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조장 송씨

2019년 11월 18일

by 선량한해달

"거, 유비니? 이런 걸 뭐하러 공람을 해. 응? 하지 말고."


모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던 송과장이 예민하게 반응하며 사무실을 나선다. 이번 주에는 최사원이 공문을 접수하고 주요 사안을 가려 공람을 실행한다. 공람이 걸린 공문은 자동으로 메일 발송이 되는데 집중하고 있을 때 모니터 한가운데에 공람 메일 알림이 뜨면 그렇게 눈에 거슬릴 수가 없는 것이다. 오늘 송과장의 경우는 주식 차트 읽기를 방해하는 알림창이 거슬렸다.


"유빈님, 신경 쓰지 마세요. 인사 발령은 공람하시는 게 맞아요. 처장님은 현장 인사 발령도 보시거든요."

"아, ...네. 저, 혹시 공람을 거는 기준이 있을까요?"

"없어요. 참 힘들죠 그게. 같은 인사 발령이라도 윗분들에게 중요한 게 있고, 아닌 게 있고, 보고 싶은 게 있고, 아닌 게 있으니까..."


현장 인원 약 30인의 순환 보직 발령 공문에 송과장이 언짢은 내색을 하자 최사원은 내가 뭘 잘못했구나 싶어 일이 손에 안 잡힌다. 가뜩이나 강사원보다 자리도 멀어 불편한데 이러다 미운털이 박히는 것 아닌가 걱정이 된다.


"대리님, 혹시 공람하는 인사 발령 예시를 좀 들어주실 수 있을까요?"

"예시라..., 보통 안 좋은 일인 경우에는 공람하지 않아요. 누가 징계를 받았다거나."

"아, 그렇겠네요."

"그리고 승진 발령도 굳이 공람하지 않아요. 연말에 느끼시겠지만 거의... 전쟁터거든요."


최사원은 작은 과업이라도 상당히 디테일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사실을 차츰 알아가고 있다. 송과장은 현장 인원의 순환 보직이 별로 중요한 인사 발령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강처장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 누군가의 징계나 승진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다. 최사원은 이러한 것들 하나하나가 어렵다. 회사 돌아가는 것도, 사람 사이의 관계도 알지 못하는 신입사원에게 이런 종류의 과업은 상당히 까다롭다.


고뇌하는 최사원의 등 뒤로 담배 연기에 휩싸인 송과장이 불쑥 나타난다. 사무실의 공기를 어지럽히며 놀라운 속도로 담배 덩어리가 다가온다. 정대리는 느낌이 좋지 않다.


"거, 오늘 오후 일정들 있고?"


한동안 뜸하다 했더니 또 시작이다.


"야근 일정이 있죠."


쏘아붙이는 정대리의 시선은 모니터에 가있다.


"햐아, 정민이 저거 인상 쓰는 거 봐라. 유빈이는?"

"아, 네. 전, ...없습니다."

"미리씨는?"

"저도 야근입니다."


강사원은 무조건 정대리와 같이 가기로 한다.


"그럼 오늘 여기 다 있네. 잘됐네, 저녁 먹으면서 다 같이 반주하자고, 응? 다들 달어. 어이, 정민이, 대원각."

"전 못 달아요. 오늘 야근하면 71시간요."

"에이씨, 생돈 써야 되자네."

정대리는 타이핑하던 손을 멈춘다. 술을 마시고 싶으면 마음 맞는 사람들과 가서 마시면 될 일이다. 왜 굳이 불편한 사람들과 불편한 돈으로 불편한 자리를 만들려는 것인가. 게다가 지금 누구 때문에 돈도 못 받는 초과 근무를 하고 있는데... 만성 두통의 토스를 받아 뇌압이 치밀어 오른다. 정대리는 고개를 살짝 가로저으며 어이가 없다는 듯 짧은 숨을 내쉰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고개를 비스듬히 꺾어 송과장을 한껏 노려본다. 담배와 술. 정대리는 30년을 살면서 돈을 주고 담배나 술을 사는 사람을 곁에 둔 적이 없다. 송과장은 상사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 있는 사람이다. 가까이할 필요가 없는 몹쓸 중독자다. 게다가 그 중독자는 특유의 둔감함으로 아무렇지 않게 남의 개인적인 영역을 침범하고 헤집는다. 노려보는 정대리와 눈이 마주친 송과장은 멋쩍음 반, 기막힘 반으로 시선을 피해 두리번거린다.


"알어, 나 싫어하는 거."

'뭐래.'

"그래도 팀인데 밥은 같이 먹자이?"

'밥이 아니라 술이겠지.'


묘한 정적 속에서 말은 송과장 혼자 하고 있지만 어쩐지 독기 어린 대화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대원각! 대원각요... 예약했습니다. 4명."


