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주도적으로 삶아가는 이야기, 시-작!
일정을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자유로움은
돈에 대한 욕심을 떨쳐버릴 만큼의
만족감을 줘요.
아무런 연고도 없이 강원도 영월로 내려와 살기 시작한 지 5년째가 되었어요. 서울에서 시골로 내려올 때, 전공을 살려 건강식품 사업을 해보겠다는 거창한 꿈을 안고 왔지만 실패했어요. 호기롭게 시작했던 첫 사업이 남겨준 것은 수많은 교훈과 새로운 방향성뿐이었어요. 하지만 대학생 창업으로 시작했던 25살부터 30살이 된 지금까지 혹독한 사회에 벌거벗겨진 채 뒹굴었던 경험은 제 곳곳에 차곡차곡 쌓여있어요. 무언가를 다시 시작하고 금세 성장할 준비가 되어있죠. 아직 서른밖에 안 됐잖아요.
그래서 올해 농촌에서 할 수 있는 일들로 새로운 도전을 해봤어요. 콩 농사도 짓고 영월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직접 가공해 판매하기로 했죠. 지역의 농산물 가공센터에서 직접 땅콩버터, 토종 다래 잼, 방울토마토 잼 등을 만들어 도시로 판매하러 다녔어요. 과천 경마공원에서 열리는 농산물 직거래 장터부터 부산, 수원 등에서 열리는 식품 박람회까지요. 제가 장사를 할 수 있도록 받아주는 곳은 어디든 참여했어요.
월요일, 목요일, 금요일에는 농산물 가공센터에서 제품을 만들고 화요일, 수요일, 토요일, 일요일에는 장사를 나가거나 밭을 틈틈이 살폈죠. 일주일 내내 쉬지 않고 8개월을 달렸어요. 그러다가 수확시기인 10월부터는 도저히 시간적으로나 체력적으로 여유가 생기지 않았어요. 그래서 매주 나가던 장터에 더 이상 나가기 못하게 되었고 농사에 몰두해야만 했지요. 잠깐만 미친 듯이 바쁘면 되니까 그걸 위안으로 삼으면서 하루하루를 흘려보냈어요. 참 열심히 살죠!
아직까지는 굶지 않을 정도로만 돈을 벌며 열심히 살고 있어요. 시골에서도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방법들이 있겠지만 아직 저는 그 방법을 깨닫지 못했거든요. 적성에 맞으며 경제적 자유를 얻은 수 있는 방법을 말이죠.
그래도 사업에 실패하고 서울로 올라가지 않고 시골에 남겠다고 결심한 가장 큰 이유는 자유롭게 사는 것이 주는 행복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크기 때문이에요. 병원이나 은행을 가고 싶을 때 갈 수 있고, 여유로운 평일에 놀러 가고 싶었던 곳을 다녀올 수도 있어요. 그때그때 해야만 하는 농사일이 있지만 시간을 유동적으로 사용할 수 있으니까요. 큰돈을 벌지 못해도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 없이 삶을 주체적으로 이끌 수 있겠더라고요. 지천에 깔린 풀들이 모두 먹을 것들이니까요. 일단 먹고사는 고민은 없어요. 오히려 풀을 뜯어 먹고 사는 일에서 만족감을 느끼죠. 건강해졌거든요.
제가 25살 때 창업 준비를 하면서 고지혈증이라는 지병을 얻었어요. 창업을 시작하면서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매 끼니를 밖에서 해결하다 보니 건강이 안 좋아졌었는데요. 어느 날 건강검진을 해보니 고지혈증이라고 하더라고요. 2년 만에 담낭 벽이 두꺼워지기도 했고요. 그래서 의사 선생님께서 진료의뢰서를 써줄 테니 대학 병원으로 가보라고 하셨어요. 살집이 많지 않은 젊은 여성에게 고지혈증이 생긴 원인이 갑상선이나 담낭의 문제일 수 있다면서요.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어요. 건강관리에 자신이 있었는데 말이죠.
다행히 갑상선과 담낭에 큰 문제가 있지는 않았어요. 다만 고지혈증은 고칠 수가 없었어요. 유전적인 결함이 생겼다고 하더라고요. 그래도 대학 병원 교수님께서 젊으니까 약을 끊을 수 있게 노력해 보자고 하셔서 3년 정도 운동도 하고 약도 줄여보고 했는데 결국 실패했어요. 그렇게 5년 동안 대학 병원을 다니며 고지혈증 약을 10/10mg 함량으로 매일 복용했어요. 약물 치료에 대한 부작용은 25살부터 평생 약물에 의존해야 한다는 사실이 불안했어요. 그러던 작년부터 직접 농사를 지은 농산물로 음식을 만들어 먹기 시작했는데요. 건강한 음식을 먹으니 몸에 큰 변화가 생겼어요. 1년 만에 고지혈증 약의 복용량을 10/2.5mg으로 줄였거든요. 결국 먹는 것으로 건강을 지킬 수 있다는 제 철학이 옳음을 스스로 증명하게 되었어요.
영월에 와서 친해진 스님이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었어요. '건강에 좋은 걸 찾아 먹을 생각을 하지 말고, 건강에 나쁜 음식을 멀리해라'라고요. 도시에 살면서 운동을 하고 건강하게 먹겠다고 노력을 했는데도 개선이 되지 않았었어요. 주말에 친구들과 약속이 있으면 집 밖에서 음식을 사 먹고, 일이 늦게 끝나거나 외부 일정이 있으면 불규칙적으로 식사를 할 수밖에 없었거든요. 원래도 짜고 달고 하는 음식을 즐기지 않았음에도 자극적인 음식들로 주변이 가득 차 있었죠.
하지만 시골은 배달음식을 자주 시켜 먹을 수 있는 환경도 아니고 자극적이지 않은 음식을 제공하는 식당도 상대적으로 많아요. 무엇보다 농사를 짓는데 적응을 해나가면서 자급자족 생활이 가능해졌어요. 대부분의 식사를 집에서 해결할 수 있었죠. 그 뒤로는 몸이 점점 좋아지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객관적으로 증명도 했고요.
그래서 저는 시골에서 건강하고 자유롭게 살기로 결심하게 되었어요. 지금은 영월에서 즐겁게 먹고살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있고요. 그중 하나로 직접 키운 농산물을 도시 사람들에게 맛 보여 드릴 수 있는 보부상이 되는 거였어요. 시골에서 제가 느낀 행복은 자연과 함께하는 자유로운 삶에서 오는 것이었거든요. 그 경험을 농촌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도시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전달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며 시골에서 성장해 나가는 서울여자의 과정을 담아보려고 해요. 앞으로 제가 삶을 직접 기획하고 실행해 나가는 과정을 지켜봐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