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궁이 Sep 07. 2023

아름다운 팀워크

[아는 만큼 누린다, 철저한 수술 준비를 위해] 


평소 출근하는 시간에 도착했는데, 응급실 Major(수간호사)가 수술실에 얼른 가보라고 호들갑이었다. 

서둘러 가보니, 수술실 스태프들이 왜 이제 오냐며 오늘 수술이 너무 많다고 지난번에 가르쳐준 모니터 기계 세팅을 해달라고 했다. 


현지 파견되고 얼마 되지 않아, 창고에 쌓여있는 의료기기들을 하나씩 꺼내서 작동 확인을 하고 양호한 기기들은 간호사들에게 사용법을 교육했었다. 처음 몇 주간은 매일 가르쳐주었고, 지금도 물어볼 때마다 가서 알려주고 있다. 

수술실 옆 창고에 가득 쌓여있던 Vital signs monitor 기계는 혈압, 맥박, 산소포화도를 한 번에 확인하는 모니터기이고 한국이라면 보통 응급실, 중환자실, 수술실은 베드옆에 한 대씩 , 병동에도 충분히 구비되어 있는 기본 장치이다. EKG 기계만 따로 있는 것도 있었고, 산부인과 외래에서 봤던 태아 심음을 듣는 수동 도플러(플라스틱 깔때기)를 대신할 portable(이동식) 초음파 기계와 도플러도 보였다. 저 바닥까지 다 들추면 뭐가 나올까 기대될 만큼 기기들은 좋은 모델이었는데, 작동이 안 되거나 콘센트가 안 맞는 것도 많았다. 

이 창고에서 오랫동안 건기와 우기를 지낸 것 같았다. 유럽국가가 지원했다는 이 기계들은 사용하는 방법을 모르는 현지 의료인에 의해 창고에 구겨 넣어져 있었는데, 바닥에서부터 내 키를 넘길 만큼 쌓여있었다. 


이 많은 기계들이 단 한 번도 사용해보지 못한 채 여기 쳐 박혀있다는 것이 충격이었고, 의료인 교육 없이 던져진 선진의료기기들은 현지에서는 무용지물이요 애물단지에 불과하다는 것, 그런 지원은 형식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동시에 한 사람의 봉사단원으로 이곳에 파견되어 문화 충격과 너무 다른 의료현실에 적응하기가 참 힘들었는데, 이러한 부분을 메꿔 이들에게 더 나은 의료환경을 함께 만들어 갈 수 있다는 희망찬 생각도 들었다. 


모니터기 하나를 꺼내 전원을 연결하고 기본세팅을 하고 혈압을 재는 퍼프도 확인해 보니 잘 작동하기에 수술실 간호사들에게 사용방법을 가르쳐줬다. 오늘 스크럽은 내가 하고, 환자 모니터 기를 사용하고 결과를 기록하고 모니터 할 스탭 한 명에게 우리가 해야 할 역할을 의논하고, 수술실 세팅 및 준비를 마쳤다. 



[한 번에 주사할게, 아가야]


신생아들에게만 씌워주는 하얗고 깨끗한 니트 모자를 쓴 조그만 아이는 코에 L-tube(비위관; 코에서부터 위까지 연결된 호스로 경구로 섭취가 어려운 환자의 영양을 공급한다)를 꽂고 있었고, 힘겨운 숨을 내쉬며 축 늘어진 채 엄마 품에 안겨있었다. 모자를 벗겨보니 아직 닫히지 않은 대천문이 가쁜 호흡에 따라 크게 펄럭이는 듯했다. L-tube에서 보이는 녹색 drain fluid는 먹지 못하는 아이를 더 괴롭게 하는 쓰디쓴 소화액이 역류되는 것 같았고, 피부상태와 아이의 reflex(반사)는 전체적으로 Dehydration(탈수)와 Malnutrition(영양실조) 상태였다. 

오늘 첫 수술 환자인 이 아기는 생후 6일 된 신생아이고, 항문 없이 태어나 '항문(Anus) 형성부전' , 항문통로를 만들어주는 수술을 해야 한다. 현지의 산전간호는 거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고 산모관리 역시 매우 열악하여, 임신 중에 기형이나 사산을 인지하지 못한 채 출산 후 괴로움을 겪는 산모와 아이들이 많다. 


수간호사는 나에게 이 아기 IV 주사를 꼭 좀 성공해 달라 했다. 

이미 여러 간호사들이 아기의 약한 핏줄을 다 터트려놓고 간 자국이 양쪽 손등과 팔에 남아있었다. 내가 갔을 때 무씨유 Lion이 tendon(인대)에 꽂았다 실패해서 빼는 중이었는데, 잘 찾아서 놓지 않고 그냥 막 찌른다. 아기는 기운이 다 빠졌는지 울지도 않고 아이엄마만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는 것을 보니 한 번에 안전하게 잘 놓아야겠다는 사명감에 불타올랐다. 

현지 간호사는 남자가 대부분인데, 그들의 투박한 손은 해부학적인 혈관 위치를 잘 찾지 못한다. 눈에 보이는 실핏줄에 걸치듯 IV 하기 때문에 너무 자주 쉽게 혈관이 터져, 주사라인을 몇 시간도 유지하기 어렵다. 

