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도시미관이 구린 이유

#초민감자 #한국미관 #조형물

by 돌만두





세금도 파괴하고 내 정신도 파괴함




나는 미각이 둔하다. 고수도 샐러드처럼 퍼먹는다. 미각이 예민한 주위 사람들을 보면, 둔한 감각은 여러가지 장점을 가지는 것 같다. 새로운 자극에 거부감이 덜하기 때문에 적응하기가 쉽고, 취향의 양극단이 차지하는 영역이 적어 불호에 대한 데미지를 미리 상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머지 감각은 저주에 가까울 정도로 예민하다. 옷에 있는 택은 전부 발라내야 하고, 얼굴에 머리카락이 닿는 걸 극도로 혐오한다. 또한 과한 소리를 들으면 반드시 몸 어딘가에 통증이 온다. 특히나 길가에서 똘추같은 조형물을 봤을 때는 화가 치밀어 오르곤 한다. 온 세상의 못생김이 내 인생을 공격하고 있었다.





제발! (출처: 더팩트 이선화 기자)



도시 미관의 생태를 납득하려면, 긴 역사에 걸쳐져 있는 도시의 아픔을 이해해야 했다. 하지만 먹고살기도 힘든데 뭔가를 더 이해하기에는 너무 많은 품이 들었다. 생각이 많으면 우울해진다는 말을 하려던 것이다.


정말 환장할 것은, 내 예민함은 기질이고, 거기서 나의 독립적이고 배타적인 기준이 만들어졌으며, 심지어 통제광적인 성격임을 알아차렸을 때쯤, 드디어 '나에겐 어떤 문제가 있다'라고 생각했다. 이건 살아있는 한 뒤집을 수 없는 것이고, 앞으로도 이 상태로 목숨을 부지해야 하는데, 내가 살고 있는 이 나라가 내 심기를 거스르면 난 어디로 대피해야 하는가?


나는 그래도 적응하고자 했다. 새벽 4시까지 야근을 하고, 바라고 바라던 퇴사를 해서는 그냥 맛있는 거나 줄 서서 먹고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지만 조금 귀여운 물건 같은 걸 샀다. 그러다 이렇게 사는 게 맞는지 아닌지에 대한 생각이 임계치에 다다랐을 때 방을 빼고 외국으로 갔다.




길에 쓰레기통을 설치하면 집에서 나온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길거리의 쓰레기통을 죄다 없애버리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출처 : 디지털광진)





다른 나라에서 짧게 먹고살아본 경험은 내가 토종 돌연변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계기가 되었다. 기괴한 센스의 조형물, 유사성매매업소 간판, 전단지, 핸드폰 매장에서 흘러나오는 끔찍한 음질과 호러블한 볼륨의 발라드… 내 감각을 자극하는 모든 게 하나도 없는 도시. 좋은 공기, 무성한 이파리와 풍경, 정갈한 도시정비, 몰카로부터 안전하고, 걷는 사람에게 경적을 울리지 않는 정상적인 길거리를 걸어본 경험은 내게 아주 유의미했다. 부재는 존재를 증명하고야 말았다. 고통의 원인은 알레르기였다. 아… 평평한 보도의 노면은 너무 달콤했다.. 결국 한국에서 겪은 문제들과 내가 하나 되지 않기 위해 고통의 타자화는 도피의 형태로 작동했다.





해외여행을 통해 한국적 엘리먼트에서 해방되고자 함 (출처 : https://cdn.pgr21.com/humor/266309)




하지만 부모님은 한국처럼 안전하고 좋은 곳이 어디 있냐며 나의 이민을 반대했고 내 유튜브 알고리즘은 ‘도망친 곳에 천국은~’과 같은 썸네일로 가득 찼다. 격노가 좌절로 사그라들었다. 동시에 나는 스스로 능력이 부족한 점, 그러면서 노력하지 않는 점, 그러면서 회복탄력성도 낮고 긍정적으로 바라보려고 조차도 않은 점… 갖가지 이유를 들어 나는 스스로에게 정내미를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만족할 수 없다면 죽음을 달라는 게 아니다




그래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며 많은 것을 회피하기 시작했고 한국인으로서의 기능과 사회적 기능 둘 다 서서히 잃어가기 시작했다. 고기를 김치와 쌈 싸 먹지 않고… 맛집을 웨이팅 하지 않고… 영화관에서 데이트하지 않고… 심지어 매일 주어지는 야근에 거부감을 표출하기까지… 출근시간의 지하철을 타기 싫어서 정규직으로 멀쩡히 근무하던 직장도 그만두었다. 아까 언급했듯이 나는 이 모든 문제가 나 자신에게서 발생했음을 인정한다. 외부환경 탓을 하기엔 너무 오래 발붙이고 살고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2억짜리 프로포즈존 (출처 : 군포시청)




그렇다. 나는 나의 고향을 견디지 못하고 정신병에 걸렸다. 모든 문제는 내가 다양한 경험을 통해 시야를 넓힌 것에 책임이 있다. 내가 가진 스트레스의 원인을 궁극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만큼의 지능과 자본, 둘 중 어느 것도 충분하지 못하면서 감히 좋은 곳에 가서 세련된 것을 향유한 죄다.






