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를 이해하는 소비자
스위스 사람들은 손톱만 한 양파도 사 먹어요.
매주 토요일마다 동네 주민들을 대상으로 농산물을 파는 스위스 농장에 도와주러 간 적이 있었어요. 그 주에 판매할 감자, 양파, 브로콜리 등 채소를 수확하기 위해 밭으로 갔는데, 가뭄으로 인해 땅이 마르다 못해 쩍쩍 갈라져 있는 거 있죠. 그런데 그 속에서 손톤만 한 양파를 캐내더라고요. 상품성이 떨어지지만 스위스 사람들은 여름에 거의 비가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 손톱만 한 양파도 구매한다고 해요. 실제로 팔리기도 했고요. 그 이후로 식료품점에 갈 때마다 양파를 찾아봤는데 대형마트에서도 큰 양파를 찾기가 쉽지 않았어요. 스위스에서 생산된 양파일수록 크기가 큰 양파는 거의 찾아볼 수 없어요.
농장에서는 가뭄으로 인해 농작물이 타들어 가도 밭에 주기적으로 물을 주지는 않는다고 해요. 이 농장뿐만 아니라 근처에 호수나 강이 있는 농장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농장들이 웬만하면 물을 주지 않는다고 해요. 그 이유는 바로 물 값이 너무 비싸기 때문이에요. 그렇기에 밭에 충분한 양의 물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자연수를 활용해야 해요. 하지만 정기적으로 물을 길어와 사용하는 비용을 농장이 감당하기는 어려워요. 그래서 땅이 쩍쩍 갈라져 있어도 물을 주지 못하고 비가 오기만을 기다리더라고요.
제가 스위스에서 2번째로 큰 규모의 새싹채소 농장에 방문을 했었는데요. 그곳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요소가 바로 물이었어요. 새싹채소는 성장한 채소들보다 비교적 더 많은 수분을 필요로 해요. 그러다 보니 콩나물이나 숙주나물과 같이 수분을 2배 이상 필요로 하는 식물은 스위스에서 재배할 수 없어요. 이 농장에서 재배하는 약 74종의 새싹은 상대적으로 수분을 덜 필요로 하는 작물들이에요. 이 새싹채소들도 가능한 최소한의 물을 사용하는 방법을 찾아 키우고요. 어쩌면 스위스에서 농사를 짓는 데 있어서 경제적으로 가장 중요한 요인이 물일지도 모르겠네요.
유럽이 기후변화 대응에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만큼 스위스 사람들도 기후변화의 위험성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있는 편이에요. 주변을 조금만 살펴봐도 기후변화로 인해 바뀌고 있는 자연환경이 눈에 보여서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스위스의 들판은 작년까지만 해도 여름에 노란빛을 띠었거든요. 그런데 올해는 다행히도 비가 비교적 많이 내려서 풀들이 초록빛을 띤다고 해요. 이렇게 기후변화가 미치는 영향을 실제로 목격할 수 있어요. 그렇다 보니 농업과 관련이 없는 사람들조차도 비가 오기만을 바라요. 그만큼 소비자들이 농산물을 생산하는 일이 어렵다는 걸 이해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죠.
이러한 기후변화에 대한 인식과 관심은 스위스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확산되어야 해요. 우리나라 역시 2050 탄소중립 정책을 시작으로 곳곳에서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쉽지는 않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의 작은 노력들이 모여 문화를 형성한다면 기후변화가 우리의 삶에 밀착될 수 있다고 믿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