사실 간호사 교육이나 수련이 부실하기 때문에 기술이 늘기도 어려운 것이 현지의 실상이다.  

 

왼손잡이이지만, 나름 한국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IV 어려운 환자 있으면 불려 가던 실력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혈관에 주사하면 간호사들은 감탄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저건 잘못된 거라고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다. 후자들은 주사 자리가 붓지 않고 수액이 잘 들어가면 그제야 떨떠름하게 인정하는데, 그들 중에는 나한테 와서 IV 하는 법 좀 가르쳐 달라고 하는 간호사들도 있다. 가르쳐줘도 못 찾는다는 것이 한계이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봉사단원 한 명으로 와 있는 이곳에서 큰 변화와 도움을 주는 것에는 한계를 느낀다. 내가 더 역량 있는 의료인이 되어 이들을 교육할 수 있다면 그래서 현지 의료인들에게 좋은 기술과 지식을 전해줄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것 같다. 물론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들을 알려주고 있지만, 선진화된 시스템과 학교에서 교육할 수 있다면 그 효과는 훨씬 좋은 환경에서 환자들이 보호를 받고 치료될 수 있을 것이다 


아이의 혈관을 살폈다. 사실 이렇게 미숙아에 가까운 신생아는 머리를 면도하고 이마 큰 혈관에 주사를 놓곤 했는데, 지금은 사지에서 찾아 놔야 해서 여기저기 찾다 가장 굵은 상완정맥에 주사했다. 내가 한국에서 잔뜩 후원받아 가져온 Jelco라는 바늘은 실리콘 바늘이라 주사 놓은 후에 아이의 팔이 움직여도 핏줄이 터질 염려가 없다. 날카로운 굵은 바늘이 피부를 뚫고 혈관을 뚫었는데도, 울지 않고 축 늘어져있는 아기를 수술대에 눕히고 주사팔에 부목을 대서 움직이지 않도록 고정했다. 


[생후 6일 아가의 투지, 생명은 눈물겹게 아름답다] 


수술준비가 거의 다 되어가는데 갑자기 아기가 피 거품을 물고 순식간에 얼굴이 사색이 되어 갔다. EMERGENCY다!

아이 엄마는 그런 아기를 보며 단념한 듯 넋을 잃고 고개를 숙인 채 울고만 있었다. 나는 닥터 꽈쵸와 포캄을 불러달라고 하고 Airway*(기도)를 확보를 위해 suction 기를 연결해 작은 튜브를 아기 입 옆으로 넣어 입안에 고인 피를 빼냈다. 그 사이 닥터 꽈쵸가 와서 아이를 살피다 심박수가 점점 떨어져 CPR을 했다. 40까지 떨어졌지만, 닥터꽈쵸와 나는 기도하며 산소를 주고, 계속 CPR을 했다. 심박수가 120까지 오르고 아기가 안정되어 갔다. Warm  bag을 만들어 달라고 해서 쇼크로 떨어진 체온을 높이고 사지를 문질러 주었다. 신생아 reflex 도 check 해달라고 하니 닥터 꽈쵸가 나에게 엄지손을 들어 올렸다. 


정신없었지만, 이 아기를 꼭 살려주시라고 기도하며 최선을 다한 우리의 처치에 하늘이 응답하신 듯 아기의 컨디션이 돌아와 2시간 후에 항문 만드는 수술을 받았다. 수술 전까지는 아기를 내가 꼭 안고 있었다. 

그 험한 수술대에 이 작은 아기만 올려두기엔 너무 추울 것 같고 마음이 아파서 말이다. 

그랬더니 수술실 간호사들, 닥터꽈쵸와 포캄이 나더러 "너는 반드시 카메룬에서 아이를 낳고 살아야 한다."며 아기를 안아주는 나를 대견해했다. 


수술은 특별한 이벤트 없이 잘 마쳤고, 나는 퇴근 전에 아기가 입원한 병실을 찾아갔다.

아기의 엄마는 내 손을 잡고 말없이 울며, Merci, Doc. Merci.(고맙습니다 선생님)라고 했다. 

내가 한 것은 하나 없지만, 아기 엄마의 간절한 기도와 눈물에 아기를 사랑하는 하늘의 뜻에 따라 

모든 시간에 필요한 사람과 물품들을 수술실에 보내주신 것이 감사했다. 수술동안 아기가 견뎌줘서 그리고 살려주신 하나님께 감사했다.

아기 엄마를 꼭 안아주었다. "Que Dieu vous bennis. (God bless you)" 


마음 같아서는 어디든 찾아가서 아프리카에 병원을 지어달라고 우수한 의료인재들을 좀 보내서 현지 의료인들을 훈련시키고 의료시스템이 향상되게 해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한국을 비롯한 선진의료국가에서는 충분히 살릴 간단한 처치도 아프리카에서는 여러 한계들에 부딪혀 시도조차 못하고 생을 포기해야 한다는 이 딜레마가 언제쯤 해결될까. 

처한 환경에 절망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시도해 보며 사람을 살리는 의료인이 되는 희망을 가지도록 우리의 도움이 더 적극적이고 구체적이면 얼마나 좋을까?


생후 6일 된 아가는 오늘 똥꼬와 새 삶을 얻었다.

사랑해 아가야. 축하해. 

건강하게 잘 자라렴. 










 

매거진의 이전글 니홍과 아이들 (4)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