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껏 쓴 줄 알았지만, 이미 계산되고 있었다.

댓가 3

by 지선


아이야. 너희는 이제 8년, 7년을 살아왔고

엄마는 38년을 살아오며

그 시간만큼의 선택을 지나왔다.


그 선택이 쌓여

지금의 모습을 만들었다는 걸 마주할 때면,

엄마는 한없이 탓하곤 했어.

나 자신뿐 아니라, 애먼 사람들까지.

그게 무엇인지 모른채, 견디기 힘이 들었거든.

돌아보니, 엄마가 탓하고 있었던건

스스로 선택해온 시간들이었더라.


그래서 이제는

조금 다른 눈으로 보려 한다.


술을 마시면 뇌세포가 죽는다는 식의
눈에 보이는 인과나,

투자한 만큼 얻는다는 계산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삶을 살아내고 있거든.


그건
많이 아픈 일이야.


좋을 때는 보이지 않다가

힘들 때,
우리가 역경이라고 부르는 시기에

비로소
삶이 어떻게 흘러왔는지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결과가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쌓여온
나의 선택과 살아온 방식이

한순간에 겉으로 드러난 장면일 뿐이란다.

그래서
누군가를 탓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나를 쉽게 몰아붙일 일도 아니야.

그저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지금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 뿐이니까.

그래서 그것이 나중에 생겨난 것 처럼 느껴졌을 뿐이란 거야.


아이야.

선택을 하는 순간부터,

하나를 잡아

다른 하나는 놓고 있는 거라는 거지.


그래서

댓가는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인식의 문제인거야.

댓가는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드러나는 것이란다.


댓가라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나중의 결과가 아니라

지금의 삶을 보고 있는 거란다.


너희가 스스로 세상을 탐험하길 바라는 시기가 오고,

엄마는 멀리 떠나는 대신
우리가 사는 지역에서 할 수 있는 모험의 시간을 보내기로 했어.

그렇게 지내다 보니
돈도 남고, 시간도 남았다.

그때 엄마는 그걸 결과라고 생각했어.


엄마는 너희에게 경험을 주고 싶었고

그러나 멀리 여행을 가진 않았지.

처음엔 무엇인가를 놓치고 있다고 느꼈어.

해외여행 한번 못시켜준것을 비교하게 되었고

탓하게 되었고...


그런데 엄마는
돈을 아끼려고
시간을 아끼려고

그렇게 살았던 건 아니란다.

물론, 그런 마음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였어.


그때의 엄마는
그 선택이 무엇을 만들어내고 있는지도
잘 알지 못했거든.

다만 그렇게 살고 있었을 뿐인데,


돌아보니
이미 다른 삶을 함께 만들어지 있었던 거였어.


대신 자연을 가까이하며 살았고,

몸을 움직이며 지냈고,
그렇게 살아가는 동안
다른 것들이 채워지고 있었단다.


그때는 몰랐지만,

그건 나중에 생긴 게 아니라
이미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던 거였어.


돌아보니
돈과 시간, 건강 같은 것들은

눈에 보이게 드러난 것이었고,

엄마의 선택들은
이미 엄마의 삶의 방향을
만들어가고 있었던 거지.


해외를 가지 않았다면

그만큼의 직접경험은 없는 것이고.

다양한 문화를 가까이 두지 않았다면

그만큼의 확장은 일어나지 않는다.


나의 가치관을 살린다는 건

동시에 무언가를 포기하는 일이었단다.


하나를 택했으면, 하나는 내어준 것이다.


아이야.

아빠와 다투지 않으려는 선택 속에서

평온함을 지키며 살았고,

그만큼 서로의 깊이를 마주할 시간도

함께 흘려보내고 있었지.


엄마는

내 감정만을 끌어안고 살다가,

결국
그 감정이 만들어낸 두려움 안에서
용기를 내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었단다.


피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선택들이

다른 방식으로 이미 포기하고 있었던 거였어.


그러니
여기엔 후회는 없다.

이미 그렇게 살아온 선택이니까.

하지만
그 선택이 무엇을 만들어냈는지는
끝까지 보아야 하더구나.


아이야.

삶은

좋은일을 하면 좋은 것을

나쁜일을 하면 나쁜 것을 얻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
나중에 댓가를 치르는 구조가 아니더구나.


얻음에는 함께 빠져나간 몫이 있다.

그게 댓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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