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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궁이 Jun 27. 2023

죠쉬안느

카메루니안

 척박한 아프리카살이에 지치고 외로운 이 청년 봉사단원을 가엽게 여기신 집사님은 사우나에 이어 다음날 저녁 식사 초대를 해주셨다. 찾아간 집사님 댁은 사진관 건물 꼭대기층이었는데, 현관에 들어서면서부터는 꼭 한국 같았다. 


솔솔~~  음식냄새가 흘러온다.

(킁킁)'우왓, 된장찌개 냄새?' 


못 먹은 지 1년이 되어가는 내 후각은 반가움에 미친 듯이 날뛰며 콧구멍을 벌렁거렸다.

진짜 된장찌개다. 

까만 피부에 땡글한 눈동자가 나를 보고 수줍어하면서도 활짝 웃으며 반겨주었다. 손수건을 둘둘 말아 뽀글한 곱슬머리를 이마가 훤히 보이게 쓸어 올렸고 롱다리에 쇼트팬츠, 낡고 헐렁한 나시티를 입은 10대 소녀로 보이는 카메룬 현지인이 된장찌개를 끓이고 있는 모습이 어색하면서도 익숙한 냄새 때문인지 반가웠다. 손등은 새까맣고 손바닥은 핑크빛이 도는 물이 잔뜩 묻은 소녀의 손을 잡아 악수를 나누고 인사를 했다. 나이가 60이 넘으신 집사님 내외만 보다가 젊은 나를 봐서 그런지 더 반가워했다. 

이름은 '죠쉬안느', 나이는 17살이란다. 집사님 집에서 가정부로 청소, 빨래, 요리 등 아침식사부터 저녁준비까지 담당하며 매일 일해온 지 2년이 넘었다고 했다. 한국식 모든 찌개는 집사님께 배워서 수준급으로 만들어 내고 있었다. 

이렇게 맛있는 된장찌개를 카메룬사람이 끓이다니 놀라면서도, 허기진 배를 채우느라 허겁지겁 먹었다. 배가 반 정도 찼을 때 주변을 둘러봤는데, 나와 집사님 내외 분만 식탁에 앉아 밥을 먹고 있고, 부엌 싱크대 아래 아주 작은 나무 의자에 겨우 앉아 접시를 들고 손으로 먹는 죠쉬안느가 보인다. 

조심스럽게 "죠쉬안느는 같이 안 먹나요?" 하고 물었다. 집사님 특유의 경상도 쿨한 말투로 현지인들은 원래 저렇게 먹는다고, 따로 먹는 게 죠쉬안느도 편하다고 하셨다. 


'근데 난 왜 이렇게 미안하지?' 

언젠가 수도에서 우리는 야외 식당에서 식사하면서 우리를 위해 그곳까지 운전해준 기사님은 차에서 나와 우리가 다 먹기를 기다리며 쳐다보고 있었는데, 그때 현지인 Driver를 대하던 냉랭하고 차가운 지시형 말투와 태도, 다른데 가서 먹고 오라는 말에 멋쩍게 웃으며 현금을 받아가시던 현지인 아저씨가 생각나서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도 어느 순간엔 내가 그들보다 높은 지위, 계급에 있는 사람처럼 현지인들의 행동과 사고를 함부로 판단할때가 있기에 그들을 인격적으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에 대해 늘 생각한다. 

내가 더 나은 삶을 살고 있고 그들은 무지하고 미개하다는 선입견이 은연중에 그들의 문화를 쉽게 무시하거나 그들의 태도를 판단한 경험이 있기에 , 이곳에서 나는 누구보다 현지인의 입장에서 살아가기를 소원하는 것이다.


이들의 삶에 보탬이 되는 봉사를 하든 장사를 하든 나나 집사님이나 이들의 문화에 이 땅에 잠시 초대된 손님들이니까......


저녁식사를 마치신 집사님 내외는 나에게 TV도 보고 좀 더 있다 가라 하시며 사진관 정리하고 마감하고 오시겠다고 다시 나가셨다. 죠쉬안느는 익숙한 듯 식탁 위 그릇들을 가져가 설거지를 시작했다. 나 혼자 편하게 TV를 보는 게 미안해서 그 옆에 쪼그려 앉아 이야기를 나눠봤다. 

죠쉬안느가 매일 장시간 일을 하면서도 받는 일당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현지인 기준해서는 잘 버는 것이다. 밖에서 하루종일 바나나를 팔아도 그만큼 못 버는 일이 태반일 테니 말이다. 사업을 하는 외국인집에서 기사를 하거나, 가정부를 하는 일은 현지인들에겐 확실하고 든든한 일자리임은 틀림없었다. 

봉사단원 생활비가 넉넉하지 않기도 하고 내 집은 가정부를 둘 만큼 할 일이 많지 않지만, 청소만 부탁하고 일당을 주기로 했다. 죠쉬안느는 정말 기뻐했다. 아픈 엄마와 동생들을 생각하면 조금이라도 더 버는 게 좋은 거니 집사님도 좋은 생각이라고 하셨다. 


 아프리카는 장판이 아닌 타일 바닥이라서 물청소를 한다. 

붉은 흙바람이 늘 불기 때문에 타일 사이사이 흙먼지가 껴있어서 물청소를 해야 쾌적하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조금 있다가 죠쉬가 오고 오자마자 청소할 준비를 한다. 

베란다에서 물을 한 통 받아다가 한국서 파는 슈퍼타이 같은 세제를 살살 풀어 거품물을 만들고 집안 바닥에 휘휘 뿌린다. 한쪽은 스펀지 한쪽은 고무끌개가 달린 물밀대로 처음엔 스펀지 쪽으로 바닥을 문질문질해서 비누거품을 내서 찌든 먼지 때를 닦고 고무끌개로 구정물을 쓰윽쓰윽 쓸어 한쪽 구석으로 구정물을 모은다. 모아진 구정물을 하수구멍으로 내려보낸다. 죠쉬는 우리 집에 있는 세제를 써도 된다는 말을 하기 전까지는 주머니에서 작은 비닐에 든 세제를 솔솔 풀어 청소를 했다. 내 거를 쓰라고 하고선 세제 낱개 포장 몇 개를 싸서 주었다. 매일 청소를 다 하면 같이 저녁을 해서 먹기도 하고 시간이 안되면 집에 가는 죠쉬 손에 꼭 먹을 것과 안 입는 옷을 나눠주었다. 

그렇게 죠쉬는 나와 언니 동생하는 친한 사이가 되어갔다. 


아니, 그렇다고 난 믿었다. 


어느 날 집사님이 아직 퇴근 전인데 전화를 하셨다. 

죠쉬안느가 집사님 집에 있는 현금을 훔쳐 달아났다고 했다. 집사님 댁에는 은행에나 있을법한 거대한 철제 금고가 있었는데, 비밀번호를 어떻게 알아냈는지 현금 다발을 들고 도망가서 경찰에 신고를 해두셨다고 했다. 우리 집에 없어진 거 없는지 가서 잘 살피라고 하셨다. 

우리 집은 뭐가 없어서 가져갈게 뭐가 있을까, 가져가도 되는 것들 뿐이라 생각하면서도 

서글서글 여동생 같던 죠쉬안느가 보고 싶었다. 

무슨 일일까? 정말 급하게 돈이 필요했을까? 

아니면 처음부터 나쁜 사람이었을까? 



죠쉬안느.... 어디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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