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야, 너는 너로 살아라〉
육育 아我!兒!芽!峨!娥!哦!
지선
나는
자라며
꿈을 묻는 눈빛을
본 적이 없었다
내 이름을 불러준 이는
있었지만,
내 가능성을
지켜본 이는 없었다
그저 하루를 살아내는 법
남에게 폐 끼치지 않는 법
조용히 크는 법만
배웠다
그 시절엔
살아남는 것이 꿈이었고
가능성보다
순응의 표정을 더 사랑했다
내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은 있었지만
그 이름 안에 담긴
뜻과 빛을
지켜봐준 사람은 없었다
그래던 내가
너를 품고서야
비로소
나를 품게 되었다
너의 손을 붙잡고
걷던 첫 걸음,
거기서부터
나의 마음 깊은 곳
다시 길러짐이 시작했다
육아란
아이를 키우는 일인 줄만 알았는데
그건 곧
내 안의 '나 (我 아)'를 다시 키우는 일이었다
너는 '아이 (兒 아)'
나는 엄마.
그 이름으로 우리는
하나의 시간 속에서 함께 자랐지
싹 (芽 아)
작지만 틀림 없이 움트는 힘
높을 (峨 아)
삶의 무게를 딛고
무너졌던 나를
너와 함께 다시 높아지는 뜻
삶을 향해 올라서는 결심
예쁠 (娥 아)
존재 자체로 고운 결로 피어난다
그리고 매일
삶을 읊조리는(哦 아) 소리가 진동으로
우리 하루를 써내려간다
엄마가 네가 매일 불러내는
삶을 기억하는 소리 없는 시가 된다
育 兒
아이를 기르며
나는 내가 누구였는지를
하나씩 다시 꺼내 들었다
育 我
그건 잃어버린 나를
되찾는 일이 아니라,
처음부터 있었던 나에게
조용히 돌아가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아이게게 꿈을 묻는다
나는 아이의 심장아래
가능성이 피어나는 생장선을 본다
꿈은
가능성과 약속을 동시에 낳는다
너와 나의 하루는
조용히 작은 우주가 되고
그 우주는
매일매일 스스로를 기르며
이미 꿈은 이루어졌다.
꿈꾸는 삶은
저를 이런저런 모습으로 존재를 드러내게 이끕니다.
엄마로, 딸로, 한때 아이였던 어른으로,
그리고 여전히 길러지고 있는 한 사람으로.
저는 부모님처럼 살고 싶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그 시절의 저는 부모님이 꿈도 없었다고 생각습니다.
하지만 그건
꿈이 없었던 삶이 아니라
접어둘 수밖에 없었던 삶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접어두는 법을 먼저 배웠고
제 자신을 잊는 삶을 살아 왔습니다.
삶은....
대물림됩니다.
부모의 삶이 아이의 내일이 되는 순간,
제가 물어야 하는건
“어떻게 성공했나요?”가 아니라
“그런 삶 속에서도 무엇을 포기하지 않았나요?”입니다.
사는 힘은 잘 사는 방법이 아니라
무너지지 않으면서 나로 남아 있는 능력입니다.그 힘은 설명으로 전해지지 않습니다.
부모가 어떤 선택을 반복해왔는지,
어떤 태도로 하루를 통과했는지가
그대로 남아 전해집니다.
그래서 저는
부모의 말을 따르지 않아도
부모의 삶을 보게 됩니다.
제 아이 역시 제 삶을 보고 있습니다.
조언은 잊혀지지만
존재는 기억됩니다.
이 낭독극은
엄마를 이해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나 자신의 삶을 다시 선택하게 만드는 정신입니다.
말하지 못한 꿈과
묻지 못한 가능성 사이에서도
사람을 다시 움직이게 하는 것은
감정이 아니라 결단과 반복입니다.
이 낭독극은
잘 살아낸 엄마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성공담이 아니라
삶을 통과하며 정신이 태도가 된 편지입니다.
부모의 삶이
아이의 내일이 되는 순간,
정신은 설명이 아니라
편지처럼 건네집니다.
—
〈아이야, 너는 너로 살아라〉
MZ에게 전하는 엄마의 편지극
편지를 쓰는 엄마로,
그 편지를 받아
살아갈 아이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자녀에게 대물림되어야 마땅한 정신을 편지로 써내려갈 부모들을 초대합니다!
엄마의 삶을 통해 '사는 힘'을 건네받고 싶은 모든 MZ자녀들을 초대합니다!
브런치 작가들과 함께하는 < 아이야 > 편지극 참석 신청서
공연관람 및 [엄마의 유산] 참여를 원하시는 분들은 아래에 신청바랍니다!
https://docs.google.com/forms/d/e/1FAIpQLSc3Z4R2VoCVZjnu1j7FOnxVFrJ1a5LaNKu4G7H4Q3GRHTvBsQ/viewfor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