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나는

여전히 성장 중

by 아궁이

이 나라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2014년, 그날부터였다.


커다란 배가 점점 가라앉고 있었고, 이유식을 끓이던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수많은 구조대가 도착하겠지, 곧 모두 구조되겠지 하는 믿음으로 지켜보았는데,

모두의 간절함이 허무하게 가라앉아버린 그날 발을 동동 구르며 TV를 보다 결국 울어버렸다.

마음이 답답하고, 먹먹하고, 기운이 다 빠져 며칠을 멍하니 보냈다.

그날을 기점으로 정치와 언론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믿어왔던 모든 것을 의심하고 확인했다.

언론의 역할, 그것을 보고 듣는 국민의 역할에 대해 생각하고 살게 되었다. 그날 이후.


중학교 시절, 우리 반엔 18살짜리 오빠가 있었다.
고등학생 나이에 중학교 수업을 듣게 된 사정이 뭔지는 몰랐다.
다만, 그가 부르면 남학생들은 공부를 잘하건 못하건 줄줄이 가야 했고,
쉬는 시간엔 여학생들을 교실 밖으로 내쫓고 교실 뒤편에 남자 애들을 엎드리게 한 뒤,
몽둥이로 한 명씩 내리쳤다.


한 번은 그 오빠가 작은 체구의 남학생 몇 명을 불러 세우더니 500원을 내밀며 말했다.

"야, 이걸로 매점 가서 햄버거, 꽈배기 두 개, 쫀디기, 그리고 콜라 사 와."

말 같지도 않은 그 명령을 듣는 순간, 나는 인간 사회에서도 동물의 왕국이 펼쳐질 수 있음을 깨달았다.

힘 있는 놈이 힘없는 놈을 뜯어먹는 야생의 법칙.


나는 어릴 때부터 정의로운 인간이었다. 반장이었으니, 명분도 충분했다.
그 말을 들은 이상, 못 들은 척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용감하게 외쳤다.

"미친 거 아니야? 500원으로 그걸 어떻게 다 사?!"

찬물 끼얹은 듯 교실은 조용해지고 가깝게 지내던 친구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몇 초 뒤, 쌍욕과 함께 자동차 면허 시험지가 내 얼굴을 향해 날아왔다.


지금도 그때 그 오빠와 비슷한 부류의 인간들이 사회 곳곳에 여전히 존재한다.
강한 자 앞에 약하고, 약한 자에게 무자비한 그들이 어른이 되어 더 큰 힘을 휘두르고 있다.

불량한 사람들이 선량한 옷을 입고

불량한 방법으로 권력을 잡고,

그 불량한 권력으로 세상을 주무르려 한다.


나는 지금도 용감하게 외친다.

"미친 거 아니야?!"

아이들을 위해 민주주의를 지키겠노라고 추운 겨울 광장에 나갔다가,

급성 부비동염과 독감에 당하고, 영양제 없이는 버티지 못하는 내 몸을 보며 나이 듦을 실감하는 중이다.

마음은 여전히 청춘인데, 체력은 풍선 인형처럼 하염없이 펄럭인다.


2025년 내 몸은

폐경이 되려는지 생리는 오락가락하고

그 호르몬의 널뛰기 때문인지 기분도 오락가락하다.

4개월 전부터 복용한 인공호르몬은 부작용으로 체중증가를 남겨 지금 거구가 되어가고 있다.

어릴 적 익숙하게 보았던 엄마의 오겹뱃살과 똥배 세트도 나와 한 몸을 이루었다.


재택근무 5년 차, 요추 5,6번이 내려앉았고, 일어날 때마다 무릎에서 우두둑 소리와 통증에 헉하는 소리가 절로 난다. 어깨는 말려서 거북목과 환상의 콤비를 유지 중이다.

서울대 정선근 교수님의 유튜브를 보며 신전운동을 열심히 따라 하지만, 노화속도가 더 빠른 것 같다.


내 기질은

40을 훌쩍 넘긴 지금도

여전히 거절을 못하고

그래서 차라리 더 많은 일을 내가 하고 만다.

여전히 실속을 챙기지 못하고 산다.


위임의 기술은 타고난 재능일까?

일을 나누어지도록 남에게 시키는 것이 아직도 어렵다.


마당발, 오지라퍼 나의 인간관계도

이제는 만남이 많이 줄었다. 그것은 내 마음의 크기가 많이 줄어든 것이다.

그들을 만나고 싶은 마음,

만나서 즐거운 이야기보다는 무거운 이야기들이 많아지는 것을

이제는 피하고 싶기 때문이다.


나와 다른 교육관, 삶의 가치관을 듣고 있기가 지루하기 때문이다.


고달픈 40대의 인생

갈수록 약해지는 체력


나는 이제야 남편과 잘 지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언제까지나 끝까지 곁에 남을 우리.

우리는 동지다.

남편과의 관계를 이전이 기억나지 않도록 변화시키고 싶다.

이제 50을 바라보는 40대 중반,

나는 성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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