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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한해달 Jul 05. 2022

다이어트

2020년 2월 25일

 텅 빈 머리와 텅 빈 눈동자에 들어찬 갖은 지방이 최담당의 내복사근을 둘러싼다. 엄지로 배꼽 아래에 꽉 들어찬 단추를 힘껏 들어 올려 꾸깃꾸깃 표피를 구겨 넣는다. 단추가 사람이었다면 비명이라도 질렀으리라. 밥은 굶기 일쑤고 마음은 괴롭기만 한데 신기하게도 살이 찐다. 최담당은 다른 선배들과 마찬가지로 스케줄 근무의 망령에게 제 모든 것을 내어주고 그 대가로 축복받은 지방을 선물 받았다. 매 시즌 다이어트를 한다고 울부짖던 어머니의 심정이 이해가 된다. 선천적으로 지질을 타고난 몸이란 얼마나 불행한가. 주변에 보이는 마른 이들이 부럽다. 덩치까지 있다보니 흡사 드럼통이다. 드럼통에 팔다리가 달려있다면 그것이 나일 것이다.

 

 "운동... 하세요?"


 때마침 등장한 신위원에게 짧지만 간절한 한 마디를 건네본다. 신위원은 드물게 최담당이 먼저 말을 걸어줬다는 행복감에 옷도 갈아입다 말고 러닝 차림으로 아주 몸을 돌려 대꾸한다.


 "왜요? 운동하게요?"

 "아뇨, 살이... 너무 쪄서요."


 신위원의 눈이 몇 초간 위아래로 진동하더니 알았다는 듯 멋쩍다는 듯 다시 몸을 돌려 캐비닛을 향한다. 의미 없이 옷걸이를 걸었다 들어냈다 하더니 초점 잃은 눈으로 대답한다.


 "저는 원래... 그... 보시다시피 빈약해서요."

 "...아, 죄송해요. "


 마른 몸을 타고난 신위원이다. 운동에 관한 한 할 말이 없다. 왜소한 체구에 한 끼만 굶어도 티가 나게 마른다. 마구 먹어도 그다지 쪄본 적이 없고, 반대로 운동을 한다고 몸이 커지지도 않는다. 그저 여자들에게나 인기가 있는 잔근육의 마른 몸이다. 이것이 그의 콤플렉스이기도 하다. 최담당은 한 번도 그런 몸을 부러워해본 적이 없었다. 큰 덩치에는 자신이 있었고 운동을 하면 근육도 곧 잘 붙었다. 근질이 좋다는 소리도 여러 번 들었다. 그런데 이 회사에 오고나서부터, 정확히는 현장에 배치되고부터, 유니폼이라는 것을 입으면서 옷걸이가 되는 몸의 중요함을 깨달았다. 신위원은 민원을 받는 일이 없는 것이다. 최담당은 날렵하고 위협적이지 않은 신위원의 외모가 한몫을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


 "죄송...해요."

 "아뇨, 제가... 더 죄송하죠."


 애매한 공기 사이로 붓점이 타고 넘듯 찍힌다. 배에 살찐 그와 원래 마른 그는 서로 민망하기 짝이 없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파릇한 새 지저귀는 소리마저 잔혹하다.


 "그..."/ "저어..."

 "아, 먼저 말하세요."

 "아뇨, 먼저."


 청춘드라마의 엇갈림을 그대로 재현해내는 두 남자다. 상황이 더 악화되기 전에 결론을 내자. 그렇게 결심한 신위원이 입을 뗀다.


 "우리 센터 4층 한 번 올라가 보지?"

 "4층요?"

 "거의 안 쓰긴 하는데 전에 불근 동호회가 있었어요."

 "불...근요?"

 "불끈불끈 근육."

 "..."


 불근 동호회와 연이라고는 눈꼽만치도 없는 신위원이지만 노골적인 이름을 입에 담고 나니 괜스레 부끄러워진다. 절로 살짝 숙여진 귀에 핏빛이 감돈다.


 "...뭐, 거기도 동호회비 지원받으려고 억지로 만든 동호회긴 했는데. 하여간 그 동호회가 거기 쓰면서 홈짐처럼 해놨다고 들었거든요."

 "아. 괜찮네요."

 "말만 공기업이지, 복지라고는 없는 회산데 그거라도 써요. 헬스장 나가면 월 15만 원이야. 우리 봉급 뻔한데 뭐."

 "감사합니다."

 "아뇨."


 황급히 유니폼을 갖추어 입고 날렵한 뒤태를 자랑하며 캐비닛을 떠나는 신위원의 모습이 부럽다. 찬란하다. 오늘만큼은 내 불쌍한 단추를 구해주리라. 그렇게 생각한 최담당은 허리춤에 파묻힌 단추를 필사적으로 구출해 구멍에서 빼낸 뒤 지퍼를 반쯤 내리고 상의로 살포시 배를 가린다. 바지는 흘러내려 더 못 볼 꼴이 되었지만 배를 타고 오르는 자유의 감각이 부끄럽게도 행복하다. 발그레 상기된 볼을 하고는 남은 시간 4층으로 발걸음을 옮기기로 한다. 버려진 홈짐이라면 독점도 꿈은 아니다. 이 더러운 몸뚱아리를 어디 가서 내놓지 않아도 된다. 기구가 낡아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나 걱정도 잠시, 


 '회사에서 다치면 인병 휴가 아닌가? 돈 받으면서 쉴 수 있고 좋지 뭐.'


