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랖도 성장 중
첫째를 낳고 경력을 유지할 수 없었다.
3년은 엄마가 키워야 아이 정서에 좋다더라는 말에 동감했고
양가 부모님이 육아지원하시기엔 녹록지 않은 사정들이 있었다.
베이비시터를 쓰고 복직할 묘안이 있음에도
산후 우울과 모성애를 폭발시키는 호르몬에 지배당한 그때는
나만 바라보며 꼼지락 거리는 한 생명을 두고 나가 일할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육아독립군이 되었다.
13년이 지난 오늘 나는 토막 경력을 극복하고 동기들보다는 늦었지만,
내 분야 PM으로 일하고 있다.
본업은 그러하다.
아이들을 키우며 일하는 것이 힘에 부치지만 지금 대한민국 엄마들은 다 이렇게 산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아이를 키운다면 사교육은 필수인데,
나처럼 사교육 없이 공교육과 방과 후 교실을 활용하는 소수민족이라면
평일 저녁, 야근이 없는 날은 아이들 과외선생님이 되어야 한다.
나는 수학만 봐주고 있다.
친모는 가고 계모가 등장하는 날이기도 하다.
시장 다녀오는 길에 잡은 손을 당기며 날 부른다.
엄마~근데 있잖아. 엄마도 학원 다니잖아.
나도 학원 다니고 싶은데 피아노도 하고 싶고 태권도도 해보고 싶고 한자 학원도 소윤이랑 같이 다니고 싶어.
재잘대며 하고 싶은 걸 길게 늘여놓고 있는 초등학생 너에게 되물었다.
잠깐만, 엄마가 학원을 다녀? 언제?
아니 엄마 오늘도 가잖아.
대학원.
일하고 공부도 하는 엄마.
엄마~근데 엄마는 집에서 맨날 컴퓨터만 하고 있잖아. 엄마도 로블록스하는 거야?
엄마 나도 엄마처럼 어른되면 아침부터 밤까지 로블록스 할 거야.
초등학생인 너에겐 아직 엄마의 회사로 이해하기엔 어려운 재택근무.
학교 가서 울 엄마 하루 종일 게임한다고 할까 걱정이네.
일하고 공부도 하면서 게임하는 엄마.
동네 골목길을 지나가는데, 고등학생들이 모여 담배를 피우고 한쪽에 두 손을 다소곳이 모은 학생이 눈에 띈다. 엄마, 빨리 가서 저 가방 메고 있는 오빠 도와줘.
엄마 경찰이잖아.
한참 전에 일이다.
동네 가운데 놀이터가 있는데 집을 오가면 늘 지나쳐야 하는 놀이터.
어린아이들과 부모 모두 활기차고 즐거운 그곳이
해가 지고 어둑해진 이후엔 청소년들의 학교폭력의 온상이 된다.
oo태권도복을 입은 초등생들이 한 아이를 때리고 있고 그 아이가 울고 있었다.
단숨에 달려가 그 녀석들을 불러 세워 야단을 쳤었다.
이 자식들아, 태권도 정신 안 배웠어?
태권도복 입고 친구 때리라고 사범님이 그러시던? 관장님이 그렇게 가르치든?!
장난? 친구가 우는데 한 명한테 여러 명이 이게 장난이야?
미안하다고 사과해. 어서
네, 근데 선생님이세요?
그럼, 선생님이지. 이놈들 한 번만 더 걸리면 혼난다. 하며 으름장도 놓았다.
초등학생들은 말을 참 잘 듣는다.
그리고 하루는 중학생들이 한 남학생을 세워두고 성추행하는 현장을 목격하고
뛰어갔다. 멀리서 보이는 그 광경에 참을 수 없는 분노와 안타까움.
심장이 쿵쾅거렸다.
갑자기 '거기 STOP!' 동작 그만을 외치며 달려온 낯선 아줌마. 낯선 어른.
170이 넘는 키에 뭔가 건장한 체격, 운동복을 입고 한 손에 빵이 잔뜩 들어있는 봉투를 들고 온 나를 본 중학생들은 '이건 뭐야? 하는 눈빛과 함께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비웃었다.
야, 저기서 올 때부터 내가 분명히 봤어. 매우 부적절한 행동을 하던데?
아 장난이에요. 큭큭큭
장난이야? 그럼 내가 너한테 똑같이 해볼까? 장난이니까.
흔들림 없는 눈빛과 가해자의 체육복에 붙은 이름표를 얼른 읽고 그 이름을 부르며 강단 있게 호통치는 나의 일관된 태도에 서서히 웃음기가 사라지고 두 손을 모으고 잘못했다고 시인하기에 이르렀다.
내가 요즘 너희 청소년들 문제로 밤새서 보고서 써내는데 미춰버리겠어.
너네 자꾸 이럴래? 오늘 내가 목격한 거 사건 접수해서 또 보고서 써야 하잖아!!
주변에 방관하며 담배를 피우던 3명까지 불러 세워 내 얼굴을 잘 기억하라고 너희 같은 학생들 사건 보고서 쓰고 형사입건시키는 청소년 담당 사복경찰로 소개했다. (그런 과, 그런 사복경찰이 있는지 모르지만)
장난이라고 갈길 가시라고 잡아떼던 처음의 껄렁한 태도에서 한 번만 봐주시라고 공손히 부탁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한 번 기회를 줄 테니, 하교하면 집으로 바로 가라고 단단히 훈계를 했다.
우연인지 모르겠으나, 때마침 순찰차가 지나가길래 마치 선후배 사이인 듯 쫓아가 문을 두드려 건의했다.
그 사이 아이들은 부랴부랴 흩어져 도망을 갔다. 경찰관님께 사실대로 말했다.
선의의 거짓말까지도.
이 시간에 놀이터 순찰은 내려서 직접 돌아봐 주시라는 부탁을 드렸다.
경찰관 한 분이 사복경찰이라고 했다는 말에 껄껄 웃으며 잘하셨네요. 했다.
실제로 그날 나는 회사 일이 너무 많았고, 하루 종일 문서 작업으로 지쳐 있던 날이었다.
그 이후로 우리 둘째는 엄마가 경찰인 줄 안다.
일하고 공부하며 게임도 하는 민중의 지팡이 엄마.
엄마는 무슨 일 해?
김밥을 잘 만드니까 김밥집 사장?
우리 머리 단발로 잘라주니까 미용사?
경찰?
학생?
프로게이머?
엄마는 N잡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