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푸삼에서 택시 타고 30분 정도 달리면 바함(Baham)이라는 작은 마을이 있다.
바함은 마을 입구부터 순도 100% 흙길 동네인데, 규모는 읍내와 면/리의 차이 정도랄까? 나도 어릴 적 시골 읍내에 살았었는데, 주말이면 할아버지 댁인 면을 '시골'이라 부르며 방문하고는 했었다. 사람은 어디나 똑같은가 바푸삼 사람들도 바함을 꽤 시골 취급했다.
이곳에 용감하게도 우리 간호사 동기 단원이 파견되어 있다. 나와 동갑내기 동기인지라, 가끔 오고 가며 현지 생활을 의지하고 산다. 바함 병원에 파견되어 있는 그 친구가 더 작은 마을로 예방접종을 다닌다고 연락이 왔다.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종일 해야 하는데 같이 다니지 않겠냐 해서 나도 바푸삼 병원에 허락을 받았다.
현지 기초 의료시설상태와 예방접종 사업을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니까!
작은 마을들 몇 개씩 묶어서 보건소 보다 작은 단위인 보건지소 수준의 의료시설이 있는데, 지역별로 균등하게 있지 않기에, 친구가 파견된 보건지소를 대표하는 병원에서 이런 마을 예방접종 사업을 맡아서 하고 있다.
바푸삼 터미널에서 아침 7시에 친구와 친구 병원 동료를 만나 인사를 나누고 택시를 잡아탔다.
데뽀(우리만 타고 가는 것으로 비용을 좀 더 줘야 한다)를 잡았는데 꽤 오랫동안 달렸다. 한참 달리던 택시는 승강장도 없는 어느 도로 길가에 우리를 내려주었는데, 익숙한 듯 현지 간호사는 시크한 표정으로 택시비를 지불하고 내리는데, 기사는 약간은 불만 있는 표정에 두꺼운 입술을 삐죽 내밀어 쩝! 소리를 내며 하는 수 없다는 듯 돈을 받아 쌩하니 가버렸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현지 간호사 말은 '여기 외국인들이 시골마을 아이들 백신접종 같이 하러 온 건데, 좀 싸게 해 주라'라고 협상보다는 일방적으로 통보한 듯하다.
땡볕아래 펼쳐진 초원을 보니 여기에 무슨 사람 사는 마을이 있을까 의심이 들었다.
현지 간호사와 우리는 백신 아이스백 가방을 하나씩 메고서 도로옆 풀숲을 헤치고 들어갔다. 한참을 들어가니 흙으로 지어놓은 학교가 보인다.
붉은 흙으로 빚은 벽돌로 쌓아 올린 교실엔 창문을 달아두는 것도 사치인 듯 창틀만 도려 양쪽으로 채광과 통풍이 되게 해 놓았다. 그 사이로 빛이 어두컴컴한 교실을 비추고 바람도 불어 들어온다. 아이들의 커다란 눈이 시커먼 교실에 반짝반짝 나를 쳐다본다.
학교, 나이/학년 구분 없는 온 동네 아이들이 다 모여 있는 곳인 듯하다.
도심에 있는 큰 시멘트 건물 학교들은 대부분 일본이 원조를 했다고 들었다. 이런 시골 마을 학교는 현지에서 자체적으로 지은 흙으로 지은 건물이기에 비가 오면 진흙탕이 된단다.
교실은 딱 하나뿐인데, 우기 때 쓸려나간 건물 자락 한쪽이 여전히 뭉개져 있고, 아이들은 길쭉한 책상 하나에 3~4명씩 교실 빼곡히 앉아있었다.
도심과 마을 단위 아이들의 기본위생상태가 너무 차이가 났다. 흙 길, 흙 집, 흙으로 지은 학교, 온몸에 붉은 흙을 뒤집어쓴 듯 피부에 수북이 쌓인 흙먼지..., 이런 깊은 마을에서 외국인을 볼 기회가 없었겠지, 깜짝 놀란 아이들은 함께 온 나와 내 동기를 번갈아 보며 대부분은 긴장한 듯 표정이 얼어붙었다. 더 어린애들은 겁을 먹고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울먹이기도 했다.
