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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궁이 Apr 27. 2023

카메루니안

걷다 보면 길이 되고, 살다 보면 길이 열린다


바퀴 가득한 바푸삼 버스(BINAM) 말고도 옵션이 생겼다. 몇 대 안 되지만 대형 버스(한국의 고속버스 정도?)가 운행하기 시작해서 운이 좋은 날은 야운데까지 5시간 안으로 도착할 수 있게 되었다. 의자도 깔끔하고 내부도 한국 고속버스 느낌이 물씬 난다. 이런 날이 오는구나!

하지만, 방심은 금물. 

차체가 높아서 발 밑이 어두운데, 종종 작은 그것들이 자유롭게 오가는 그림자를 보곤 한다. 때로는 약하디 약한 에어컨을 만지작 거리다 마주할 때, 역시 예상을 뒤집는 곳에서 출연을 거듭하는 그것들에 움찔하면서도 다시 쿨쿨 잘 수 있는 자유를 누리는 나는 지금 카메루니안이다. 


그리고 이건 내가 현지에 적응했다는 증거인데, 가끔 야운데까지 오는 승용차를 히치하이킹한다. 현지인에 대한 신뢰가 쌓이면서 담력이 커졌다고나 할까. 정말 좋은 현지인들을 만났는데 야운데 시내 아무 곳에 내려주면 택시로 사무실에 찾아오면 되고, 친절한 현지인들은 코이카 사무실(옴니스뽀) 앞까지 데려다주기도 했다. 물론 요금은 일반 버스의 두 배정도이지만, 바퀴벌레 걱정 없이 안락하게 올 수 있어서 참 좋다. 뒷자리 딱 3명, 앞에 1명 타는데, 이번에 나는 조수석에 앉아서 올 수 있었다. 

버스랑은 또 다른 길, 새로운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고산지대인 바푸삼에서 야운데로 내려가는 길은 마치 산 정상에서 내려가듯 오솔길 같은 2차선 도로가 구불구불하지만 막힘없이 앞을 향해 펼쳐져 있다. 길 옆으로 깊은 숲, 울창한 나무가 뺵뺵하다가 마르고 갈라진 틈새로 잡초가 무성한 평야가 끝없이 반복되는 풍경은 그림 같다. 

저 멀리까지 까마득해 보이는 길에 다니는 차가 내가 타고 가는 차뿐이다.

높은 건물도 흔한 농장도 없는 이 길에서 땅과 흙과 나무 그리고 하늘을 맘껏 누리며 길을 내려간다. 이 풍경을 보기만 해도 기분 좋고 여행할 맛이 난다. 야운데 가는 날은 디카에 반 이상은 카메룬 풍경이다. 같은 풍경이라도 찍고 다시 봐도 너무 좋다. 

하늘이 이렇게 넓고 새파란 줄 서울에 살면서 느낀 적이 있었나?


웃지 말자 그들은 진지하다

현지 택시나, 히치하이킹해서 타고 간 차 안은 특징이 있는데, 창문 손잡이가 다 없다. 창문을 열고 싶다고 기사에게 말하면 손잡이를 준다 그걸 끼워 걸고 돌려서 창문을 내리고 올리고 한다. 지금까지 살면서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방식이지만, 이곳은 자동차 부속품(핸들, 기어, 브레이크, 엑셀 발판, 손잡이 등을 뽑아감) 도난사고가 아주 많기 때문에 이런 소모품들은 다 기사가 빼서 보관한단다. 또 현지 자동차는 대부분 유럽에서 쓰던 중고의 중고에서 폐차 직전의 차들이 많이 들어오는데 인생에 딱 한 번이었지만, 앞자리 발 밑 차체가 녹슬고 낡아 구멍이 나있고, 그 틈새로 길바닥이 훤히 보인 적도 있다. 발이 땅에 닿아 끌릴까 봐 높이 들고 앉았던 충격적인 그날이 기억난다. 놀라기도 하고 믿기지 않아 웃음이 터진 나를 보며 발 조심하라고 한마디 할 뿐 진지한 기사를 보며 이들에겐 평범한 일상이고 현실인데, 내 기준에서 이상한 일로 여기고 반응하는 것이 때로는 현지인의 자존심을 다치게 하는 것이겠구나 생각했다. 


돈이 없지 가오가 없는 것은 아니니까, 어딜 가나 인간의 존엄을 기억하고 이들의 삶을 존중하자. 



 매연을 곁들인 길거리 음식

집 밖을 나오면 바퀴 말고도 흙먼지와 뒤섞인 매캐하고 숨이 막힐만한 매연이 가득하다. 손으로 입과 코를 가리면 참을 만 하지만, 가끔 이것 때문인지 머리가 아프곤 하다. 일산화탄소와 납 가득한 새까만 매연 속 오토바이며 자동차가 뒤섞여 있는 길가에서 파인애플, 망고, 수박을 팔고, 쁠랑뗑도 굽고, 고기 꼬치구이도 파는 모습을 멀리서 볼 때는 '저걸 어떻게 먹냐?' 하지만, 어느새 그 앞에서 파인애플을 뜯어먹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이래서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 했던가? 매연이 날리든 먼지가 날리든, 발 밑에 뭐가 기어 다니든 샛노랗고 달달한 파인애플의 달콤함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한 나는 "C'est bon!!(최고다)"을 외친다. 멀리서 볼 때 문제 같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문제가 아닌 경우가 바로 이런 경우 아니겠는가?   

주변의 환경이 열악해도 배고픔과 갈증을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란 말이다. 배고픈 자에게 공기오염 대책을 내놓는다면 그 도움이 과연 와닿을까? 나는 요즘 이곳에서 나 한 사람 봉사단원의 한계를 매일 경험하고 있다.

내가 뭐라고 당장 하루에 한 끼 먹는 게 급급한 이들에게 위생과 멸균을 강조하고, 하루 벌지 않으면 온 가족이 굶는 현실에 찌든 아이들에게 왜 꿈이 없냐고 할 수 있겠는가? 

다만, 이들과 한국의 비슷한 나이의 아이들, 청년들의 삶이 너무 갭(gap)이 커서 어떻게 하면 좁힐 수 있을지 고민할 뿐이다. 제일 중요한 것은 교육의 부재인데, 학교에 가는 아이들이 많지 않고, 고등교육까지 이어지지 못하는 아이들도 너무 많다는 것. 


이곳에 오면 병원에서 내 할 일만 할 거라 생각했는데, 내 오지랖은 벌써 카메룬의 미래, 차세대의 꿈에 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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