하지만 서울은 공원보다 주차장이 더 급하다






내가 아프다는 사실을 깨닫고 보니 병든 도시가 보였다. 나만 급한 줄 알았는데 밖은 더 급했다. 나뿐만이 아니라 이 나라 전체가 산업화를 기반으로 도약을 위한 똥꼬쇼를 해야 했다. 그렇게 항상 급박하게 굴러갔던 도시운영은 가성비식 증축, 녹지 부족, 무질서한 개발, 공간의 방치, 교통혼잡, 쓰레기 문제 등을 불러왔다. 그런데 도시 본인이야말로 추하고 싶어서 추한 것은 아닐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 인간이 문제고 도시는 죄가 없다.




일단 먹고 살아야 한다




'먹고살기 바쁨'이라는 문제는 끈질기도록 미관의 문제를 재구조화했다. 최소한의 기능은 미적 기준의 전부로 여겨졌다. 뭔가 빨리 지어서 뭔갈 벌어먹어야 했기 때문이다. 상업지구에 대한 디자인 가이드라인이 오래도록 부재했다. 이러한 흐름은 단순히 도심의 미관 문제로 끝나지 않았다. 자원이 없는 나라에서 상업시설과 인적 자원은 무제한으로 팽창했다. 그래서 '돈 버는 중'과 '쉬는 중'을 나타내는 공간의 경계는 흐려졌다. 주거지역은 높이제한을 제외한 건축적 통합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는 곧 주거지와 상업지구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들었다. 규모와 밀도는 있지만 구분이 없기에 조화도 불가능했다. 돈을 버는 곳이 곧 집이 된다. 그 결과로 전 세계가 주목하는 기이한 혼재를 만들어냈다. 학생들은 학교가 아닌 학원에 머무르게 되었고, 아파트는 이제 더 이상 주거시설로이 아닌 투자가치이자 계층이동의 수단으로 변모했다.





개성의 몰개성화 현상 (출처 : 경기복지뉴스 권연순 기자)




행복한 가정을 보면 대부분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을 보면 그 이유가 제각각인 것과 같이, 아름다운 것들은 대체로 비슷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역사를 간직했거나, 잘 보전되었거나, 단정히 정돈되었거나 주변과 조화롭다. 그리고 이것이 ‘유행과 부합하는지’와는 별개라는 사실을 높은 직급의 결정권자들이 알길 바란다. 더불어 못생김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고 그 한계가 없다는 사실 또한 일러주고 싶다.





녹지가 멸종하고 여가가 증발한 사회에서 필요한 것은 어떤 ‘없음’과 침묵이 아닐까 (출처 : 투데이안 엄범희 기자)




이에 대한 해답으로 나는 그냥 당분간 뭔가를 안 만드는 것을 제안한다. 그냥 없기를 소망한다. 없지 못하면 없애기라도 하던가, 애초에 안 만드는 선택지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여백의 미는 여백 자체를 존중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여백을 만드는 비용, 혹은 공간의 여백 자체를 낭비라고 생각하면 '미'는 있을 수가 없다.










덧붙이자면, 한국 특유의 미관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심기를 거스를 마음은 없다. 곳곳에 한국의 상징으로써 존재하는 유형문화재를 미적으로 구리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 혼란스러운 도시의 정체성은 보여지는대로 진짜 '혼란스러움' 일까? 그 혼란스러움을 어디까지 존중해야 할까? 정비의 필요성을 그 아무도 느끼지 않는 게 진짜 문제다. 느끼더라도 비용부족, 예산축소의 문제에 부딪힐 것이다. 그래서 섣불리 문제의 파괴와 재건축을 약속할 수 없는 사정 또한 이해한다. 차갑고 차가운 현실이다. 이렇게 되기를 아무도 원하지 않았을 텐데.. (만족한다면 할 말이 없다)






시민 : 인도가 좁고 위험하니 고쳐주세요 (출처 : 울산신문)








??? : 응 조형물 ~ (출처 : 연합뉴스 김상연 기자)





나는 이 도시가 경제발전이란 떡을 소화시키지 못하고 체한 것을 인정하기가 싫다. 하지만 길거리에 나가면 도시의 풍경이 마치 내 정신상태를 반영하는 것만 같다. 도시 미관은 단순히 외적 환경을 넘어, 그곳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질, 특히 심리적 여유를 반영한다. 아파트가 아무리 많다고 해도, 아파트 단지의 집합적 비주얼이 주는 갑갑함에는 영 적응되지 않는 것과 같다. 용적률을 휘몰아치기해서 프리즌브레이크처럼 설계된 아파트를 보면 가슴이 답답해지는데, 그들이야말로 이런 곳에 살고 싶어서 40년 원리금균등상환의 고통을 버티는 것일까? 조금만 지방으로 가면 적폐처럼 취급되는 미분양 아파트가 주인을 찾아 횡보하는데.


도시운영의 실패는 서울사람들에게 공간에 대한 갈망을 소비로 증명하게 하는 쓴맛을 보여주고 있다. 고백한다. 나는 예민한 인간으로써 그 쓴맛에 내 머리를 날려버리고 싶은 지경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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