최사원의 불필요한 눈치가 송과장 주최의 술자리를 확정 짓는다. 괜스레 긴장했던 근처의 재무처 사람들도 한시름 놓는다. 양조장 송씨는 오후 3시만 되면 술 조합을 구성하러 기조실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니기로 유명하다. 말술이었던 신대리나 억지로라도 장단을 맞춰주던 박주임이 떠나고 나서는 근처의 재무처나 인사처 사람들이 피를 보기 일쑤였던 것이다. 모처럼 신난 표정의 송과장이 사라지자 정대리가 안경을 벗고 눈 사이를 힘없이 마사지하며 최사원을 향해 한 마디 한다.


"야이씨, 내가 쳐낼 수 있었는데."



'쾅!'


"뭐가 그렇게 힘들어어어!! 앙?! 뭐어가~~ 그렇게들 힘드냐고오!"


대원각의 블랙리스트, 붉은 돼지가 폭주를 시작하자 집기의 안위를 걱정한 사장님의 기웃거림이 시작된다. 정대리는 언제나처럼 죄송함과 부끄러움을 담아 사장님께 눈을 찡긋한다. 최사원은 테이블을 내려치는 쾅 소리에 몸을 움찔하며 눈앞에 펼쳐진 충격적인 장면을 감상 중이다.


"아하주 그냥, 일은 더럽게 할 줄도 모르는 것들이 뒤에서 말만 많아가지고. 응? 유빈이 너도 잘 알아둬. 일은 나 혼자 한다고, 응? 나는 밤낮도 없는데, 여섯 시만 되면 따박따박 집에 가는 것들이 말이야. 받는 돈값들은 하나? 앙? 인건비가 얼마나 무서운 건지도 모르고 말이야. 마인드가 썩었어. 뼛속부터 하급 노동자야 그냥. 그래 안 그래? 너 말해봐."

"네, 맞습니다. 맞습니다."


'맞긴 뭐가 맞아.'


정대리는 저녁을 가장한 반주가 고량주 다섯 병이 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대원각 사장님은 액세스공사 전략처의 예약을 받지 않은 지 오래다. 전과가 화려한 붉은 돼지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최유빈이라는 소속 불분명의 생소한 이름에 당하고 말았다. 잘게 드리워진 구슬발을 헤치고 입장하는 송과장을 포착한 선한 자영업자의 급격한 표정 변화는 모두가 알 수 있을 만큼 명확했다.


"신...입 들어왔나 봐?"

"네, 사장님 저희 신입사원 이름 꼭 좀 기억해주세요. 강.미.리., .최.유.빈."


낮은 목소리로 사장님에게 정보를 제공한 정대리는 송과장의 주사가 시작되고 주변의 모든 테이블이 비기 시작할 무렵부터 시간을 살피기 시작했다. 번역이 끼어들어 모레 있을 사심위 자료 검토를 아직 하지 못한 것이다. 이미 한 번 퇴짜 맞은 사업인데다 발의자가 그 성격 좋은 영업의 한차장이다. 시계는 23시를 가리킨다.


"과장님 이제 그만..."

"정민이! 너도 말이야. 그러는 거 아니다?"


'아, 또 뭐래.'


정대리의 말이 중간에서 잡아먹힌다.


"일 잘하는 거? 햐, 참나. 니들이 일을 하면 얼마나 하냐, 응? 이렇게 같이 술 마셔주고, 응? 어이, 유빈이, 나 형이야. 정민이, 미리, 나 오빠라고. 응? 이렇게 같이 친해지면 뭐 그냥 내가 다아 해준다? 니들한테나 별 거지, 응? 나한텐 쉽거든. 아무것도 아니거든. 그래 안 그래, 유비니."

"네, 맞습니다."


'돌겠네.'


"유빈이, 아이스크림 하나 사 먹고 오자. 형이 사준다, 응?"


벙쪄서 송과장을 따라나서는 최사원이 시야에서 사라진다. 멀어지는 사이렌처럼 알코올 중독자의 울림 소리가 잦아들자 사장님이 정대리와 다시 한 번 접선한다.


"아가씨, 저 양반 빨리 좀 데려가."

"저도 가고 싶죠, 사장님. 아시잖아요."

"내가 저 양반 안 받으려고 얼마나 신경 쓰는데 이틀 전에도 와가지고 유리 깨고 젓가락 던지고 그냥."

"이틀 전에요?"

"아저씨들 여섯이 왔었어. 도중에 싸움 나서 손님들 다 도망가고 말이야. 하여튼 빨리 좀 가."


'아, 그 티에프가 아직 돌아가고는 있구나.'

