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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궁이 Jul 01. 2023

10년 뒤에 보자

카메루니안

어후 덥다. 역시 건기(Dry season of Africa)


여느 때처럼 아침 7~8시에도 적도의 태양은 한 낯처럼 이글거리고, 눈이 부시고 오토바이 지나갈 때마다 이는 붉은 흙에 얼굴을 잔뜩 찡그린 채 출근한다. 오늘같이 깜박하고 선캡을 안 쓰고 나온 날은 더 뜨겁다.

병원 가는 길 가에는 그늘에 자리 잡은 아침식사 파라솔이 줄줄이 맛있는 현지음식 냄새를 풍기고 있다. 

하나씩 지날 때마다 고민한다. '바나나로 때울까 이제 막 팜유에 튀겨 나온 베니에를 사 먹을까' 


베니에는 튀긴 도넛 빵인데, 앙꼬도 없는 밀가루 튀김빵인데, 너무 맛있어서 유혹을 이기기가 어렵단 말이지. 팜유에 튀긴 쁠랑뗑(바나나과의 채소)과 베니에로 난 10Kg가 늘었다. 

한국서 가져온 바지가 안 잠긴 지 오래다. 

그럼에도 먹고 싶은 나는 밀가루 중독 내지는 팜유 중독임에 틀림없다. 

병원에 들어서면 내 몸의 두세 배 되는 여인들이 거대한 몸으로 다니는 것을 보면서 상대적으로  나는 아직 날씬해 보여서 그런 것도 있다. 현지인 간호사 중에 문을 통과하지 못하는 사람도 봤다. 


오늘은 외과 과장 Dr.Fokam이 같이 회진을 가자고 굵고 낮은 그리고 엄청 큰 목청으로 나를 불렀다. 

"쵸이~! 쵸이! 알레!(가자) On vas avec moi(나랑 가자)"

보통 Kacho와 함께 가는데 오늘 Kacho휴가란다. 

외과병동과 내과까지 회진을 하는데, 이 병원은 내과전문의가 없다. 

포캄도 수련을 못하고 외과과장까지 된 걸 보면 교육의 부재로 인한  의료 인력 부족이 매우 심각하다. 


장 천공이나, 맹장 수술 등 일반적인 외과 수술을 받고 입원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들의 입원실 상황도 열악하기는 수술실과 마찬가지였다. 병실 천장과 벽은 거미줄이 어지럽게 쳐 있고 <멸균, 소독>을 찾기 힘든 환자 병실은 어느 곳은 출입문이 있고 어떤 곳은 문이 없다. 환자의 프라이버시가 노출돼도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녹이 슬어있는 철제 침대 틀은 대부분 스프링이 아래로 꺼져있고, 그 위에 얇은 매트리스를 놓고 환자는 눕는다. 홑이불이나 옷감에 쓰는 천을 덮고 있다. 환자 주변에 파리가 달라붙고 바퀴벌레도 침상 주변을 기어 다닌다. (오 마이 갓)


환자들 대부분 컨디션이 매우 좋지 않다. 발열 환자도 많고, 호흡기 환자도 많았다. 

한국이었으면 수술 후 2차 감염 증상으로 보고 blood culture로 세균인지 박테리아인지 원인을 찾고 항생제를 단계별로 쓸 텐데, 열나면 원인은 안 찾고 해열제만 준다. 약을 사려면 시장 약국에 가서 환자나 보호자가 사 와야 주사도 주고 약도 먹는 이곳의 의료시스템은 겪을 때마다 적응이 안 된다. 


회진을 하며 포캄선생은 말했다. 카메룬 병원 환자의 90% 이상이 에이즈 합병증이란다. 에이즈라는 질병이 낯선 나는 걸리면 죽는 병 정도로 생각했는데, 에이즈는 말 그대로 후천성 면역결핍증이라 다양한 질병에 쉽게 노출되고 결국은 호흡기 질환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에이즈를 가지고 태어나는 아이들도 많고, 에이즈 감염 사실을 모른 채 임신, 출산하는 산모들도 허다하단다. 일부다처제에서 무분별한 성생활도 문제이지만, 효과적인 피임기구나 방법을 사용하는 현지인들이 거의 없는 현실이기에 이런 문제는 악순환이다. 


비어있는 병실에 환자가 퇴원하면서 빼놓은 수액이 침대 폴대에 걸려있었다. 

물품소독기에서 사용한 바늘들이 시커멓게 구워져서 정리되어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이런 건 보면 즉시 치우고 버려야 한다. 그것도 그렇지만, 나비 바늘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것이 위험해 보이는데, 퇴원자리 정리나 소독하는 일이 없으니 내가 회진하면서 가끔 이렇게 정리한다. 


포캄선생과 그 병실을 빠져나가려는데 내 손가락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다. 

수액과 바늘을 정리하다가 찔린 것 같다. 바늘이 날카롭긴 해서 나도 모르게 스치듯 찔린 거 같은데 피가 나니 옆에 있던 다른 환자 보호자가 걱정을 하고 이를 본 포캄이 내 손을 잡아 들고 피를 빼냈다. 

다른 간호사에게 물어보더니 이 환자 에이즈 환자였단다. 


피를 일단 빼내고 베타딘으로 소독하고... 


한국에서도 바늘에 찔릴 일은 간혹 있어서 대수롭지 않은데, 에이즈환자 바늘이라고 포캄이 더 걱정을 하니 은근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에이즈 감염 경로가 수혈, 직접적인 성관계, 드물게 타액에 의해서 등등이 있었지.' 머릿속은 안심하기 위한 근거자료를 찾기 바빴다 


일단 찔린 부위가 깊은 것도 아니고 상처부위도 아니고 겉에서 살짝 찔린 거니까 괜찮겠지. 

에이즈 잠복기가 10년이라 했지....

괜찮겠지? 괜찮을 거야. 

베타딘을 들이부으며 손가락이 잘려나갈 정도로 피를 짜냈다. 


어디 10년 뒤에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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