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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궁이 Sep 10. 2023

봉사단 인생 최대위기

위선과 마주한 날

하염없이 눈물이 흐른다. 

닥터 꽈쵸는 울고 있는 나에게 내가 맞다고, 그게 맞는 거라고 정말 미안하다고 했다. 

하지만, 곧이어 그는 "00야, 이곳에 있는 사람들과 어울리고 우리를 도우려면 우리를 이해해야 한다. 우리의 상황과 환경을 한국과 비교하지 말아 달라." 말하는 그의 눈은 이미 빨개지고 눈물이 가득 차 있었다.

그때 심장 쪽 어딘가 칼로 도려내듯 가슴이 아프고 고개를 들 수 없었는데, 흐르는 내 눈물은 화나거나 억울하고 서러워서가 아니라, 부끄러워 흐르는 것임을 깨달았다. 


매일 수술이 있다 보니, 오전에 상처소독을 마친 나는 오후엔 거의 수술실과 중환자실에 근무하고 있다. 

오늘도 수술실로 넘어가는데, 수술실 문이 활짝 열려있고 마취에 걸린 환자가 수술대 위에 누워있는 게 보였다. '환자를 저렇게 두고, 문을 왜 열어둔 거야?' 여전히 멸균(Aseptic)의 개념이 없는 수술실 스태프들의 사고방식과 업무가 맘에 들지 않았다. 

환자의 프라이버시는 안중에도 없고, 수술받는 사람의 인권 따위는 들어보지 못한 것이 분명할 테지. 

내 속으로 이런저런 비판과 판단에 부글부글한 마음으로 수술실 입구 문을 열었다. 


바푸삼도립병원의 외과 과장이자 유일하게 레지던트 수련하고 있는 닥터 포캄이 

여느 때처럼 수술복 위에 커다란 정육점 앞치마를 걸치고 네모 탁자에 앉아 담배를 입에 물고,

포카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는 나를 보며 " 오~ 내 딸~" 하며 인사했지만,

그렇게 앉은 닥터 포캄 뒤로 거의 반 나체로 수술대에 마취되어 있는 환자를 보니 너무 화가 나서 그 앞에 다가가 소리쳤다. 게다가 그는 수술실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욕 한 바가지가 장전되었다)

"지금 뭐 하는 거지? 수술실에서 담배를 피우다니? 수술을 하다 말고 나와서 카드를 한다고? 네가 의사냐? 정말 맞냐? 너는 의사가 아니다"  T'es médecin? C'est vrai? Je ne pense pas que tu sois médecin.

정색을 하고 묻는 나의 질문폭탄에 닥터 포캄은 처음엔 능글맞게, 담뱃불을 끄며 수술물품 사러 간 보호자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변명을 했다. 그러면서 카드를 몇 장 손에 들고 웃는 그의 눈빛이 조금씩 변해가더니 권위의식에 가득한 한 인간의 자존심이 점점 상해 가는 게 보였다. 


그때 멈췄어야 했는데, 나는 한 번 더 그를 자극하고 말았다.

" 내가 본 의사 중에 너 같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수술할 환자를 눕혀놓고 담배를 피우고, 카드놀이를 하다니 한심하다." 


포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질렀다. 

"C'est quoi ca? 이게 무슨 짓이지? C'est impoli. 무례하다."

"Qu'est-ce que fais-tu? 네가 뭔데?"

"Si j'étais un médecin coréen, tu ne pourrais pas me dire ça. 내가 한국의사였다면 넌 나에게 이렇게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

"C'est un acte qui nous a ignorés. Je n'ai pas besoin de toi, alors retourne dans ton pays!

우리를 무시한 행동이다. 우리는 너 필요 없으니 당장 너네 나라로 돌아가라!"


워낙에 병원에서도 권위가 있고 이 지역에서 유일한 외과의사 포캄은 당장 코이카에 전화하겠다고 너는 지금 한국으로 돌아가라고 병원 전체가 흔들릴 만큼 고레고레 소리를 질렀다. 

나를 향해 큰 팔을 벌려 당장 자신의 수술실에서 그리고 이 병원에서 나가라고 소리쳤다.

'앗, 큰 실수를 범했다. 내 말이 이렇게 큰 일을 만들다니.'

순간 내 머릿속은 하얘졌다. 그가 한 말 ' 너네 나라였다면, 의사에게 이렇게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라는 말이 머릿속에 맴돌며 고개를 들 수 없을 만큼 부끄러워졌다. 

