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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궁이 Jul 25. 2023

니홍과 아이들(2)

윌리엄스의 바문굼

윌리엄스는 영어로 대화가 되는 동갑내기 친구다. 

현지인들 중에는 유일하게 나를 만나면 뭘 달라고 하지 않고 이루고픈 자기 꿈을 이야기하는 진솔한 친구다. 

내가 주말마다 한국에서 가져온 약을 가지고 마을진료를 다닌다는 소식을 듣은 그는 2주 전쯤에 부탁했다. 바푸삼 중심에서 40분 정도 걸어 들어가면 '바문굼'이라는 작은 Village가 나오는데, 그의 고향이란다.

바문굼에 많은 노인과 아이들이 있다고, 한 번만 와 주면 정말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마을 진료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한국 교회에 신발과 일반의약품 등을 요청했었는데, 아이들에게 줄 신발과 한국 약, 주로 일반 감기약과 항생제 연고나 3세대 항생제, 진통제 등을 가방에 넣어 짊어매고 우리는 마을로 들어갔다. 마을 들어가는 길은 풀이 허리춤까지 자라 손으로 헤치며 걸어야 했고, 앞에서 길을 내주는 윌리엄스를 따라 한참을 들어갔다. 우거진 숲길 앞에 비포장 흙길이 넓게 나오고, '바문굼'이라는 마을 팻말이 녹이 슬대로 슬어 아슬아슬하게 세워져 있었다. 그곳을 지나니 어디서 있다 나타나는지 아이들이 양쪽 숲에서 모여들고 여기저기서 '니홍'과 '키득키득' 세트메뉴가 들려왔다. 


우리를 따라와 윌리엄스에게 인사하며 친형을 만난 듯 반가워 안기는 아이들. 

윌리엄스는 '니홍'이라고 하지 말라고 젠틀하게 알려주며 한국인이라고 나를 소개해 주었다. 

서로 어찌나 다정한지 사진 찍어서 남겨주겠다고 하니 길가에 서서 한 장 추억을 남겼다. 


우리는 먼저 윌리엄스의 할머니댁에 가서 인사를 드렸다. 

오토바이 뺑소니 사고 이후 무릎을 다쳐 다리를 쓰지 못하신다는 할머니를 살폈다. 돈이 없어 교통사고 이후 아무런 치료를 받지 못하고 시간이 지난 다리는 무릎 주변이 기형적으로 커져 부은 채로 굳은 것 같았고, 다친 다리와 지탱하는 다리 모두 혈액순환이 안 돼서 종아리 아래로 퉁퉁부어있었다. 뼈가 부서져서 그대로 굳었던지, 어딘가 다친 부위가 교정되지 않은 채 굳어버린 노인의 다리를 보니 난 왜 더 공부를 열심히 해서 의사가 될 생각을 안 했을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통증이 있을 때 드시라고, NSAID (이부프로펜)을 통에 담고 용량, 용법을 써드렸다. 


할머니는 바라는 것 없이 손님이 온 것 만으로 축복으로 여기며 반겨주셨는데, 약을 드리니 몸 둘 바를 몰라하셨다. 하루치 식량은 돼 보이는 콩과 옥수수 알을 구수하게 볶아서 한봉다리 담아 주셨는데, 안 주셔도 된다고 거절하려다 윌리엄스가 받아야 한다 그래서 그 따뜻한 마음 그대로 받아 왔다. 

할머니 집 앞 길목에 자리를 잡고 짐을 풀었다. 

윌리엄스가 미리 말을 해놓아서인지, 꽤 많은 여자와 아이들이 몰려왔다. 

상처소독 및  마을 진료 시간은 가져온 약이 없어질 때까지, 해지기 직전까지 하기로 하였다. 


윌리엄스가 가져다준  통나무 작은 조각을 차곡차곡 쌓아 올려 만든 나무 의자는 커다란 내 엉덩이를 걸치기엔 작아 보였지만, 매우 튼튼했다. 


첫 환자로 예닐곱 살 되어 보이는 한 남자아이와 엄마가 와서 앉았고, 아이 엄마는 아이의 발바닥을 내게 보여주었다. 언뜻 봐서는 노란 고름이 차 있는 것 같았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 속에 거뭇한 뭔가 보였다. 

