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방 그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온 실내는 시원하긴 했지만, 너무 어두컴컴해서 강렬한 햇빛에 조리개를 바짝 조여둔 눈이 적응이 안 되는지 잠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창문하나 없는 복도처럼 생긴 길쭉한 공간, 높은 천장이 상가로 쓰기엔 많이 부족해 보였는데, 건물의 자투리 공간도 이렇게 쓰나 보다 생각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저 멀리에 천장에 형광등이 하나 달려있는데, 불빛을 한참 올려다봐야 켜진 건지 꺼진 건지 알 수 있을 만큼 까마득한 빛이 힘겹게 공간을 비추고 있다. 이 어둠 속에서 빛이 여기저기 새어 나오는데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은 사내들이 삼삼오오 앉아 자기들끼리 낄낄 대기도 하고 게임을 하는지 다그치기도 하고, 정장을 차려입은 두 남자는 열띤 토론을 하며 문서를 작성하는 것도 보인다. 그들이 말할 때마다 보이는 치아가 마치 야광빛처럼 여기저기 번쩍하고, 왁자지껄한 것이 아프리카 PC방 개성 가득하다.
이 공간에 여자는 나뿐이고 외국인도 나뿐이었다.
내가 들어설 때 수군대던 사람들은 이내 자기 일 하기 바빴고, 나는 랜선이 놓인 빈 책상 위에 랩탑을 꺼내 연결했다. 책상 위로 멀티탭이 놓여있어서 모니터 뒤로 전원 어댑터를 연결하고 인터넷 랜선(전화선)을 연결했다. 이곳에 유일한 랜선줄이다. 랩탑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없어서 얼마 전 내가 요청해서 생긴 거라고 하면 내 친구들이 믿을까 모르겠다.
늘 1시간 이용권을 사서 딱 1시간만 있다 가곤 하는데, 그 이유가 어두컴컴한 이 공간 책상아래 뭔가 지나다니는 것도 같고 그게 바퀴벌레 같아서 오래 앉아있으려니 온몸이 가려워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늘은 1시간 안에 본부에 보낼 보고서와 싸이월드에 사진 업데이트를 모두 하고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비가 오나 안 오나 정전이 너무 잦은 현지 사정 때문에 인터넷 창 하나 열리는데만 길면 10분 이상도 걸리니까....., Daum 첫 화면이 '드드드ㅡ드드' 소리를 내며 열리는 것 같다. 3분의 1일 열리고 성질 급한 내 머리 뚜껑도 그만치 열린 거 같다.
인내심을 끌어모아야 한다. 정전되지 않기를 바라며......
한 달에 한 번은 코이카 본부에 보고서를 써내는데,
병원이 건물만 있을 뿐 병원답지 못한 현지 병원에 가장 필요한 것은 내가 아니고 의료 물품이라는 설명을 가득 채운 <바푸삼 도립병원 물품지원 프로젝트>에 대한 계획과 비용 견적등을 보고서로 써 두었다. 봉사자보다는 선진의료센터를 세워서 현지의료인력의 역량을 키우고 물품지원도 지속되어야 한다는 지난 1년간의 일관된 나의 보고서를 본부에서 진중하게 고려할지 의문이다. 인터넷 연결과 동시에 내가 써둔 보고서를 메일로 후딱 보내고, 사진과 동영상을 줄줄이 업로드했다. 내 소식을 궁금해하는 친구들과 지인들을 위해서 최대한 소식을 전하는 이 시간은 나에게 휴식이다.
최근 마을 진료 때 찍은 사진과 동영상이 원활히 업로드되는 중에 갑자기 정전되었다.
역시, 단 한 번도 거르지 않는 정전이다.
불이 들어오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인터넷 로그인부터....
이게 일상이 돼버린 나는 크게 푸념할 것도 한숨 쉴 것도 아니라서 정전이 되어도 배터리가 아직 남은 랩탑 워드에 일기를 적어가고 있었다. 쓰다가 우연히 책상 위 멀티탭에 랜선인지 내 랩탑 전선인지 모를 라인이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나는 키보드만 만지고 있는데 저 줄이 왜 움직이지?'
한참 아무렇지 않다가, 문득 소름이 끼쳐서 다시 그 줄을 들여다보는데,
검정 랩탑전원과 랜선 굵기의 저 줄은 뭔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을 그때. 랩탑을 덮었는데...........
끼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 쥐.... 쥐다.
솔방울만 한 몸통에 꼬리가 정말 길게 뻗어있는 생쥐!!!!!!!!!!!!!!!!!!!!!!!!!!!!!!
비명소리에 정전된 PC방에 있던 사람들이 내 책상 앞으로 몰려오고, 사람들은 생쥐를 잡겠다고 웃고 떠들며 도깨비시장이 돼버렸다. 의자에 깡충 올라앉은 나는 눈을 가렸다가 귀를 가렸다가 머리를 쥐어뜯었다가 온갖 촐싹 맞은 행동으로 불안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가 구석에서 생쥐꼬리를 잡고 흔들어 보이는 사내들의 장난에 기절할 뻔했다. PC 주인이 그 녀석들에게 호통쳐서 쥐를 밖으로 내던지지 않았다면 나는 울었을 것이다.
살다 살다 이제는 쥐를 이렇게 코앞에서 본다.
정말 충격적이다.
타이밍 적절한 정전과 어둠 속에서 모니터 불빛에 비친 생쥐꼬리의 그 교묘한 라인......
바퀴를 넘어 이제 쥐의 존재를 알게 된 날이다.
언제나 인간과 함께 하려고 다가오는 그것들의 존재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