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록달록 퀼트경력
자발적으로 선택한 육아독립군.
그토록 괴롭고 힘든 일인 줄 모르고
초보 애미는 '애는 부모가 키워야지', 그 말에 동의하고 말았지.
오직 모유만 먹기로 일찍이 작정해 버린 첫 아이는
내 몸매는 물론 하루 24시간을 뺏아갔어.
소아과에서도 difficult baby로 진단할 정도로 예민했던 아이는
젖에 의존해 쪽잠을 자거나 밤에 잠을 잘 안 잤어.
생후 45일쯤 난소탈장을 수술하고 더 예민해졌지.
이제 갓 태어난 핏덩이가 전신마취로 수술을 경험했으니,
아이가 안정될 때까지는
가난하게 살더라도 내가 키우겠다 다짐했어.
그 결정 후회하지는 않아.
당시 너무 힘들어서 아이가 이쁜 줄을 모르고 지나온 것이 후회될 뿐...
내 행색은 머리는 다 빠져 잔디인형 같았고,
커다란 수유티와 남편이 안 입는 사각팬티가 젤 편했어.
밤인지 낮인지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옹알옹알하는 아이와만 있다 보니
말도 예전처럼 유창하게 나오지 않더라고.
어쩜 엄마도 언니도 힘들다는 말을 안 해준 거야?
아니, 너무 힘들어서 그런 말할 새도 없었을 거야.......
더 힘들었던 건,
아이가 태어나고부터 부부싸움도 시작되었다는 것.
그때부터였어. 사람은 의지할 대상이 아니구나.
다만, 우리가 한 팀이라는 것만 잊지 말 자하며 내 기대를 내려놓기 시작했어.
남편도 처음이라 그랬겠지.
신생아에게 모든 것을 뺏겨버려 예전만큼 표현하지 않는 나를 육아패전용사라 공감하기보다는
저 여자가 왜 매사 짜증일까? 하며 서운했겠지.
아이만 키워낸 그 세월은 내 인생에 '실미도 시절'이었어.
육아독립군으로 3년을 복역하고 제대하니,
나와 같은 길을 걸어온 동기들은 벌써 저만치 앞서갔더라.
매니저, 팀장, 이사..... 어디서든 조직의 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더라.
복직하며 이직을 했는데,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아니었어. 잘하는 일도 아니었고
하지만 더 늦어지면 난 돌아올 수 없었을 거야.
그날의 인터뷰를 잊을 수가 없어.
뇌가 안드로메다로 가서 당최 돌아오지를 않았어.
다행인 건지 불행인지 전혀 긴장이 되지 않더라.
들리는 소문대로 압박면접이었는데, 나에겐 전혀 통하지가 않았어.
" 아궁이님은, 사람 중에 무서운 사람 없죠?"
" 네, 무서운 사람은 없습니다."
" 하하핫"
할 말을 다해서 그런지 미련 없이 돌아오는 테헤란로가 어찌나 상쾌해 보이던지
나도 모르게 깡총깡총 걷는 것 같았어.
플라타너스 가로수 그 길을 걸으며,
기적이 일어난다면 오랜만에 다시 일을 할 수도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오랜만에 설레던 하루였어.
언제 혼자 이렇게 나와 걸어보리.
애 낳고 몸이 바뀌었는지 걸음걸이도 이상해졌더라.
그날만큼은 수유패드가 젖어가는 것도 잊고 북적거리는 거리를 걷고 싶었어.
불합격을 확신했는데, 합격전화가 왔을 때
버스 안에서 소리 지를 뻔했지.
이런 날이면 나는 확신해.
괴로운 나날 중에 신음했던 내 기도를 듣는 신이 분명히 있다는 것을 말이야.
그렇게 워킹맘이 되었어.
퇴근 시간이면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최대한 티 안 나게 튀어나와 집까지 1시간 거리를 전력질주했지.
그래도 어린이집에 도착하면 늘 첫째를 포함해서 한 두 명만 남아있었어.
난 쓸데없는데 마음이 약해서
꼭 이런 것에만 눈물이 많아서
혼자 있을 아이 생각에 눈물을 훔치며 달리는 날이 많았어.
망각은 신이 주신 축복이라지? 고난의 실미도를 잊고 둘째를 낳아버렸지.
둘째는 딱 1년만 휴직하고
이어서 일을 하는 중이야.
인간이 멸종하지 않고 질병이 사라지지 않는 한
내 직업은 철밥통이라 믿어왔는데,
COVID 19는 전 세계를 흔든 만큼 후폭풍이 거셌어.
유럽 제약사였던 회사에서
시니어 포지션을 구조 조정하기로 결정한 거야.
우리 팀은 4명뿐이었는데, 이중에 2명만 남기기로...
내가 나이가 제일 많았거든.
그중에 한 명이 전화를 걸어왔어.
"언니, 언니는 다른 거 잘하는 거 많잖아. 난 이것밖에 못해."
누구라도 알아차리거나 나처럼 오지랖이 넓거나 불편한 관계되는 게 싫거나
하는 사람이라면 나와 같은 결정을 했겠지?
그 시절에 내가 스스로 나오면 안 됐는데, 괜한 자격지심에 난 멋지게 물러났어.
하지만, 현실은 전혀 멋지지 않았지.
그 후로 1년은 꼬박 백수생활이 이어졌어.
예전과 달라진 현실을 체감하며 포기하지 않고 CV(이력서)를 넣었어.
인터뷰도 수십 번을 했고.
될 것처럼 하다가도 불합격 통지가 날아왔지.
그만큼 Post COVID가 강력히 내 앞길을 가로막아 섰어.
40대가 돼서도 진로고민을 하더라.
뭘 해야 할까?
뭘 잘하나?
뭘 좋아하더라?
고민하게 될 줄은 몰랐어.
그보다 더 몰랐던 것은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싶어 하는지 모르겠다는 거야.
그래도 있잖아.
포기하지 않으면 기회는 찾아와.
난 지금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어.
내 오지랖에 어울릴만한 일이야.
나이 어린 보스와 동료들과 일하고 있지만
내가 하는 일이 참 좋아.
한 걸음 물러서는 때가 있었지만,
그 또한 지나가고
두 걸음 나아갈 기회가 오더라.
그러니 우리 40대들아,
토막난 경력으로 퀄트하는 여인들아, 포기하지 말고 도전하기를 멈추지 말자.
좀만 힘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