정대리는 합리적인 걱정으로 머리가 가득 찬 사장님을 잘 달래 돌려보낸다. 정적이 흐른다. 언어 폭력으로 오염된 앞접시의 짜사이를 두어 번 집어 본다. 힘없이 축 늘어진 모습에 동질감을 느낀다. 말 한마디 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옆자리 강사원에게 흘리듯 말을 던져본다.


"대단하시죠?"

"네, 듣던 대로."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치더니 피식하고 웃음이 터져 나온다.


"아니, 언니 나 좀 물어보자. 그쪽 공사 양반들은 대체로 저래요? 뭐, 저게 사풍 그런 거야? 아니면 저런 인간들만 여기로 넘어온 건가?"


강사원은 정대리의 의문에 몇 초간 과거를 되짚어보고는 단호하게 입을 뗀다.


"이 판에 정상인이 드물긴 하죠."


웃음이, 쉰웃음이, 함박웃음이 터진다. 정대리는 수많은 창피함과 굴욕과 슬픔이 서린 대원각에서 이렇게 진심으로 웃게 될 줄은 몰랐다. 잔 돌리기, 욕하기, 멱살잡기, 폭행. 티비에나 나올법한 장면들의 로케지는 대개 대원각이었다.


"술, 조롱, 사생활 침해. 제가 관둔다면 저 사람 때문일 거예요. 업무는 버겁긴 해도 배우는 게 많아서 싫지 않거든요. 저 비정상 하나 때문에 떠난 정상인이 제가 본 사람만 셋이에요. 신형, 미래, 박민혁. ..., 아, 넷이구나..."

"그럼 총 여섯인가 봐요. 전 기관에서도 둘 나간 걸로 알고 있어요."

"둘 밖에 안 나갔어요? 거길 더 길게 다녔으면서 신기하네."

"거기에선 자기가 아랫사람이었던 시절이 기니까요."


'아, 그렇구나!'


정대리는 가만히 되돌아본다. 처장급들이 송과장을 싫어하는 경우는 없다. 심지어 '보강이는 애가 착하잖아.'라고 말하는 처장도 있다. 송과장은 과장급 이하에게만 선별적으로 술테러와 정신적 폭력을 가하는 사람이다. 나보다 '아래', 그중에서도 만만한 '아래'를 골라 괴롭히는 방식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사이코. 지금만 봐도 이 정적을 누리지 못하는 건 가장 약체인 최사원이다. 송과장의 모든 역한 행동들은 아래를 향해 있다. 강사원의 통찰력에 정대리는 더욱 비참해짐을 느낀다. 저 인간 같지 않은 무언가가 나를 명확히 아래로 보고 있다는 걸 인정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언니는 괜찮으세요?"

"저는... 접는 단계라서요."


조곤조곤 무서운 말을 하는 강사원이다. 이 사람은 인생 2회차다. 정대리는 강사원의 굳은 심지가 어디에서 나오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적어도 나보다는 오랫동안 이런 인간들과 직장 생활을 해왔을 것이다. 강사원의 처연한 속눈썹이 정대리에게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직장을 접을 때도 직장이 필요하더라고요. 저는 그걸 '접는 직장'이라고 불러요."




2019년 11월 18일 월요일 구름


<14기 신입 단톡방(15)>

(인사 김규빈)

유비니 살았냐 ₂

전략 나가는 거 보니까 분위기 쎄하던데 ₂


(재무 유미)

걔 주거써 말도 시키지마 ₂


(사공 윤인혜)

몬데몬데 ₂


(영업 최단)

여긴 다 미쳐써 ₂


(재무 유미)

대원각 앞에서 아이스크림 들고 벌서던뎈ㅋㅋㅋㅋ ₂


(인사 김규빈)

앜ㅋㅋㅋㅋ 미쳤냐곸ㅋㅋㅋㅋㅋ ₃


(사공 윤인혜)

? ₃


(인사 김규빈)

녜누나 쟤네 대원각가때 ₃


(사공 윤인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₃


(재무 유미)

저기 과장 담배 한 번 아이스 한 번 손 개빨랔ㅋㅋㅋㅋ 유비니 앞에 손모으고 서이꼬ㅋㅋㅋㅋ ₃


(사공 윤인혜)

그 사람이 작년에 그거지? 성희롱 ₄

유또야? ₄


(재무 유미)

ㅇㅇ 나는 항상 야그늘 한댜 ₄


(인사 김규빈)

성희롱 아니고 직장내괴롭힘스 ₄


(재무 유미)

그게그거지머 우리 팀장이 정대리 불쌍하다고 저런 거 밑에서 3년을 버티고 있다고... ₄


(사공 윤인혜)

정대리님도 장난아니야 가만 보면 성격있어 ₄


(인사 김규빈)

(전략의미친개) ₄


(영업 최단)

유비니 왜 안나오지 ₄

송과장 완전 싸이코라던데 ₄

진짜 죽은 거 아냐? 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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