이들을 무시하고 있는 나 자신의 위선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 그가 한국인 의사였다면, 나는 한마디도 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그들이 어떤 지위와 권력에 있다 해도 이들은 도움을 받아야 할 가난하고 어려운 지구반대편 아프리칸일 뿐이었다. 함께 일하면서도 서로 배울 것이 있는 동료로 생각하기보다는 한참 미개한 그래서 의료현장 역시 한심하게 만들어 사람들을 죽어나가게 하는 사람들이라고 내 멋대로 판단해 왔던 것이다.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한다 하면서도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어떻게 이럴 수 있지?' 하며 속으로는 그들과 전혀 동화되지 못하는 이방인인 나의 오만과 교만 그리고 위선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내가 병원에 프로젝트를 시행하여 환경을 개선시키고, 마을 진료를 다니며 돈이 없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약을 나눠주고 상처를 싸매어 준다 해도 지금 포캄이 느꼈을 모멸감과 자존심의 상처를 거침없이 만든 나 자신이 너무 싫어지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계속 눈물이 나서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는 나를 수술실에서 함께 일하는 간호사들과 스태프들이 수술실 밖으로 내보냈다. 그중에는 나를 위로하며 등을 토닥이는 사람도 있었고, 어떤 이들은 포캄처럼 쓴소리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적잖이 소란스러웠는지 수술실 앞 외과 병동 보호자들도 나와서 구경을 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울고 있는 나를 흥미롭게 쳐다보았다. 


나 역시 이 상황이 당황스럽고 창피하고 민망하고 부끄러워 어쩔 줄 몰랐는데, 어디서 들었는지 닥터 꽈쵸가 달려와 나를 자기 진료실로 데려가 앉혔고, 자초지종을 설명해 보라고 했다. 꽈쵸는 이 병원에서 유일하게 영어로 소통이 가능한 의료인이다. 그에게 모든 것을 이야기했고 그는 나와 함께 울어주었다. 

듣기에 따끔하고 아프지만 들어야 할 중요한 깨달음을 따뜻하게 이야기하는 그에게 정말 고마웠다. 

내가 미안하다고, 닥터포캄이 느낀 것처럼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했다고 인정했다. 

꽈쵸는 나에게 괜찮다고 포캄선생에게 가서 진심으로 사과하면 된다고 격려해 주었다. 


정말 그랬다. 

이곳이 한국이고, 수술할 의사가 별 미친 짓을 한다 해도 한마디도 못할 거면서 나는 닥터포캄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그의 정육점 앞치마부터 늘 Not aseptic 하다며 농반진반으로 지적했던 나는 수술과 이후 의사로서의 실력까지 깡그리 최악이라고 평가하고 있는 것이었다. 


포캄의 방 앞에서 한참을 망설였다. 

다시 소리를 지르면 어떡하지? 나도 같이 화를 내며 다시 싸움이 되면 어떡하지? 

들켜버린 흉측한 마음을 들여다보며 나 스스로에게 충고했다.

내가 없어도 이들은 잘 먹고 잘 살고 있었다. 내가 괜히 이들에게 더 나은 환경을 열어주는 통로가 된답시고 기존의 방식을 잘못된 것이라 지적하고 고쳐야 한다고 열심히 강조하는 것이 이들에게는 자존심 상할 일이고 기분 나쁜 일일 것이다. 나는 봉사를 위해 이곳에 있지 이들의 몽학선생이 되려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들의 열악한 현실을 눈으로 보고 직접 체험하며 본국의 지원이 좀 더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작게나마 목소리를 보태는 한 명의 봉사자일 뿐이다. 이들의 삶의 방식을 뜯어고치라고 할 수 없다. 우리나라처럼 이들에게도 권위와 질서가 있는 것인데 내가 그 모든 것 위에 있다는 오만을 버려야 한다. 


노크를 하고 들어갔다. 

아까보다 더 차분하면서도 나를 보는 눈빛에는 그의 미안함이 들어있었다. 

서둘러 고개를 깊이 숙여 인사했다. 내가 정말 잘못했다고, 미안하다고.

당신에게 의사가 아니라고 했던 것, 나만 환자를 위하는 척 오만했던 것 용서해 달라고. 

내가 아는 불어에서 사죄의 표현을 반복하고 또 반복하며 눈물로 사죄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에게 와서 내 어깨에 손을 얹고 말했다. 

자기도 미안하다고, 하지만 현지의 의료인인 우리를 존중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오늘 상황은 이곳에서 너무 흔한 일이고 그는 수술을 위해 마취를 했고, 보호자가 수술 중 사용할 물품 중 몇 개를 구하러 갔는데 오지 않아서 중간에 중단하고 나와 기다리며 포카를 하고 있었다 했다. 

한국의 병원을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이곳에서는 너무 당연한 상황이었다. 


포캄도 나에게 소리쳤던 것 미안하다 하며 악수를 권했다. 

내가 와 줘서 고맙다는 말을 덧붙일 땐 다시 눈물이 났다. 

그는 내 눈물을 보자 빨리 가버리라고 농담을 하며 나를 보내주었다. 


이곳에서의 임기가 반 정도 남았다. 

나는 이제 더 뜨거운 사랑과 존경심으로 이들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내 안의 위선을 마주했던 오늘 나는 어디서도 배울 수 없는 귀한 것들을 배웠다. 


누가 더 앞서거나 미개한 것이 아니라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살고 있다는 점에서 시대와 지역에 상관없이 모두가 존중받고 인정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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