어린아이부터 좀 큰 아이까지 코 주변은 허옇게 굳어진 콧물자국이 있고 큼직하게 흘러내려온 누런 콧물을 대롱대롱 달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아이들의 피부에는 먼지가 많이 묻어있었고, 옷도 대부분 큰 사이즈를 입고 있어서 어딘가 어색한 차림이었다. 수도시설이 없는 마을은 개울가가 있으면 다행이고, 물을 길으러 반나절 넘게 왕복해야 한다고 들었다. 씻지 못하는 아이들의 위생상태는 심각했다. 누런 코는 기본이고, 먼지 때문에 눈병 있는 아이들도 많았다.
현지 간호사가 부족어로 학교 선생님과 소통하며, 폴리오 예방접종 한 적 없는 사람 앞으로 나오라고 했더니, 아이들은 어리둥절 해 하고, 선생이 대충 한 명씩 끄집어냈다. 그렇게 나온 아이들은 영문도 모른 채 얼떨떨한 표정으로 바지춤을 꼭 쥐는 가 하면 혼날 일을 한 것도 아닌데 선생님 눈치를 살피느라 정신이 없다.
우리는 그런 아이들의 긴장을 풀어주려고, 'Ca va, ca va'하며 앞에 나온 아이들을 보며 활짝 웃어 보였다.
그리고는 머리를 쓰다듬고 눈을 맞추며 안아주었다. 폴리오(소아마비) 백신약을 꺼내서 앞에 나온 아이들에게 스포이트 1방울씩 입안에 떨어뜨려 먹였다. 사실 폴리오 백신은 영, 유아기에 접종하는 것인데 좀 커 보이는 아이들도 대부분 백신을 놓치는 경우가 많아서 일단 다 먹였다.
맛없는 약인데 입맛을 쩝쩝 다시며 좋아한다. 아, 이럴 줄 알았으면 봉봉(사탕) 좀 들고 올걸 늘 아쉽다. 이 마을에 다시 와서 지원사업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금세 접종을 마쳤다.
학교에서 폴리오 접종을 하고 아이들에게 손 씻는 것을 간단히 교육하였다. 사실 물이 없는 현지에서 실현하기 어려운 손 씻기를 교육한다는 것은 허무맹랑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손 씻기를 교육할 것이 아니라, 수도시설 그러니까 최소한 우물이라도 파주는 것이 우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학교를 빠져나왔다.
여담으로 들은 이야기지만, 이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부모가 없는 아이들이 대부분이고 있더라도 엄마와 어렵게 사는 아이들이라고 했다. 모두가 어렵고 힘든 삶을 살고 있지만, 아이들이 교육을 받도록 학교를 보낸다는 것이 마음이 찡했다.
현지에 발령을 받은 날부터 지금까지 단 하루도 빠진 적이 없는 생각이 있는데, 한 명의 봉사단원이 파견되어 할 수 있는 일은 너무 미미하고 그 영향력은 의미가 별로 없는 것 같다. 선진화된 시스템을 만들어 주고 현지 인력을 교육하는 것 그리고 우리가 돕기 위해 봉사하는 순서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늘 생각하고 산다.
학교를 시작으로 해가 질 때까지 이 지역 일대 집집마다 다니며 이렇게 어린 영유아가 있는 가정을 찾아 예방 접종을 하였다. 이 작은 마을 안에도 여러 부족이 살고 있었는데, 집집마다 부족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현관문 주변에 새겨진 부족문양이 인상적이었다. 빗살무늬 토기 같은 문양에서부터 문신처럼 복잡한 도형이 그려진 것까지 다양했다.
영유아 사망률이 높은 아프리카는 모자보건 시스템이 매우 열악하다.
우리나라처럼 태어난 아이가 일정기간 백신접종을 할 수 있도록 스케줄 되어있지 않고, 이렇게 한 번씩 나오는 보건소/보건지소에 의지해서 접종을 해주면 받고 그렇지 않으면 질병에 걸려 죽는 것이다.
현지에 파견되어 살면서 내가 가장 힘든 순간들은, 죽지 않을 수 있는 상황에서 죽음을 맞는 현지인들을 무력하게 보고 있어야 하는 순간이다.
기본이면서 기초 의료서비스가 현지에서 활발해진다면, 이렇게 작은 마을 아이들도 지금보다 더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아~~~ 내가 가진 것은 너무 많구나. 나눠줄 것이 정말 많다.
한편으로는 행복하고 , 또 한편으로는 슬픈 이 마음을 나누며 오늘은 동기 단원과 함께 취침하였다.
내일은 봉봉(사탕)을 꼭 챙겨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