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전야

2019년 12월 9일

by 선량한해달

"우짤낀데?"

"뭐, 사람이야 현장에도 있고요."


강처장과 송과장이 높은 파티션 뒤 테이블에서 긴밀한 대화를 나누는가 싶더니 이내 자리를 뜬다. 정대리와 강사원은 반대편 인쇄기에 붙어 여분의 회의 자료를 파쇄하며 눈길을 주고받는다.


"그래도 언니 있어서 든든하네요. 저 없어도 힘내세요."

"대리님, 이동하시나요?"

"저희 기수는 현장 경험이 있어서 이동이 비교적 쉬워요."

"아, 그러시구나."

"처장님이랑 중부 본부장님께는 말씀드려놨는데 과장님이 어쩌시려나 모르겠어요."

"..."

자리로 돌아온 강사원이 급히 마우스를 부여잡고 메신저창을 띄운다. 강사원이 타부서 동기에게 먼저 메시지를 보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규빈아 바쁘니?」

「아뇨, 18층 어린이날요~ 회의 날은 이게 좋다니까ㅋㅋ」

「혹시 조직개편 말 나온 거 있어?」

「소문만 무성하지 확정되기 전엔 아무도 모르죠 뭐.」

「혹시나 해서」

「육휴 복귀자들 말고는 말 나온 거 없는데. 이번에 한 명 내년에 한 명요.」

「ㅇㅋ 감사」

「누나, 근데 거기... 자리 혹시 안 비어요?」


'?!'

잠시 동작을 멈춘 강사원은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더니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하고 다시 대화를 이어간다.


「우린 티오 없지」

「아...」

「왜? 무슨 말 나온 거 있구나. 있지?」

「그게 아니고...」

「뭔데 빨리 말해봐」

「누나 나 이 짓 더 못하겠어서 19층으로 가고 싶어」


'...'


강사원은 어딜 가도 다 같다는 말이 튀어나오려는 걸 꾹 참고 메시지창을 내린다. 고개를 드니 창 밝기도 조절하지 않고 며칠째 채용 정보만 뒤지고 있는 최사원의 머리 꼭지가 보인다. 조만간 불어닥칠 조직의 변화에 대해 저 사람은 얼마나 알고 있을까. 얼마나 대비하고 있을까. 나는 어떤가. 나는 이번 개편 때 얼마나 스무스하게 넘어갈 것인가. 돌이켜보면 모든 파탄의 시작은 발령이었다. 그리고 그 발령의 시작은 조직개편이다.


지난달부터 새 사장이나 육휴 복귀자 말이 나올 때마다 19층에는 묘한 긴장감이 나돌았다. 승진 순번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는 무척 민감한 사안인 것이다. 강사원은 복귀 예정자들이 복직을 미루는 것으로 보아 조만간 대대적인 조직개편이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다.


'기차장님께 연락을 넣어볼까, 조금 더 버티는 게 낫나, 기조실은 정말 아닌데......'


꼬리를 무는 생각에 잠식당한 강사원의 눈 앞, 작은 메신저창이 요동을 친다.


'!'


「바빠요?」


영업처 이로운 대리의 메시지다.


「아닙니다, 대리님 무슨 일이십니까.」

「응? 왜에? 꼭 무슨 일 있어야 연락하는건가?」

「아닙니다. 말씀하세요.」


말을 해도 꼭 기분 나쁘게 하는 사람이 있다. 강사원에게 이대리는 그런 존재다.

「정대리... 현장 간대?」

「네?」

「엥? 말 안 해요? 왜그래에~ 나 알아~ 중부 본부 갔다왔거든~ 본부장님도 벌써 알고 계시던데?」


강사원은 도대체 이 기분 나쁜 인간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걸까 생각하며 잡아떼기로 결심한다.


「저는 들은 바가 없습니다.」

「...」


분명 읽었는데 답변이 없다. 강사원은 잠시 기다리다 메신저 창을 내리려 마우스에 손을 갖다 댄다. 그 순간,


「아아아~ 그런 거야? ㅇㅋㅇㅋ 알아쓰!」


'뭐라는 거지?'


「네?」

「그런 걸로 해둘게 알았어~ 내가 그렇게 눈치 없는 사람도 아니고~ 수고^^」


'...'


나홀로 기분 나쁜 정적에 휩싸인 강사원은 생각한다. 저 웃음의 의미는 뭘까. 굳이 왜? 오전 내내 찝찝했던 기분이 배가 되는 것을 느낄 때쯤 회의가 끝난다. 회의를 마치고 돌아 나오는 각처장들의 구둣발이 카펫을 쓴다. 카펫과 헌 구두 바닥의 마찰로 미약한 먼지들이 냄새 포자를 퍼뜨린다. 또 한 주의 시작이다.


2019년 12월 9일 월요일 구름


<전략처 송과장> 기왕 하는 거 제대로

이놈이고 저놈이고 쓸만하면 휙 도망이여. 헛 참, 지가 싫다는데 뭐 어쩔겨. 이번에는 말 잘 듣고 똘발한 놈들로다가. 한 놈 한 놈 제대로 박아놔야 팀이 돌아가지. 개판도 이런 개판이 없고. 이것들이 만년 과장이라고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말여. 니들도 나중에 험한 꼴 몇 번 당해봐야 알지. 조직이 얼마나 쓴 곳인지.


<전략처 강사원> 조심해야 할 사람이 많구나

꼰대보다 젊은 꼰대가 더 무섭다고... 꼰대가 새록새록 자라고 있네. 이로운. 그놈이랑 엮이는 일은 없어야 될 텐데. 특유의 껄렁껄렁, 빈정빈정. 한 팀 걸러 한 명씩은 꼭 있는 나쁜 사람. 아주 나쁜 사람. 해로운 사람. 이로운.


<영업처 이대리> 자리가 난다?

중부 본부로 간다...? 정대리가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냥 그렇게 보낸다고? 가고 싶다고 막 갈 수는 없지. 신입 때 잠깐 다녀왔다고 그게 고향인가? 안 될 말이지. 중부 연고자가 널렸는데 왜 서울 애를 보내? 송보강이야 그렇다 쳐도 강짱돌이가 정민이를 보낸다고? 본부장님이야 '우리 정실장 정실장'하시니 오케이 일거고. 강이랑 송이 어떻게 하려나? 정대리가 가는 게 나한테 좋나? 아니야. 궁극적으로는 정대리가 떠나면 나도 힘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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