 처음으로 회사가 나에게 무언가를 제공하는구나. 원인 제공도 회사지만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면 뭐 결과적으로는 잘 된 일 아닌가. 좋은 게 좋은 거다. 입사 네 달 만에 제법 공자 붙은 인간의 사고 구조를 갖춘 스스로에 뿌듯함을 느낀다. 덜그럭거리는 무릎 관절을 애써 무시하며 두 계단씩 올라본다. 3층에 올라서니 제법 숨이 찬다. 괜찮다, 이것도 운동이다. 4층에 올라서니 그곳은 미화원의 손길이 닿지 않은 먼지 가득한 반층계와 자물쇠가 걸린 작은 문이 공존하고 있었다. 


 '잠겼나 본데?'


 그럼 그렇지. 내가 무슨 홈짐 독점이냐. 바닥을 치는 자존감에 한 발 더 나아갈 생각도 접고 맥이 빠져 돌아 내려가려는데 작은 바람이 먼지를 일으키며 왼쪽 구석으로 빨려 들어간다. 자세히 보니 왼편에 작은 복도가 나있다. 전략처 시절 그 뒤로 나있었던 복도를 닮은 불길한 통로다. 티에프실의 아저씨들이 죽상으로 들고나던 골방이 있었던 그 복도. 저것은 센터의 그것이다. 가면 안 된다. 분명 미국 공포영화에도 비슷한 장면이 있었다. 기어코  이상한 느낌이 드는 곳으로 가서 사단이 나고 마는 것이다. 바람직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 이런 곳에서의 호기심은 나를 비극으로 몰고갈 것이다.


 그렇게 한 발 한 발, 센터 4층의 좁은 복도로 향하는 구둣발에서 폼폼 먼지가 번져 난다. 홀린 듯 이동하는 육중한 몸은 그 옆에 나있는 자그마한 발자욱을 보지 못한다. 얼굴에 거치는 거미줄을 수도 없이 헤치며 나아가자니 알 수 없는 곤충의 죽은 몸들이 나뒹굴고 있다. 무엇을 밟았는지 잘 구워진 비스킷이 바스락 부스러지는 소리가 난다. 돌이킬 수 없다. 여기까지 오면 돌아 나갈 수도 없다.


 '불.근.'


 제대로 찾은 작은 문에는 바랜 종이에 적힌 파렴치한 두 글자가 붙어있다. 간당간당 수명이 다한 테이프가 애처롭다. 종이에 손을 가져다 대려는 순간, 바스러진 테이프가 종이를 떼어내 최담당의 발밑으로 보낸다. 미처 뻗지도 못한 어두운 손을 멈춘 채로 마지막 잎새가 나풀 그리는 동선을 바라보던 최담당은 그만 피식하고 자조한다. 그러더니 주위를 둘러본다.


 '이 건물에 이렇게 구석이 있었어?'


 가만히 둘러보니 이곳은 밖에서 보이지 않는 반층계 위에 지어진 가건물 안이다. 불법 건축물인가? 허가를 받은 건가? 작은 고민을 했지만 지금의 최담당이 고민할 일은 아니다. 퇴사 후 국토부에 찔러 넣을 복수 거리 중 하나로 고이 접어 지방 속에 보관해두자. 


 '후우.'


 깊은 숨을 일시에 뽑아내고는 손을 뻗어 문고리를 잡아당긴다. 어린 시절 해리포터에서 봤던 찬란한 빛이 어둠을 밝히며 온몸을 감싸고돈다. 눈이 빛에 적응되자 제법 큰 방 한가운데에 기괴한 모습의 생명체가 포착된다. 


 '워...프? 에이, 설마 요즘 유행하는 이세계는 아니지?' 


 너무나도 다른 밝기의 복도와 방은 최담당을 잠시간 혼란 속으로 불러들이고 말았다. 그 혼란의 틈을 타 방 한가운데의 생명체가 고개를 돌린다. 최담당도 조금씩 빛에 익숙해진 눈에 초점을 맞추어본다. 저것은, 뱃살이다. 볼록, 통통한, 뱃살이다. 서서히 기동 중인 최담당의 뇌는 눈앞의 단편 정보만을 캐치했다. 그러는 사이 온몸에서 물방울을 뚝뚝 떨어뜨리며 최담당쪽으로 완전히 몸을 돌린 뱃살이 요상한 자세를 풀고 정좌한다.


 "왜? 아줌마 뱃살 처음 봐?"



2020년 2월 25일 화요일 맑음


<중부본부 쏭수석> 요즘 것들은 인사를 안 해

 한창 운동하고 있는데 어디 시커먼 놈이 쑥 들어와 들어오기는. 깜짝 놀랐네. 어린 것이 인사도 안 하고 사람 몸이나 훑고 앉았고 말야, 기분 나쁘게. 태림이형은 뭔 전화를 또 서른 통이나 했어? 운동 한 시간에 시커먼 놈 하나에 전화 서른 통이 뭐야? 이놈의 회사가 아주 사람 잡게 생겼네. 본사 돌아가는 거 뻔하지. 절대로 안 휘말린다, 내가. 이래 봬도 여기서는 몇 안 되는 스페셜리스튼데 지들끼리 짬짜미 하는 정치 싸움에 말려들까봐? 음, ...태림이형이 지금 시관에 있던가?


<중부본부 최담당> 망했다

 시*, 망했다. 나 이거 신고당하는 거 아냐? 버려진 동방 아니었어? 요가복 입은 여자가 불근에 왜 있냐고. 아 씨, 나 왜 또 인사를 안 했지? 나... 혹시 진짜 인사 안 하는 놈인가? 쏭이면... 혹시 그 쏭? 복직하신다던? 본사 있을 때 영업으로 복직한다고 그러지 않았었나? 아냐아냐, 인사로 간다고... 에이씨, 뭔지 모르겠지만 일단 여기에 계시는 건 확실한 것 같고. 근데 왜 조직도에 없지?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뭔 놈의 회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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