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을 코앞에 두고 드디어
27살 되던 그 해 2월 우리는 만났다.
처음 보는 나에게 같이 아침 먹으러 가자며 스스럼없이 다가와 주었다.
나를 보며 미소 짓는 커다란 눈은 반짝거렸고
호리호리한 큰 키에 비해 동글동글 귀여운 인상이었다.
모든 사람에게 친절했다.
아프리카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은 터라
아직 한국에서 직장생활이 어색한 나에게 너무나 따뜻한 사람이었다.
긴장을 풀어도 안전하다는 하늘이 주시는 시그널 같았다.
과거 고통스러웠던 병원 생활과 이곳은 다르다며
모두가 평등하고 존중하는 분위기라는 소개에
'이런 곳이 있구나.' 하며 우물 안 개구리는 넓은 세상으로 뛰어나왔다.
그 때 비로소 과거의 작은 경험만으로 두려움을 가득 안고 있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달았다.
2월, 아직은 매서운 겨울의 날씨였는데, 그녀를 만난 것만으로 포근한 봄이 벌써 찾아온 것 같았다.
20대의 우리는 만나는 암 환자들을 진심으로 대하며 열심히 일했고
때로는 노래방 천장의 거미줄을 다 걷어줄 만큼 열렬히 뛰어놀았다.
인기 있다는 영화, 공연도 보러 다니고 맛있는 저녁식사도 종종 함께 했다.
목욕탕에서 서로 등을 밀어주기까지
직장 동료로 만난 우리는 친자매처럼 가까워졌다.
너는 너무 모르는 게 많구나.
백지 같다. 믿을 수가 없다.
이 나이가 되도록 뭘 하고 산 것이냐, 거짓말 아니냐 했다.
아직까지 남자를 만나본 적이 없다는 나를 불쌍히 여기며
소개팅도 주선해 주고
주선해 준 소개팅에서 죽을 쑨 나를 보며
혀를 끌끌 차면서도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짚신도 짝이 있어. 있어봐 봐. 너무 슬퍼하지 말고."
"보이시 하지만, 너도 이쁜 구석이 있어. 좀 꾸며봐."
인기가 많았던 그녀는 비밀스러운 자기만의 팁을 전수하며, 나에게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열어주고 끌어주었다.
인생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녀가 아닌 내가 먼저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왜? 네가 왜 결혼을 해? 그 누구보다 어울리지 않고 믿기지 않는다며 축하 이전에 사실 확인이 먼저라던
그녀는 청첩장을 받아 들고서야 미뤄둔 축하를 쏟아부었다.
보는 눈이 없는 것 같은데
너 정말 좋은 사람 만난 것 같다.
너의 부모님 기도 덕분일 거야.
진짜 축복이다. 축하한다.
얼마 있다가 나는 남편과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녀는 꼭 정착하라며 돈도 주고 선물도 주었다.
마치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았다.
친언니가 있지만, 그녀는 나에게 든든함 그 이상이었다.
그리고
다시 내가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입덧할 때, 만삭일 때,
화려한 강남에서 신혼살림 시작을 알릴 때도
초라한 방 한 칸에 앉아
젖먹이 아이를 돌보느라 정신이 피폐해져 갈 때도
그녀는 내 곁에 있었다.
30대의 우리는 유부녀와 싱글이었지만
그녀는 결혼생활에서 괴로운 날들마다 나를 위로하고 일으켜주었다.
내가 울 때 같이 울어주고
나의 필요를 남모르게 채워주며 내 삶과 가정을 응원해 주었다.
나는 벌써 아이가 둘이고, 우리 나이도 어느덧 40대 중반을 향하는데
여전히 싱글인 그녀가 누구라도 만나기를 늘 바랬다.
자기는 자만추 라며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이때껏 이상형이 바뀐 적이 없다며
조인성. 그를 찾고 있다 했다.
소개팅 같은 거 주선하지 말라.
남편의 주변인들을 찾아봐도
조인성 닮은 이는 찾기 어려웠다.
좋은 사람이라도 사진을 내밀면 "아니야. 내가 알아서 할게. 관심 꺼줄래." 했다.
그랬던 그녀가
드디어 결혼을 한단다.
50을 코 앞에 두고
이 기쁨과 감사, 감격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남자들에게 브로맨스라는 적절한 단어가 있다면,
나는 이 관계를 뭐라고 해야할께.
우먼스? 우로맨스? 시스로맨스? 시로맨스?
하늘은 다 안다.
언니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며 살아왔는지
얼마나 많은 이들을 살리며 살아왔는지 다 아실 거다.
꼭 보답해 주시길 기도한다.
내가 받은 이 축복의 만 배로 꼭 그녀의 가정과 인생에 갚아주셔야 합니다.
20대에 만나서 40대까지
내 인생에 너무나 좋은 든든한 친구였던 언니야.
진심으로 내 깊은 사랑 가득 담아
결혼 축하해.
뭘 선물해야할까 벌써부터 눈물이 날 것 같은데.
다행이야 아직 50 전이라서.
언니 사랑하고 축복해. 행복하게 잘 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