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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한해달 Jun 27. 2022

기냐 재냐

2020년 2월 20일

 새 사장이 부임하고 급히 개편된 조직 여기저기에서 불만이 터져 나온다. 처음에는 구 과장과 대리의 통합이 문제가 되더니 이제는 부서끼리의 결합이 문제다. 전략처와 재무처가 기획재정부문으로 개편된 것까지는 좋았다. 기획과 재무가 일원화되면 조직의 의사결정이 신속해진다. 하지만 문제는 사람이 섞인다는 것에 있다.


 "그래서 강짱돌이가 부문장이라는거야 뭐야? 그럼 우리 처장은?"


  재무쪽 사람들 입에 심심찮게 구 처장의 거처가 오르내린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다.


 "전략이랑 재무랑 합쳐지면 오른쪽 머릿수가 너무 많지 않아?"


 시설, 안전 등 기술자들이 모인 부문은 본사의 경영 부서 규모 확장에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다. 현업에서는 노조가 버티고 서 본사만의 조직개편을 강렬하게 반대하고 있다.


 "일은, 응? 할 줄도 모르는 것들이 말여, 응? 하여튼 말들만 많아가지고,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응? "


 개편의 주인공 송수석은 터져 나오는 불만이 불만이다. 그렇게 불만이면 직접 나서서 바꾸면 될 것 아닌가. 어디 조직 하나 통째로 개편하는 게 쉬운 줄 아나. 조직개편으로 헌 사장의 기척을 완전히 감춰야 하는 송수석의 심경도 말이 아니었다. 구 감사와 전략을 제외한 모든 부문이 대대적으로 개편되며 일어난 발령 물결에 사람이 연이어 들고 나는 중이다. 순식간에 역적이 된 송수석은 입을 굳게 닫고 제자리를 지킨다. 평소 잦았던 담배 타임도 줄이고 사무실 수호령이 되었다. 이 탓에 이책임과 강주임은 전에 비해 훨씬 더 이석이 힘들어졌다.


 송수석은 최근 부쩍 자주 뒤를 돌아본다. 감사부문과 기밀 티에프 동향에 관심이 많은 모양이다. 감사부문 이책임이 티에프팀 정책임을 만나러 갈 때마다 꿈쩍꿈쩍 엉덩이를 들썩인다.


 "왜요? 뭐, 커피라도 나눠드려요?"


 따라붙는 시선에 앙칼지게 쏘아붙이는 이책임의 공격을 받으면 가여운 고개를 푹 내려 감추고는 안경알을 매만지곤 하는 것이다. 


 '그렇게 신경 쓰이면 있을 때 잘해두시지.'


 강주임은 정책임과 대립했던 송수석을 바라보는 마음이 복잡하다. 언제부터인가 정책임은 강주임도 티에프실에 들이지 않고 있다. 사내 동향을 떠나 간혹 티에프실에서 있었던 티타임이 좋았다. 언니언니 하며 속내를 털어놓아대는 정책임이 문득 떠오르곤 하는 것이다. 오묘한 고급 원두의 아로마가 그리운 것일지도 모른다. 이쯤 되면 궁금하지 않다가도 궁금해진다. 대체 무얼 하는 티에프란 말인가. 티에프를 만든 헌 사장은 이미 떠났다. 감사부문은 왜 티에프실을 뻔질나게 드나들며, 정책임은 왜 두문불출인가. 


그리고 한 사람. 강부문장은 왜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가. 그야 세종과 여의도를 오가는 부서의 장이다. 강부문장은 원래부터도 출장이 많았다. 강주임은 입사 후 부문장을 몇 번 본 기억이 없다. 공사 시절 합동 티에프에서 봤던 기억이 더 크다. 그 시절 그 티에프가 망가지기 직전, 딱 이랬다. 강주임은 좋지 않은 기억이 뇌를 스치자 고개를 재빨리 가로젓고는 회의 자료에 집중한다. 연이은 발령으로 각 부문 사람들이 섞이며 형식을 파괴한 자료들이 늘었다. 한 자도 놓쳐서는 안 된다. 


 '하, 맞춤법 정도는 자체적으로 좀 어떻게 안되나?'


 기본이 안된 자료에 화가 치민다. 생각해보면 그들도 그들의 과업이 있을 것이다. 매주 의미 없이 끼어드는 회의 자료 따위 신경 쓸 겨를이 없겠지. 그렇대도 이 일이 끼어든 잡무에 불과한 것은 강주임도 마찬가지다. 내보낼 통계 자료가 산더미다. 조직이 개편되며 사공쪽 공시까지 슬금슬금 기재부문으로 넘어오고 있다. 규모가 커지니 과업도 는다. 느는 과업을 쳐내는 건 언제나 아래의 몫이다.