'종기인가?' 이유 모를 고름도 많이 봐서 그런 건가 보다 하며 붉은 흙에 더럽혀진 아이 발을 물로 씻고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냈다. 물로 씻었는데도 수건엔 붉은 흙이 계속 묻어 나왔다. 


아이 발바닥에 가장자리부터 동글동글 솟아오른 고름주머니를 텄다. '톡' '톡' 터져 나오는 이 까만 것은 

'우앗, 벌레다!!'

이게 바로 피부진피 아래 알을 까고 단백질을 뽑아먹는다는 피부기생충... 그놈이다. 이 기생충이 젖은 옷감 매듭에 알을 까고 들러붙어서,  그냥 자연으로 말려 입었다 가는 뒷목 주변이나 팔뚝에 붙어 피부에 파고 들어가기 때문에 모든 옷은 무조건 뜨겁게 다려 입어야 한다고 카메룬에 오기도 전부터 선배들이 강조했던 그 무시무시한 기생충. 


이 작고 마른 아이 발바닥에 이렇게나 많이 들러붙어서 아이의 영양을 뺏어먹고 있었다니, 순식간에 성충이 되어 머리를 밀어내고 있는 놈들을 다 터트려 끄집어냈다. 

잡아낸 벌레를 거즈로 꾹꾹 눌러 죽이고 발바닥 하나를 마치고 보니, 아이 발바닥이 제주도 현무암 같이 송송 구멍이 나보였다. 소독약을 슥슥 발라주고 현재로서 내가 가진 만병통치약 후*딘을 발라주고, 양말을 신겨주고 슬리퍼를 신겨주었다. 

양쪽 발을 짜내는 동안, 엄마 품에 고개를 파묻고 있던 아이는 양쪽 발을 다 소독했을 때 땀과 눈물이 범벅이 된 얼굴로 처음 보는 슬리퍼를 보며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몇 번이고 고맙다고 인사하는 아이엄마와 아이에게 " De rien~(괜찮아요)!! C'est mon plasir(내 기쁨인걸요)!! Que Dieu vous bennis.(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 하며 인사해 주었다. 

이런 작은 마을 사람들은 교육을 받지 못해 불어로 소통이 어려워, 윌리엄스가 부족어로 통역해 주었다.


그렇게 시작해서 몇 시간을 그 나무의자에  쭈그려 앉아 수많은 성충을 짜내고 약을 발라주느라 벌써 해가 저무는지도 몰랐다. 현지 아이들은 신발을 신은 아이보다 맨발인 아이가 많아서 이번 방문엔 벌레만 짜주고 가는 것 같다. 한동안 이곳에 와서 상처소독을 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낮에는 금방이라도 다 태워버릴 듯 뜨거웠던 적도의 태양이 지고 나니, 아무것도 안 보이는 칠흑 같은 짙은 어둠이 너른 벌판에 시원하게 깔린다. 네온사인, 가로등 가득한 서울의 대낮 같은 밤이 아득하다. 


손전등을 챙겨간 덕에 마을 어귀까지 잘 헤쳐 나와 택시를 잡아탔다. 

우리나라처럼 내가 잡은 택시엔 나만 탈 수 있는 게 아니므로, 나와 윌리엄스를 시작으로 뒷자리에 3명이 더 타고 앞 조수석에 2명이 타서 기사까지 8명이 짐까지 싣고 바푸삼 시내로 나왔다. 몸이 찌그러지고 숨 막히는 스포츠 진기명기가 일상이 된 나를 보고 Tu es deja Cameroonee(너 카메룬 사람다됐다잉)이라며, 나에게 미안해하기도 하고 중국도 이러지 않겠냐며 자기들끼리 논쟁하는 게 심심하지 않아 재밌다.  

중국인이 아닌 한국인이라고 고쳐 말하는 내 목소리는 그들의 논쟁 속 어딘가 증발해 버리지만, 오늘처럼 보람 있는 토요일 저녁엔 한쪽 차창에 얼굴을 내밀고 몸은 찌그러진 채 30분을 달려도 그냥 기분 좋다. 


여기 살면서 더 크게 느끼지만, 

더 갖는 것보다 하나라도 더 나누는 것이 훨씬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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