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껏 썼고, 계산하지 않았다.2

댓가

by 지선

정신의 유산, 김주원 작가로부터 시작된 불씨,

그 정신의 계승이 내 안에서 멈추지 않은 지금,

정신을 남기기 위한 준비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

유산을 전하고자 한다면 내것이여야 했다.



돌이켜보면

엄마는 포기가 많았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말했어.
“왜 안 잡았어?”
“조금만 더 버텨보지 그랬어.”


확장하지 못한 자리,
중도에 멈춘 선택,
살리지 못한 가능성.

그래서 한동안 엄마조차도 스스로에게 말했다.
“뻘짓했네.”

그러나 곰곰이 들여다보니
그건 단순한 실패의 언어가 아니라는 해석을 할 수 있었단다.


기회가 나를 원했는지가 아니라,

내가 그 기회를 감당할 수 있었는지...

내가 기회를 감당할 힘이 아직 없다면

그 기회는 엄마를 원한 것이 아니라
엄마가 치를 수 있는 댓가를 먼저 묻는다는거야.


아이야

기회는 빛으로 오지만
그 빛을 붙잡으려면 그 안에는 조건이 있더구나.

시간을, 에너지를, 관계를, 내어놓으라 하고

정체성을 유보하라 한다.
엄마가 말하는 정체성의 유보는

일시적인 상태를 이야기 하는거야.

더 큰 나를 위한 감당일 때는 댓가가 되고,

나를 지우는 방식일 때는 침식당한 손실이 되지.


에머슨의 보상론에서는

모든 교환은 균형을 이룬다고 했어.


엄마가 기회라 불른 과거의 많은 그 기회 중에
내 존재를 원한 것이 아니라
엄마의 노동력만을 원한 자리도 있었어.


엄마는 그 자리가
빛나는 자리라는 걸 알았지.

하지만 그 자리는
내 이름보다 직함을 더 크게 부를 것이고
내 시간을 전부 남의 일정으로 채우길 요구할 것이고
내가 지키고 싶던 하루의 리듬을 바꾸라 할 거라는 걸

엄마는 무의식적으로 계산했나봐.

이 자리를 잡으면
무엇을 잠시 내려놓아야 할까.

그리고 아마도 그 가격이,
그때의 엄마에게는 너무 컸던 것 같다.

그래서 잡지 않았지.

아니, 지불하지 않았다.

기회를 놓친 게 아니라
그 자리가 요구한 삶의 방식에 서명하지 않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모든 포기가 두려움의 포장지는 아닐까하는

의심을 지울수가 없구나.

그렇게 엄마는 무지의 젊은날이였다.


그리고 그 무지조차 값을 남겼다.

그 대신 엄마는 다른 비용을 내고있단걸 알았거든.

조금 느리게 가는 시간,
아쉬움을 안고 사는 마음,
“왜 그걸 안 했어?”라는 질문을 오래 듣는 비용.

우리는 선택한 것의 댓가만 치르는 게 아니라
선택하지 않은 것의 비용도 함께 안고 가.

그러니 그 시절의 엄마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다른 경로의 성장을 택한 것이었다.


이제 질문은 달라져.

많은 기회 중

그때 지키고자 했던 것은 지금도 유효한 가치인가.

만약 그렇다면
그건 실패가 아니라 균형이었다.

만약 아니라면
이제는 다른 가격표를 붙일 때가 된 것이다.


기회는 언제나 댓가를 동반한단다.
문제는 성공했는가가 아니라
나는 무엇을 지불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엄마의 '뻘짓햇네 ~ '

이 말은, 보상이 없어서가 아니라

보상이 내가 기대한 모양이 아니어서 느끼는 감정의 말이었던거야.


공짜 확장은 없지.

무언가를 키우려면

집중력, 관계, 에너지 등등 어딘가는 재조정되는게 법칙이야.


이걸 '잃음'으로 볼지

'재배치'로 볼지의 차이다.


엄마가 그때 그 시간을 붙잡았다면

엄마는 지금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을까

그때는 에머슨의 보상론도 우주의법칙도 몰랐기에

두려웠다.

모든게 손실처럼만 느껴지던 때였지.


성장은 플러스만 더해지는 일이 아닌거지.

어떤 확장은 다른 축을 줄이며 일어나.


'나에게 손해였을까.

값비싼 수업료였을까.'


에머슨은 말한다.
보상은 행동 뒤에 따라오는 것이 아니라
행동 그 자체에 이미 포함되어 있다고.

아직 균형이 다 드러나지 않았거나
내가 보고 있는 시간이 너무 짧거나
내가 기대한 보상의 정의가
지나치게 협소했을 뿐이다.


아이야.

엄마는 더 이상
가격을 계산하는 사람이 아니길 바란다.

엄마는
그 어떤 가격을 지불해도 남는 사람이 될 것이다.

엄마는

지금의 균형을 지키는 사람이 아니라
더 큰 균형을 만들 사람이다.

엄마는
존재를 지키는 데서 멈추지 않고
존재를 키울 것이다.


엄마는 성현의 가르침 속에서 ‘댓가’라는 말을 다시 배우고 있어.

댓가는 단순한 인과의 결과가 아니고, 두려움의 언어도 아니야.

삶은 공짜 확장을 허락하지 않지만,

지불한 만큼 반드시 남긴다.

삶은 늘 값을 요구하고
우리는 언제나 어떤 형태로든 지불하며 살아간다는 것을.

엄마의 경험과 인생에서 건져 올리고 싶은

우주의 법칙을 함께 탐구해 주어 고맙다.


우리는 무엇을 선택하든

그 선택의 값을 통해 더 단단해질 것이다.

사랑한다. 아이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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