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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son Im Oct 31. 2019

독서모임을 만들게 된 이유

2013년을 회고하며 - 임승진

독서모임의 역사가 담긴 사진들

2013년 7월 22일, 아그레아블 독서모임이 탄생한 날이다. 당시 필자는 24살의 다양한 경험을 쌓고 있었던 청년이었고, 대학교 3학년 휴학 후 IT회사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일하고 있었다. (현재는 두나무 - 업비트, 카카오증권 개발사- 합병됨)


회사에선 매주 금요일 오후 3시간의 사내 동아리 활동을 지원하는 기업문화가 있었는데, 이때 글쓰기 모임을 경험해보고 생각보다 책 읽고 모여서 이야기하는 것이 재밌을 수 있다는 인사이트를 얻었다.


그 후 우연히 페이스북 그룹을 통해 언어 교환 (Language Exchange) 모임을 참석한 적이 있었는데 100여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카페에 모여서 파티처럼 진행하는 방식이 학습효과가 크다는 걸 느끼게 되었다. 이후 아그레아블 독서모임을 만들게 된 데에는 이 2가지 경험이 중요했다.


출처 - 소비자 경제신문

어느 날 출근길 지하철에서 여느 때와 다름없이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는데, 책 읽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알았다. 문득 "지금 표정 없이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하는 자리가 있으면 재미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주말에 참석할 모임을 찾아보기로 했다.


당시 페이스북에 "책벌레"라는 그룹이 짧은 시간에 10만 명 이상 규모로 커지면서 지역별 오프라인 모임이 자주 열리고 있었다. 다만 모임이 생기기만 하면 너무 빨리 마감이 되는 바람에 어디에도 들어갈 수 없는 게 문제였다. 번번이 거절을 당하자 그냥 만들어야겠다고 느꼈다. "정원 제한이 없는 모임. 100명이 와도 어떻게든 자리 구해볼게요"라는 과감한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책벌레 강남 독서모임"이라는 그룹을 만들었다.

과거에 운영했던 페이스북 그룹

같은 생각을 했던 사람들이 많았는지 하루 만에 100명 넘게 가입을 해주었고, 빠르게 번개를 추진하게 되었다. 요일에 대한 설문을 해보니 월요일 7시, 토요일 2시가 가장 인기여서 주 2회로 모이기로 결정하고, 월요일에 첫 모임을 진행하기로 했다.


첫 모임에 참석하겠다는 분만 20명이 넘었기 때문에 3시간 동안 모임을 진행할 카페를 찾는 게 급선무였다. 평소 출퇴근할 때 봐왔던 강남역 4번 출구 앞의 "아그레아블"이라는 예쁜 플라워 카페를 섭외했다.


정작 모임 당일이 되자 많이 올까 봐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너무 순진했던 것일까? 아침부터 불참하겠다는 댓글이 쏟아지고 모임 1시간 전쯤 되니 올 수 있는 사람이 2명밖에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대학 동기와 회사 동료들에게 부탁을 해서 7명을 맞췄다. 서로 모르는 척을 하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첫 모임을 정신없이 마쳤다. 그날 모임이 진행된 것이 감격스러웠는지 인증샷을 남겼다. 그리고 인증샷을 찍는 문화는 현재까지 중요한 마케팅 방법이 되고 있다.


2013.08.03 2주 차 토요 모임 후기

우리 독서모임만의 차별점은 "자유도서 모임"이다. 다른 독서모임이 리더가 공지한 책을 미리 읽고 모여서 토론하는 방식이라면, 자유도서 모임은 본인이 읽은 책을 각자 소개하는 형식이다. 자칫 운영이 미숙한 리더가 진행하는 경우 겉핥기 식의 이야기나 신변잡기 위주로 대화가 전개될 수 있다는 단점도 있지만, 반대로 호불호가 없어서 많은 대중을 상대로 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다. 도서 시장은 롱테일 카테고리이고, 필자도 사람이 추천하는 책을 읽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자유도서 모임"을 생각하게 되었다.


