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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궁이 Jul 06. 2023

애국자

대한민국 짝짝짝짝짝

군대 가면 효자 되고 

집 떠나면 고생이고

해외에 나가면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있지. 


2002년  Korea & Japan world cup은 물론이고, 한글,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 SAMSUNG, LG 등

사는 동안 눈부신 발전을 멈추지 않는 고국에 대한 애국심 가득했던 나는 전 세계 어디를 가도 대한민국, Corée du sud를 당연히 모두 잘 알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직 개발도상 중인 아프리카라서 그런 건가? 사람들이 왜 이렇게 모르지?' 

'바푸삼이 수도가 아니어서 그렇겠지? 수도 야운데 사람들은 알겠지? 그래도 모를 수가 있나?'

하는 지극히 자국중심주의적인 생각으로 우리나라를 모르는 현지인들을 무식하다 판단해 버리는 순간들이 많다. 


내 안에 깔려있는 '못 배우고, 못 사는 나라이니 이런 기본적인 정보도 모르는 군' 하는 교만한 생각. 


나의 조국에 대한 생각이 기대와 다른 현지생활을 경험하면서 내 생각이 우물 안 개구리 같았다는 것과 

국력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게 된다. 대한민국을 모르는 것도 있지만, 중국의 속국으로 여기는 현지인들의 언사에 충격받는 날도 있었다. 

대부분의 아프리카 국가가 사회주의 국가이거나 독재정권이 많아서 그런지 대한민국보다는 북한을 더 잘 알고 있고 관심을 갖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티브이가 없지만, 현지 뉴스방송에서도 대한민국의 싸우는 국회 말고는 대부분 북한 뉴스가 보도된다.

우리나라 기업 '대우건설'이 와서 아스팔트 길도 깔아주고 도로공사를 많이 해주고 있다는데도, 대한민국에 대한 인식이 많이 없다. 현지에서는 아시아 국가 중에 중국과 일본의 영향력이 매우 큰 데, 두 나라에 대한 현지인의 반응이 사뭇 다르다. 


중국인은 베니에 빵 파라솔 옆에서 부드러운 카스텔라 빵을 팔고, 

영어, 프랑스어 그 어느 것도 구사하지 않으면서 오직 중국어로 레스토랑과 야채 장사, 고기 장사, 가축 장사 등등  사업을 확장한다. 그래서 현지인들은 중국인을 싫어한다. 

"왜 가난한 우리나라에까지 와서 장사하냐고?" 따지는 사람들도 있으니 그 불만을 알 만 하다. 

게다가 내가 있는 동안 외국인 피살 강도 사건이 2번이나 있었는데, 대상이 모두 중국인이었다. 

중국은 원조나 도움을 주는 나라로 인식하지 않는다. 


일본은 안전을 이유로 자국민을 현지에 절대 파견하지 않는다. 

학교나 주요 시설들을 크고 좋게 건축해 주는데, 원조를 크게 하는 선진국이라는 인식이 있다. 

역시 돈이 최고인가.


내가 봉사단원 유니폼 정장을 깔끔하게 입고 나가면 '일본인'이냐고 묻고

운동복 바지에 후줄근한 티셔츠를 입고 편하게 나가면 '중국인'이라고 놀린다. 

일본인은 놀리지 않지만, 중국인은 '시노아, 니홍니홍(니하오~인사말을 놀리는 은어)' 하며 놀린다. 


중국은 이들의 상권을 위협하고, 일본은 돈을 주고  한국은 나처럼 봉사단원을 직접 현지에 파견하는데

봉사자 한 명은 너무 미약하여 아직은 현지에서 존재감 없는 한국이라, 한국인이라는 소개할 기회도 없이 나는 시노아, 니홍이라는 놀림을 받고 산다. 

"나 한국인이야."라고 외쳐도 아무도 모른다. 

병원 동료들에게 중국 아니고 한국 간호사라고 소개했더니, "중국이나 한국이나 같은 나라 아니냐"라고 하더라. 이런 답답한 상황을 봤나, 며칠을 궁리를 하고 명답을 해 주었다. 카메룬 사람들이 싫어하는 나이지리아를 비유로, "그럼 너네 나라나 나이지리아나 같은 나라겠네? 얼굴색도 같고 아프리카잖아!" 하고 반문했더니 그제야 깨달았다는 듯이 감탄하더라. 천재라는 말도 들었다.


유난히 나를 무시하고 간호사라고 해도 간호학생이라고 부르는 한 간호사가 <예지미술학원> 가방을 들고 왔기에 너무 반갑고 웃음이 나서 우리나라 글자라고 했는데, 기분 나빠하며 이건 중국산이란다. 

몇 글자 안되지만 내가 아는 일본어와 한글 그리고 한자를 써 보여 주며 중국어, 한국어, 일본어가 다 다르다고 설명을 그리 해주었는데도 중국산 가방이라며 마치 명품가방 소개하듯 얼마를 주고 샀다고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설명한다. 나도 여기서 그러려니 하면 될 것을, 병원을 뒤져 중국인 한 명을 찾아 데려왔다. 그리고는 가방의 글씨를 읽어보라 했더니 , 모른다고 한다. 

삼자대면 하듯이, 한국과 중국은 다른 나라이고 언어도 문화도 다르며 일본 역시 그렇다는 산 교육을 하고 말았다. 


그때 그 간호사의 표정이란. 

그 간호사 주변의 다른 간호사들은 박수를 치며 새로운 걸 알았다며 나를 향해 엄지를 들어 올렸다. 


어찌 됐든, 미술학원 다니면 그냥 주는 저 가방을 고급지게 생각해 줘서 고맙긴 하지만, 우리 것을 우리 것이라 알려줄 수 없다면 국민의 자격이 없다 생각한다.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남았는데, 

SAMSUNG을 일본 브랜드라 하는 의사들의 무지를 어떻게 계몽시킬 것인가.

남은 시간 동안 나의 사명이다. 

임기를 마치고 귀국할 때 이들은 알게 될 것이다. 

SAMSUNG은 꼬레 뒤 쉬~~~~~~~!!!!



자랑스러운 내 나라 한국을 알리고 싶다. 

아~~ 예지미술학원!!!!!!!! 땡큐~!!!!












**[이 일기들은 모두 2004년-2006년 사이에 봉사단원으로 살던 시절 기록된 내용이라, 현재 상황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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