 "잠시 커피 한 잔 사오겠습니다."


 "어, 어? 그.. 그려."


 송수석의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자리를 박차고 나서는 강주임이다. 업무가 격해지면 으레 그렇듯 윗사람이 눈에 들지 않는다. 노동자의 현실을 깨닫는 순간 위도 아래도 그저 비참한 구더기 인생일 뿐인 것이다. 누가 누굴 보호하고 존경하랴.


 "삐뚤어지는구먼."

 "원래 저러잖아요."


 송수석은 멋쩍게 입맛을 다시며 퉁명스럽게 대꾸하는 이책임을 바라본다. 안경 속 눈알이 유독 휘둥그렇다. 


 "너도."

 "예?"

 "너도 삐뚤어졌어."

 "..."

 "으이고호, 내가 나쁜 놈이지, 다아, 내가, 응? 내가 죽일 놈이여. 을마나 욕들을 할거여."


 드물게 반문하지 않는 이책임이다. 허울 좋게 늘어놓던 농담도 거둬들였다. 부서의 머릿수가 늘어난 대신 구성원들 사이의 금이 메울 수 없는 틈이 되어 벌어져만 간다. 수많은 개편을 기획하고 경험해온 송수석은 어쩐지 좋지 않은 예감이 들어 강부문장의 빈자리를 꿰뚫고 살찐 목을 돌려 창밖을 바라본다. 땀방울 하나가 겹친 살을 타고 스민다. 19층이 결코 낮지 않은데 맞은편의 거대한 건물이 시야를 가로막는다. 조여드는 목의 단추를 하나둘 풀며 뒤뚱뒤뚱 창가로 다가가 고개를 들이 뻗어 기어코 아래를 내려다보니 그곳에는 개미 같은 사람들이 점이 되어 이동하고 있다.


 '이렇게라도 사람을 봐야지. 나도 풍경이란 걸 보고 살어야지.'



 "강짱돌이는 어딘데?"

 "거긴 이미 시작된 거 아냐?"

 "야이씨, 아직 꼬리도 못 붙들었는데 벌써 법원 갔겠어?"

 "아니, 어쨌거나 수순이란 게 있잖아."

 "직위해제는 되겠지?"

 "곧 난다대."

 "5번이야, 6번이야?"

 "건 감사에서 알아서 하겠지 뭐." 

 "이러다 7번이면 부문장 자리 하나 비나?"

 "세상이 그렇게 쉽냐? 죄 짓고도 다아~ 돌아들 온다."

 "그치, 공사에서 그 짓하고도 살아남은 놈 아냐."

 "근데 이번엔 좀 크다네?"

 "그르게, 뭐 한두 개 걸리는 게 아닌 거 같던데?"

 "초창기에 현장부터 다 쓸고 올라왔잖아?"

 "노조도 걸고 넘어지겠네. 볼만하겠어."

 "유재희도 벼르고 있던데."

 "아, 거기랑도 뭐 있던가?"

 "둘이 안 좋을걸?"

 "크으."

 "한 번은 거치고 가야지. 이 기회에 싹 다 한 번 쓸려나갔으면 좋겠다, 난."

 "되려나? 이번엔."

 "그러게. 이번엔."



2020년 2월 20일 목요일 맑음


<기획재정부문 강주임> 개판이네

 일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없는데 무슨 기획이고 무슨 전략이고 무슨 재정... 우리가 삼성이야 구글이야, 기획이고 전략이고 나라가 하라면 하는 거지 무슨... 정권 바뀌면 또 다 엎어질 거. 공사에서 일하시던 분들이 제자리 찾으시면 좀 나으려나. 아냐, 오히려 불편하려나. 부문장님은 이와중에 어쩌려고 코빼기도 안 보이는 거지? 가만있어봐, 내가 정보를 너무 놓치고 있나? 핵은 티에픈데, 정책임님이 뭘 좀 아시려나? 연락을 하기도 애매하고.


<시설관리부문 기수석> 내가 비면 누굴 앉혀놔야 되나

 기술처는 보미가 실무 할 거고, 영준이가 과장급이니까 그만하면 됐고. 쏭과장이 복직할 때가 지났으니 시설에 박아두면 되겠네. 거기가 기술사에 20년 차니까 얼추 맞아. 신입들 들어오면 아래로 하나 채우면 되고. 것도 아니면 현장에서 하나 데려오고. 내 자리 찾으려니 남의 자리가 걱정이네. 아닌가? 이제 여기가 내 자린가? 남의 자리 뺏으려니 내 자리를 버려야 한다...가 오히려 맞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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