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듯 농사도 마찬가지다
매년 생각처럼 되지 않는 농사일을 통해
삶을 의연하게 대할 수 있는 자세를 배워요.
봄바람과 함께 잡초들이 제 영토에 지뢰를 설치하고, 해충들이 집을 공격하기 시작하면 여름이 다가와요. 땀 흘려 모은 식량을 약탈하는 새들로부터 집을 지켜내고 날씨라는 천덕꾸러기 장난에 장단을 잘 맞추어야만 평화로운 겨울을 보낼 수 있어요.
서울에서 나고 자라 농사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혀 없었던 저는 땅에 농작물을 심으면 알아서 잘 자라는 줄 알았어요. 그래서 첫 해부터 농작물을 잘 키울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어요. 영상이나 글로 수집한 농사 데이터를 기반으로 판단했을 때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왜냐하면 영상 속 농부들의 밭에는 두둑한 고랑에 풍성한 농작물들이 자리 잡고 있었거든요. 그런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연습 삼아 농사를 지어 보겠다고 300평 정도 되는 땅을 1년 동안 임대를 했었어요. 포클레인으로 막 정비를 끝낸 산 중턱에 있는 땅이었는데요. 실제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은 100평 남짓했지만 제가 농사 연습에는 충분한 땅이었죠.
농사 연습을 하기 위해 밭에 이랑과 고랑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야 했어요. 하지만 가지고 있는 농기계라고는 호미나 삽 종류 밖에 없었어요. 100평을 위해 비싼 돈을 주고 트랙터를 빌려 올 수도 없었고요. 아는 사람이 없어서 이랑 고랑을 만들 수 있는 소형 농기계인 관리기를 빌릴 수 있는 곳도 없었어요. 그래서 몸으로 때워보겠다는 마음으로 호기롭게 삽을 들고 밭으로 갔어요. 하루 종일 죽어라 삽질을 하면 혼자서 100평 정도는 일주일 안에 이랑과 고랑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미쳤었죠.
밭에 나가기 시작한 첫 째날 삽질을 하는데 삽이 생각처럼 땅에 꽂히지 않았어요. 삽이 계속 돌에 부딪히더라고요. 그래서 첫날에는 이랑 만들기를 포기하고 밭에 있는 큰 돌들을 골라내는 작업을 했어요. 그리고 다음날 다시 밭에 나가서 이랑과 고랑을 만들려고 했는데요. 아침부터 일어나기가 너무 힘든 거예요. 그래도 무거운 몸을 꾸역꾸역 이끌고 밭에 나가긴 했는데 삽질이 너무 버겁게 느껴졌어요. 평소에 하지 않았던 육체노동을 과하게 한 바로 다음날 삽질을 하려니 그게 잘 됐었겠어요. 삽집을 1시간을 하면 1시간은 돗자리에 누워서 쉬어야 다시 삽질을 할 수 있었어요.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고 난 뒤부터는 저와 타협을 하기 시작했어요. 예를 들어 아침에 밭으로 나가면서 오늘은 50평 정도만 이랑과 고랑을 만들어야지 하고 다짐을 했다면요. 점심쯤부터 반의 반의 반만 해도 충분하지 않을까 하며 오늘의 목표 범위를 점점 좁혀나갔죠. 그렇게 저는 농사 지을 밭이 아닌 텃밭을 만들었어요!
첫 해 연습 삼아 시작한 땅에서 농사의 어려움과 실패를 맛보았지만 포기하지 않았어요. 땅에 돈과 시간을 지속적으로 투자해야지만 농사로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거든요. 그래서 2-3년 동안 온전히 밭을 관리하는데 시간을 쏟았어요. 그 사이 한방재료를 키워보겠다고 심은 벌나무도 잡초에 잡아먹히게도 해봤고요. 의도치 않게 잡초 밭을 만들어 작은 동물들과 곤충들의 서식지를 만들어 보기도 했어요. 그래도 3년 정도 밭에 정성을 쏟았더니 지금은 꽤 농장 같은 밭이 만들어졌어요. 작년에 지은 땅콩으로 처음 수익을 만들어보기도 했고요. 몇 년 동안 맨땅에 헤딩하면서 저에게는 농사에 재능도 능력도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였어요. 농사는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항상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고요.
하지만 매년 농사는 승부욕을 불타오르게 해요. 수확의 기쁨은 일 년 동안 저를 괴롭혔던 잡초, 벌레, 날씨 등의 잦은 사건들이 잊힐 만큼 크거든요. 단순히 수확량이 늘어나고 농작물의 상태가 좋아서 느끼는 기쁨의 감정은 아니에요. 1년 동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도했던 여러 가지 시행착오의 결과물이기 때문에 성취감이 더해진 뿌듯함을 느끼는 거예요. 올해 제초제를 뿌리는 시기를 잘 잡았구나, 내 밭에는 이 영양제가 효과적이구나 등을 스스로 터득하는 거죠. 그렇게 매년 새로운 전략을 세워 내년도 농사를 계획해요. 틈틈이 동네 사람들을 만나며 농사 정보를 수집하기도 하고요. 동네의 기후와 토양은 비교적 농사 환경이 비슷하기 때문에 주변 농장의 성공담과 실패담을 통해 배울 점이 많거든요.
그렇게 저는 농사를 지으면서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깨닫고 있어요. 서울에서 살 때는 버스를 타고 창 밖을 바라보며 사색을 즐겼다면 시골에서는 밭에서 일을 하면서 사색하는 시간을 갖거든요. 살면서 온 열정을 쏟아부어도 방법이 잘못돼서 원하는 결과물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요. 욕심이 과해 화를 부를 때도 있고요. 농사도 마찬가지예요. 욕심을 조금만 내려놓고 지낸다면 자연을 즐기며 평화롭게 살 수 있어요. 그래서 저는 돈을 목적으로 귀농귀촌을 고려하는 사람들에게 시골의 삶을 추천하지 않아요. 그저 건강한 음식들을 먹으며 평화롭게 심심함을 즐기며 살고 싶은 분들께만 귀농귀촌을 권해드려요. 짧은 인생 속에 무엇을 추구하고 사느냐를 결정하는 것이죠. 저는 자유로움이 주는 평화로운 삶을 선택했을 뿐이에요. 여러분은 인생에서 어떤 가치를 두고 살고 계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