 가득 찼다. 독이 찼다. 오늘 회의실에서 일부러 눈을 피했다. 무섭다. 집에 가면 마누라가, 회사에 오면 정대리가 있다. 심장이 쪼그라든다.
죄 없는 우리 애들은? 아직 어린데. 너무 어린데. 아무리 생각해도 애들에게는 아빠보다 엄마가 더 필요하다. 한 달 정도면 아내도 회복하겠지? 육아휴직. 남성 육아휴직이 상생 점수에 들어가던가? 그럼 계량, 비계량 하면 3점 정도 보탬이 되겠고. 자세한 건 사공처에 한 번 물어봐야겠지. 그래, 뭐, 상황이 좀 정리되면 육아휴직하는 걸로.
<전략처 강처장> ...
0400 세종(대기)
0553-0715 귀사
0715-0730 회의자료 확인(from. 정대리, 박카스1)
0730-0830 관사
0830-0900 출사
0900-1000 회의
1000-1030 업무보고
1030-1130 TF팀장급회의
1130-1200 여의도
1200-1300 점심(with.김**의원보좌관)
1300-1600 세종(동태파악)
1600-1730 귀사
1730-1800 신임사장업무보고관련(from.송과장)
1800-1900 저녁-신입건(from.기조실장님,송과장)
1900-2100 송과장회식(들어주기)
2100-2130 사업면허 변경건 확인(from. 정대리, 스타벅스커피/뜨아/그란데)
2130-2200 여의도이동
2200~ 이**의원실(3회차, 이번에 안 되면 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