국내에서 이런 시도는 우리가 처음이었는데 이후 다른 지역에서도 유사한 방식으로 진행하는 독서모임들이 많이 생겼고, 모두 오랫동안 살아남고 있어 내심 뿌듯하게 생각하고 있다.

한 조의 정원은 7명이고, 자기소개 시간을 한 바퀴 돈 뒤 책 소개를 진행한다. 자기소개는 "이름, 금주의 관심사"만 이야기하며, 자유로운 토론문화를 위해 나이나 직업 같은 불필요한 정보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첫 주에는 별도로 책 읽는 시간이 부여되었으나, 이후 참석자가 늘어나면서 회원 요청에 의해 별도의 책 읽는 시간 없이 바로 토론이 진행되고 있다. "자유도서 모임"은 6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여전히 아그레아블 독서모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모임이며, 설/추석 명절, 크리스마스, 신정, 심지어 필자의 결혼식을 포함하여 한주도 빠짐없이 진행되고 있다.


모임은 토요일 오후 2시에 반드시 열린다는 강한 믿음을 심어준 것이 현재의 매월 1,000명이 찾아오는 규모를 만든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

모임장 결혼식 참석한 뒤, 바로 독서모임을 하러간 대단한 양반들

글을 쓰며 궁금해서 당시 정원 제한을 했던 다른 페이스북 그룹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서 찾아보니 전부 없어진 것 같다. 우리가 100명 회원가입을 받았는데도 2명이 왔으니 처음부터 20명 가입제한을 둔 모임은 영속성을 가지기가 불가능한 게 당연했을지도 모르겠다.


모임에 온다는 사람이 없어도 매주 지인들에게 연락을 돌리며 억지로 운영되게 만든 지 몇 주 지났을 때, 지인들이 더 이상 오기가 힘들다는 이야기를 했다. 망연자실하고 있을 때 신기하게도 자발적인 신청이 20명 이상 들어왔고, 5주째가 된 날 처음으로 약속한 모든 사람들이 펑크 없이 참가했다. 나중에 이유를 들어보니 후기 사진을 보고 잘 운영되고 있는 모임이라는 느낌을 받아서 왔다고 한다.


"아그레아블 독서모임"이라는 이름은 회원 공모를 통해 첫 모임 장소였던 플라워 카페 "아그레아블"을 따서 지은 이름이다. 카페 대표님이 결혼할 때 부케도 해주시고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많이 받아 개인적으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공간이다. 꽃 향기도 나고 소개팅 많이 하기로 유명한 예쁜 카페이니 꼭 가봤으면 좋겠다.


독서모임은 카페 아그레아블부터 현재의 멤버십 전용 공간 "아그레 라운지"를 만들기까지 꾸준히 회원이 증가하여 4년간 총 6번의 이사를 하게 되었다. 모임이 팽창함에 따라 더 이상 필자의 취미활동으로 남겨둘 수 없게 되어, 전업으로 진행할 필요성이 생겼다. 현재 독서모임 회원이자 필자의 아내인 정은지가 독서모임 법인을 별도 분리하여 운영하게 되었으며 이후 월 참석자 1,000명 규모로 성장하였다.


그것과 별개로 필자는 2015년 독서모임 회원들과 함께 버티컬 커머스를 주요 사업으로 하는 회사 "윙잇" (wingeat.com)을 창업하였다. 독서모임이 시작된 지 2년이 흐른 뒤, 임시 사무실로 쓰기 위해 카페 "아그레아블"을 다시 찾아 커머스 사업을 시작하게 된다.


이후에도 도전을 멈추지 않고 꾸준히 사람들에게 설렘을 줄 수 있는 브랜드들을 구상하고 있다.


[아그레아블 독서모임]

https://agreablebook.com

https://www.instagram.com/agreable.bookcl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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